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조직화된 무책임’이 피해자 조롱·혐오 부추긴다
국가 부재 불안한 개인들, 피해자 행동 문제 삼아 불만 표출
사회안전망 혜택 경험 부재도 유가족 지원 등 지출에 ‘반감’
구조 문제 가리면 집단 트라우마로…원인 찾고 책임 물어야
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고도 안전 대책을 세우지 않은 당국의 안일한 행정이 초래한 ‘인재’임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서양 명절에 누가 이태원에 놀러 가라고 했냐” “놀다가 죽은 거 아니냐”는 식으로 피해자를 조롱하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발언이 참사 당일부터 쏟아지고 있다.
피해자를 향한 무분별한 비방은 ‘구조’의 문제를 가리고 생존자들과 유가족의 트라우마를 키운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원인이 규명되지 않는 참사는 모두의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번 참사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이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다. 책임의 공백 속에 쌓여가는 시민의 불안과 분노가 참사 피해자 개인의 행동을 문제 삼는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1일 “(서울)시장, 경찰, 용산구청장, 중앙정부 대통령, 행정안전부 장관까지 책임자 라인에 있는 어느 누구도 반성하거나 책임지지 않고 있다”며 “그래서 피해자나 밀었다고 알려진 사람을 찾으려는 ‘굉장히 나쁜 혐오적, 부정적 방식’으로 사회 혼란을 해소하려는 현상들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런 식의 피해자 비난은 분노 방향을 다른 데로 돌리는 매우 위험한 혐오 발언”이라고 했다.
피해자들을 ‘비정상’으로 구분지어 자신의 안전을 확인받고자 하는 심리의 반영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로에게 책임을 계속 전가하는 ‘조직화된 무책임성’ ‘책임의 수건 돌리기’ ”라며 “희생자에게 책임을 돌림으로써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제대로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하는 심리이자 사회적 태도”라고 말했다. 또 “자신과 같은 ‘정상적’인 사람에게는 이 세상이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게 반영된 듯하다”고 했다. 핼러윈은 ‘서양에서 유입된 축제’라고 강조하는 것도 피해자에 대한 비난을 정당화하는 기제처럼 작용한다.
‘경쟁’ ‘개인주의’를 내세우는 신자유주의를 개인이 오랜 시간 학습해 내면화하고 조회수, 즉 관심이 돈이 되는 ‘주목경제’의 영향으로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국가가 이런 문제를 조정할 능력을 갖지 못했던 것, 입시경쟁 교육, 신자유주의 ‘먹튀 경제’ 등이 혐오, 적대에 (우리) 사회가 속수무책인 것과 관련 있다고 본다”며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모든 게 개인화된다. ‘개인의 잘못’이라며 일말의 애도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국가의 사회안전망에 기대본 경험의 부재가 참사 원인 규명과 생존자·유가족 지원 등에 투입되는 사회적 비용에 대한 반감으로 번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가가 국민의 물리적 안전, 소득 보전 등 사회안전망 보장을 잘해줘 혜택을 받은 시민 입장이라면 국가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을 케어해주는 것에 별 불만이 없을 수 있는데, ‘나도 국가로부터 도움받은 게 없는데, 축제에 가서 (피해)당한 사람들을 왜 해주냐’며 일차적인 감정을 즉각 표출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여권이 참사 원인을 규명하라는 여론을 ‘정쟁’ 프레임으로 규정하는 것을 경계하고 피해자 비방에 엄정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경아 교수는 “세월호 때 겪은 것처럼 집단적 트라우마가 되지 않으려면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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