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글로 보여주는 사람들 ‘화면해설 작가’ 아시나요”

강성만 2022. 11. 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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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함께 책 펴낸 권성아·홍미정 작가

홍미정(왼쪽), 권성아 화면해설작가가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눈에 선하게>(사이드웨이 펴냄). ‘세상을 글로 그려내는 사람들, 화면해설작가’란 부제를 달고 최근 나온 책이다. 지난 10여 년 티브이나 영화 콘텐츠를 시각장애인도 즐길 수 있게 화면해설 원고를 써온 다섯 작가(권성아·김은주·이진희·임현아·홍미정)가 함께 지었다.

“작년이 우리(저자들)가 화면해설을 한 지 10년이었어요. 하지만 지금도 우리 일이 뭔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 지난 10년 화면해설 이야기를 책으로 내면 어떻겠냐고 제가 먼저 제안했죠.”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를 권성아 작가와 함께 찾은 홍미정 작가의 말이다.

<눈에 선하게> 표지.

화면해설 방송은 작가가 영상의 시각정보를 종합해 대사와 대사 혹은 대사와 내레이션 사이에 해설 문장을 쓰고 성우가 이를 읽는 방식으로 제작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부터 지상파 방송에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지상파는 현재 최소 10%의 프로그램에 대해 화면해설을 제공해야 하며 종편은 7%로 더 낮다. 이에 비해 미국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넷플릭스>는 자국 규정에 따라 모든 오리지널 프로그램에 대해 화면해설을 제공한다. <오징어 게임>에 해설용 자막이 뜨는 것도 이 프로그램이 <넷플릭스> 오리지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화면해설 프로그램은 일부 다큐를 제외하곤 대부분 재방송 시간에 방송된다. “드라마는 재방을 주말 낮 시간에 주로 하지만 예능은 평일 새벽에 많이 해 시각장애인이 예능을 시청하려면 새벽에 일어나야 합니다. <문화방송>(MBC)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시점> 같은 인기 예능은 아예 화면해설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요. 본 채널에서 재방하지 않고 주로 자체 케이블 채널에서 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케이블 방영은 의무 방송 시간에 포함되지 않으니까요.”

다른 3명의 공저자들과 함께 2011년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미디어접근센터(현 한국시각장애인미디어진흥원)가 마련한 화면해설 작가 양성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나란히 화면해설 작가로 입문한 권·홍 작가의 공통된 지적이다.

디자인을 전공한 권 작가는 컴퓨터 그래픽 학원 강사를 하다 우연히 티브이에서 나오는 화면해설 방송을 듣고 재밌겠다는 생각에 화면해설가 양성 프로그램에 자원했단다. 현재 <한국방송> 제3라디오 시각장애전문 프로그램 작가로도 일하는 홍 작가는 장애인 프로그램을 하다 화면해설의 세계를 알게 되어 “처음에는 돈을 벌 목적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저자들은 한결같이 화면해설 일이 재밌다고 썼다. “저는 작가 출신이 아니라 처음에는 서툴렀어요. 그래서 2차 보수교육까지 받았죠. 그런데 하다 보니 실력이 조금씩 늘어, 지금은 제 글이 매끈하게 다듬어져 성우가 읽고 완성품으로 나온 것을 보는 게 너무 즐거워요.”(권) “저는 처음엔 기존 작가 일의 연장선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장애인분들께 제가 한 화면해설이 도움이 되었냐고 물었더니 ‘그럼요, 그게 있으니 (방송 내용을) 알잖아요’라고 답하더군요. 그런 반응을 접하면서 ‘정신 차려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죠.”(홍)

김은주·이진희·임현아씨 등 5명
시각장애인연 미디어접근센터 수료
방송·영화 등 화면해설 원고 담당
10년 기념 ‘눈에 선하게’ 공동 출간

“눈 감은 채 방송 들어본 뒤 시작”
“한국어 더빙하는 외화 늘었으면”

