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사당할 것 같아요” 6시 34분 첫 신고 이후 4시간 동안 11번 신고…경찰 뭉갰다

박세영 기자 2022. 11. 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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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이 계속 밀려 오니까 압사당할 거 같아요. 너무 소름 끼쳐요. 제발 경찰이 좀 나서서 통제해 주세요."

지난달 29일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골목길. 한 시민으로부터 "압사사고가 날 것 같다"는 112 신고가 들어왔다. 이때 시간은 오후 6시 34분. 이를 시작으로 11건의 112 신고가 접수된 4시간 후 156명이 사망하고 148명이 부상당하는 대한민국 최악의 압사사고가 일어났다. 경찰이 첫 신고 후 현장 관리에만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막을 수 있었던 참사인 셈이다.

1일 경찰청은 지난달 29일 서울 이태원역 사고 현장에서 접수된 112 신고 내용을 공개했다. 첫 신고 접수 이후 1시간 반이 지난 오후 8시 9분에 다른 신고자는 "여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다치고 있다"면서 "단속 좀 해주셔야 할 것 같다"고 호소했다. 앞서 황창선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은 오전 정부 합동 브리핑에서 "오후 6시에 접수된 최초 신고는 불편 신고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소름 끼치는 정도라 압사사고가 날 것 같다"는 시민들의 호소를 ‘불편함을 호소하는 정도’로 치부한 셈이다.

오후 8시 33분. 한 신고자는 "사람들이 지금 길바닥에 쓰러지고 사고가 날 거 같다"면서 "길이 삼거리에서 완전히 막혔다"고 했다. 이 신고자는 경찰에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골목의 정체 상황을 영상으로까지 찍어 전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현장에 방문하고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은 채 자체 종결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갈수록 더 잦은 빈도로 시민들이 경찰에 도움을 호소했다. 앞선 신고 20분 후 한 신고자는 휴대폰이 제대로 터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압사당하고 있다"면서 "아수라장이에요, 아수라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화를 응대한 경찰관은 "계시는 장소 스펠링 한번 더 불러달라"는 등의 안일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장난 전화 아니에요"라는 신고자의 호소에도 경찰은 실제로 대응하지 않았다.

참사 1시간 전부터는 이미 구조작업이 시작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오후 9시에 접수된 신고 내용에 따르면, 이태원역 1번 출구 골목길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깔리면서 시민들이 이를 구조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신고자는 "대형사고가 나기 일보 직전"이라면서 "저는 지금 구조된 상황이지만 인파가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이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외면했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신고자들이 잇따라 해당 골목길에서 사고가 났다고 했지만, 경찰은 "위치가 어디냐, 이태원 역쪽이냐"며 재차 반문하는 모습을 보였다. 답답한 시민들이 외려 "(위치 추적) 치면 뜨지 않냐"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됐다. "상호가 무엇이냐"고 지속적으로 묻는 경찰에게는 "상호명이 아니라, 거리 전체가 그렇다고"라며 고통을 호소한 시민도 있었다.

오히려 시민들이 ‘해결책’을 경찰에 제시하면서 조속한 경찰력 동원을 촉구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오후 9시 7분에 접수된 신고에서 한 시민은 "사람들을 원웨이, 일방통행 할 수 있게 조치 좀 부탁한다"면서 "압사당할 위기에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신고가 시작된 오후 10시 11분. 신고자는 "압사될 거 같다"면서 "코사인 앞이에요"라고 말했다. 경찰은 "예? 포카인요?"라고 다시 묻는다. 그리고 이내 수화기 너머로 비명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처럼 신고가 들어오는 동안 경찰은 현장에서 사람들을 인도로 피신시키기만 했을 뿐 별다른 현장 통제에는 나서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11건의 신고 접수와 관련된 경찰관들을 상대로 당시 상황 대응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다. 감찰 결과 직무유기나 허위 공문서 작성 등의 위법 사항이 발견되면 수사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소방당국에 접수된 압사사고 신고는 오후 10시 15분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오후 10시43분에 대응 1단계를 발동하고, 10시45분에는 119구급상황관리센터 재난의료지원팀 출동을 요청했다. 이어 오후 10시53분에 이태원역 인근 한강로에 임시 응급의료소를 설치해 부상자를 받았고, 오후 11시에는 서울대병원 재난의료지원팀(DMAT) 지원을 요청한 데 이어 한양대·강동경희대·고려대·아주대·분당서울대병원 등 수도권 권역 응급의료센터 재난의료지원팀을 총동원했다.

오후 11시13분 대응 2단계로 대응 단계를 올린 당국은 11시50분에 대응 3단계로 격상하고 구급차 142대를 비롯해 구조 인력과 장비를 대거 투입했다. 소방과 경찰 등 투입 인원은 2692명에 달했다.

1일 기준 이날 이태원에서 사망한 사람은 156명에 달하며 신고자 중 사망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박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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