축구단의 ‘미래 비전’은 있는가[기자메모]
잘해도 잘리는 곳이 있다. 그것도 정치적으로 말이다. 바로 시·도민 프로축구단이다.
이영표 강원FC 대표이사(45)와 김호곤 수원FC 단장(71)이 최근 직책을 사실상 내려놨다.
이 대표이사는 오는 12월을 끝으로 2년간 수행한 대표이사에서 내려온다. 이 대표이사는 2021년 팀이 강등 위기인 시즌 막판 최용수 감독을 영입해 잔류에 성공했고, 올해 순위를 6위(파이널A)까지 끌어올렸다. 성적뿐만 아니라 스폰서 유치, 예산 확보, 상품화 사업, 사회공헌활동도 잘했다. B팀 4부리그 운영, 외국인 쿼터제, U-22 이하 출전 규정 등 프로축구계 현안에 대해서도 확실한 목소리를 냈고 많은 걸 직접 실행에 옮겼다.
초보 축구단 대표이사지만 베테랑 사장처럼 많은 일을 잘했고 프로축구계 파급력도 강했다. 그런데 김진태 강원도지사(국민의힘) 결론은 재계약 불가였다.
김호곤 단장은 최근 수원시로부터 그만두라는 지시를 받았다. 2019년 2월 수원FC 단장이 된 그는 2020년 5년 만에 1부 승격, 2021년 파이널A 진출(5위)을 이뤘다.
올해에는 승점 1점차로 파이널A에 가지 못했지만, 기본 목표인 1부 잔류는 넉넉하게 달성했다. 자신이 책임지고 임명한 김도균 감독과 좋은 ‘케미’를 이룬 결과다. 김 단장은 이승우를 영입해 흥행몰이에도 성공했다.
고령이지만 열정적으로 일했고 앞으로 더 일하길 원했다. 김 단장 인사권자는 이재준 수원시장(더불어민주당)이다. 축구계에서는 이 시장이 선거에서 자신을 도와준 몇몇 축구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김 단장과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시·도민구단 직원 인사권은 지방자치단체장이 갖는다. 인사권자가 나가라고 하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고위층을 내보내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공교롭게도 그 시점이 지자체장 선거 직후다. 정치적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선거 후 단체장이 바뀌면 구단 수뇌부도 교체되곤 했다.
지자체장은 선거에서 당선을 도운 주요 인사에게 단체장 등을 나눠줬다. 그렇게 활용된 게 시·도민구단 대표이사, 단장, 사무국장 자리다. 축구를 잘 모르거나 애당초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구단 고위층으로 왔다. 이들은 축구단을 지자체장을 빛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구단 선진화, 비전 수립 및 시행, 유소년 육성, 저변 확대 등 축구 발전 자체에는 별로 집중하지 않았다. 아래 직원들도 자기방어, 처세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조직이 정치 바람에 쉽게 흔들리는 데다, 정치적으로 선임된 고위층이 축구단을 정치집단으로 만든 결과다. 지자체장 선거→축구단 고위층 교체→행정 전문성 결여→구태 행정 반복→구단 정체 등 악순환이 시·도민구단 생리가 돼 버렸다.
시즌은 끝났지만, 대표이사와 단장의 시즌은 지금부터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계약, 국내외 신규 선수 영입, 기존 선수 정리, 사무국 정비, 전지훈련 준비, 광고주 확보, 지역민 인사 등 대표이사, 단장이 책임지고 해야 하는 업무들이 엄청 많다. 그것도 불과 한두 달 내에 말이다.
김진태 강원도지사, 이재준 수원시장은 어떤 미래 비전을 갖고 축구단 수뇌부를 바꾸려 하는가.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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