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럴 수 있나" 어머니의 통곡

신심범 기자 2022. 11. 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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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희생자 영락공원서 영결식
부산시장 등 정관계 인사도 조문

“아까운 내 아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아이고, 아이고….”

1일 낮 광주 광산구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인 20대 은행원의 빈소에 정규직 발령 임명장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1일 오후 2시 부산 금정구 영락공원. 하나뿐인 아들 A(25) 씨를 잃은 어머니는 화장장으로 향하는 관을 향해 통곡했다. 국내 한 대기업에 다니던 A 씨는 이태원 참사로 짧은 삶을 끝내야 했다. 앳된 청년의 모습을 한 영정 속 그는 ‘죽음’과는 도무지 거리가 멀어보였다. 유족은 화장터로 보내기 전 마지막 인사를 건네면서도 어떻게 이런 죽음이 자신들에게 찾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중계 화면 너머 A 씨의 관이 화장터에 들어가자 유족들은 오열했다. 터져나오는 눈물과 울음에 주변 모두가 숙연히 눈가를 훔쳤다.

이날 낮 12시40분에는 또다른 참사 피해자 B(여·27) 씨의 화장이 진행됐다. 기독교인인 B 씨는 친지와 교회 동료들의 애도 속에 하느님의 곁으로 떠났다. “하느님 아버지의 품 속으로 평안히 떠날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십시오”라는 작별 인사를 들으며 유족은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간호조무사로 일한 B 씨는 전문성을 키워 간호사가 되기 위해 대학을 다니던 학생이었다.

이날 오후 2시10분 박형준 시장은 참사 피해자 C(여·27) 씨의 빈소를 찾았다. 유족들과 짧게 위로의 말을 나눈 박 시장은 “조문하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박 시장 외에도 여러 정·관계 인사가 영락공원에 빈소를 둔 참사 사망자 유족을 만났다. 이날 이곳에서 장례가 진행 중인 사망자는 2명으로, 각각 금정구와 해운대구에 연고를 뒀다.

부산에 연고를 둔 이태원 참사 피해자는 지금까지 7명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부산 서울 경기 등에서 장례식을 치른 뒤 2일까지 발인을 마칠 예정이다. 부산에서는 지난달 31일 시청에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합동 분향소가 마련됐다. 전날 박형준 시장이 헌화·분향한 데 이어 이날 오전 안성민 부산시의회 의장과 시의원, 우철문 부산경찰청장, 박종근 부산지검장이 이곳을 찾았다. 부산시청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는 별도 종료 시점까지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된다.

한편 이태원 압사 참사로 숨진 배우 고(故) 이지한(24)씨의 발인이 유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오열 속에서 엄수됐다. 발인은 이날 오후 1시 30분께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전날 차려진 빈소에서 유가족이 애써 참아왔던 눈물은 발인이 진행되며 다시 터져 나왔다. 고인의 영정과 관이 운구차에 실리자 고인의 아버지는 절규하다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고인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유족, 친구들의 외침과 울음소리로 가득한 현장에서 운구차는 한참을 출발하지 못하다 장지로 떠났다.

광주시 광산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치러진 이번 참사의 희생자 20대 A씨의 발인식에서 ‘은행 정규직 사령장’을 앞에 둔 딸의 영정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참고 참던 울음을 토해내다가 끝내 주저앉았다. 한순간에 생때같은 자식을, 함께 울고 웃던 친구를 잃은 이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믿겨지지 않은 현실에 울고 또 울었다. A씨는 은행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핼러윈을 맞아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단짝 친구와 이태원을 찾았다가 함께 참변을 당했다. 그의 영정 사진 앞에는 그가 생전 그토록 꿈꾸던 정규직 사령장이 놓여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했다.

대전지역 희생자들의 발인식도 눈물 속에 엄수됐다. 이날 정오께 건양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A(20)씨의 발인식에서 가족과 친구들은 눈물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가족과 친구들의 비통함과 안타까움 속에 진행된 발인식에서 눈물을 참던 아버지는 막내딸의 영정사진 앞에서 결국 무릎을 꿇은 채 흐느껴 울었다. “우리 딸 어떻게 해, 우리 딸…” 어머니는 딸 이름을 부르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만큼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고인의 언니인 첫째 딸이 안아주며 슬픔을 삼켰다. 신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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