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꼭 좋은 곳으로 가렴” 발인 시작되자 아빠는 오열했다
서울의 은행에 취직한 20대 여성…영정 앞엔 ‘정규직 사령장’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 하늘로…“오빠는 아직도 일어나질 못해”
“저렇게 아기인데, 어떻게 보낼까….”
1일 오전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 장례식장. 조카의 발인을 앞두고 이모씨(58)가 한숨을 쉬었다. 이씨의 조카는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생을 마감한 희생자 중 한 명이다.
이씨는 “우리 조카는 이란성 쌍둥이”라고 무거운 입을 뗐다. 오빠와 여동생은 우애 좋은 남매였다. 이번 참사로 여동생이 목숨을 잃었다. 이씨는 고인의 쌍둥이 오빠가 충격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얼마나 힘들어 하면, 아직까지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1분 차이로 태어났어요. 서로가 잘 챙겨줬죠…. 쌍둥이들이 싸우기도 하는데 안 그랬어요. 남다른 우애가 있었고, 동생이 다 받아줬어요. 하자는 대로 하고.”
이씨는 참사 당일 소식을 뉴스로 지켜보면서도 가족의 일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세상에 어떤 집 자식이 저랬나, 남의 일인 줄만 알다가 새벽 3시 지나서 비보를 전해 들었어요. 너무 놀라서 벌벌 떨고 일어나지도 못했어요. 세상에, 얼마나 아팠을까…. 전화를 받고 대성통곡을 했어요.”
고인의 친구는 “최근엔 자격증 시험이 있어서 공부를 열심히 하던 친구”라며 “당일에도 공부를 하고 있다가 놀러간 거였다”고 했다. 그는 눈시울을 붉힌 채 “밝고 에너지가 넘쳐서 ‘비타민’ 같은 친구였다”고 했다. 고인 아버지의 친구는 “늦은 나이에 어렵게 얻은 자식이었다”며 “과 대표도 하고 활발해서 친구들이 엄청나게 조문을 왔다”고 했다. 오전 11시30분 발인식이 거행됐다. 가족들은 고인의 영정 앞에서 통곡을 멈추지 못했다.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강남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ROTC 장교인 아들의 관에 태극기가 덮였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숨진 A씨의 발인이 엄수됐다. 유가족과 군 동료 등 지인들은 계속 눈물을 훔쳤다. 운구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눈물은 통곡으로 변했다. “아이고, 어떡해” “우리 ○○이 어떡해”…. A씨의 할머니는 흐느끼며 걸음을 제대로 옮기지 못해 부축을 받아야 했다. 같은 시간 대학생 B씨 빈소에서도 발인식이 거행됐다. “밝고 긍정적인 학생이었어요. 주변에 친구도 많은 싹싹한 아이였는데….” 부모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한창 꿈을 펼칠 20대 나이의 생떼같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부모의 표정은 침통하기 그지없었다.
이날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일 이른 아침 딸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착잡했다. 삼남매 중 둘째인 23세 딸을 잃은 아버지는 “항상 내 일을 많이 도와주고, 늘 군말 없이 따라줬던 참 착한 딸이었다”고 했다.
다섯 가족이 복닥거리며 한집에서 살았지만 하루 뒤면 딸을 완전히 보내줘야 한다. 아버지는 “어제 오늘 친구들이 200명 넘게 왔다 간 걸 보면서 딸이 참 세상을 잘 살아왔구나 생각했다. 주변에서 연예인이 될 거라 했던 딸이다. 착하게 살아서 이렇게 일찍 갔나보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태원 참사로 숨진 배우 이지한씨(24)의 발인도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이날 유족 측은 “장례를 조용히 치르고 싶다”며 취재기자들에게 사진 촬영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꿈을 키우다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청년들도 가족·친구들과 이별을 했다.
광주 광산구 한 장례식장에서는 이날 C씨(23)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C씨는 그토록 기뻐했던 ‘정규직’ 전환을 뒤로하고 가족과 지인들의 눈물 속에 영면에 들었다.
C씨는 단짝 친구와 이태원을 찾았다가 참변을 당했다. 지난 2월 서울의 한 은행에 비정규직으로 취업해 상경한 C씨는 최근 정규직 전환 필기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하며 기뻐했다고 한다. C씨는 고인이 돼서야 영정 앞에 놓인 정규직 사령장을 받았다. 10월31일 자 사령장에는 ‘위 직원을 일반관리계 4급에 임함’이라는 인사명령이 적혔다. 사령장은 전날 빈소를 찾은 은행 관계자가 유족에게 전달했다. 은행 측은 “C씨가 성실했고 필기시험도 합격해 정규직과 다름이 없어 추서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C씨의 아버지는 “꼭 좋은 곳으로 가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그의 동생은 “언니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했다.
전남 장성의 한 장례식장에서는 D씨(19)가 사랑했던 가족 곁을 영영 떠났다. D씨는 미용 관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난 6월 서울 강남의 미용실에 취직했다. D씨 아버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딸을 다시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죽을 것만 같다”고 목놓아 울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이 이날 전국 곳곳에서 세상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유경선·고귀한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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