현재 활동 중인 화면해설 작가는 약 50여 명이며 이 중 저자들을 포함해 30여 명이 지상파 화면해설을 전담해 제작하는 한국시각장애인미디어진흥원과 협업하고 있단다. 비지상파는 대부분 민간업체와 계약을 맺어 제작한다고 했다. 두 작가에 따르면 화면해설 작가들은 매주 금요일에 다음 주 제작할 프로그램 원고와 영상을 받아 작업하며 평균 하루에 한편 꼴로 원고를 마무리한다. 다큐멘터리는 대체로 6시간 정도 걸리고 드라마는 한편 작업에 사나흘도 걸린단다.

권 작가는 화면해설은 “시각장애인이 방송을 시청하며 비장애인과 같은 시간에 웃고 감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선 대사와 내레이션에 간섭하지 않으면서 프로그램 내용을 최대한 충실하게 전해야 한다. “한 낚시 예능을 할 때였어요. 다음 회 예고편 화면에 거의 매번 아이돌이 등장하는데 자막에 이름이 없어요. 비장애인은 얼굴을 볼 수 있으니 누군지 알잖아요. 저도 잘 모르는 그 아이돌 이름을 확인하려고 서너 시간씩 검색해 원고에 이름을 넣곤 했죠.”(권) 임현아 작가는 책에 애니메이션 해설 원고를 쓰면서 ‘썬더라이온’이라는 합체 로봇의 변신 과정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직접 로봇을 사서 합체해보고 이해한 뒤 원고를 썼다는 체험담도 털어놓았다.

자막과 컴퓨터 그래픽과 같은 시각 요소가 웃음 포인트로 많이 활용되는 예능은 어떨까? <미운 우리 새끼> <런닝 맨> 등 예능 해설을 많이 했다는 홍 작가는 자신의 ‘노하우’를 이렇게 밝혔다. “‘김ㅇㅇ 방귀 뿡’ ‘김ㅇㅇ 소주병 탁’처럼 문장은 주어와 술어 구조로 하되 최대한 짧게 쓰고 의태어와 의성어를 많이 활용합니다.” 그는 “최근 각기 다른 종목의 스포츠 스타와 2세가 출연하는 스포츠 예능 해설을 했는데, 편마다 골프와 축구, 테니스 등 생소한 종목의 규칙을 익히느라 힘이 들었다”고도 했다.

화면해설 작가로 살며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을 묻자 홍 작가는 “제가 작업한 미술품 영상 해설을 듣고 한 시각장애인이 ‘그동안 <최후의 만찬>(레오나르도 다빈치 작) 속 예수 제자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처음으로 일렬로 앉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을 때”라고 답했다.

홍미정(오른쪽), 권성아 화면해설작가. 백소아 기자

영화 <헤어질 결심>과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우리들의 블루스> 등을 해설한 권 작가는 원고를 쓰기 전에 먼저 눈을 감고 방송을 들어본단다. “배우들 입을 보고 들으면 잘 들리지만 눈을 감으면 배우들 대사가 잘 안 들려요. 그만큼 듣기에 시각 정보가 중요하죠. 눈을 감으니 삼겹살 굽는 소리와 소나기 소리가 거의 같더군요. 눈을 감아 보면 어떤 순간에 화면해설이 필요한 지 알 수 있어요.”

그는 시각장애인들이 외화를 시청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라면서 외화 화면해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가치봄 영화 상영회’가 매달 두세 차례 특정 영화관에서 열립니다. 저도 제 해설에 대한 반응을 보려고 상영회를 매번 찾는데요. <헤어질 결심>처럼 유명한 영화는 매진될 정도로 장애인 관객들이 많아요. 하지만 상영회에선 한국영화만 볼 수 있어요. 외화는 한국어 더빙이 제공되지 않으니까요. 시각장애인들은 <한국방송>이 명절 때 어쩌다 <미션 임파서블> 같은 영화를 틀 때나 외화를 감상할 수 있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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