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 인력들 트라우마 호소하는데… 지원 대상서 뺀 정부 [이태원 핼러윈 참사]

안병수 2022. 11. 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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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투입된 소방·경찰·의료 인력들
“사망자 너무 많아 절박·상실감 빠져”
참혹한 현장에 PTSD 심각하게 우려
복지부, 유족 등 1000여명 심리 지원
논란 일자 “개인적 요청 땐 가능” 해명
전문가 “초기 심리치료 못 받으면 위험”
WP “한국, 집단적 트라우마 시작됐다”

이태원 압사 참사 당일 용산소방서 관할 119안전센터에서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대응단에 속했던 소방관 A씨는 “소방관 모두가 당시 멘털이 붕괴됐을 정도로 현장 상황을 보고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이미 사망자가 길거리에 너무 많았던 상황에서 한 명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절박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동시에 밀려왔다고 했다. 경기도 북부 소방재난본부에서 지원 요청을 받고 현장에 급파된 응급구조사 B씨는 “눈앞의 광경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퇴근하고도 그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며 몸서리쳤다.

지난달 29일 참사 현장에서 구급 활동을 했던 소방과 경찰, 의료 인력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우려되지만, 이들은 정부 심리치료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다.
지난 10월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현장에서 소방구급 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는 모습. 뉴스1
1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보건복지부는 참사 다음 날인 지난달 30일 ‘이태원 사고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해 부상자와 유가족, 목격자 등 1000여명에 대해 심리지원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으나 지원 대상에 구급 인력은 고려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정신건강전문의 등 전문가가 주축인 지원단은 인력 1명당 10명을 지원할 수 있도록 100명으로 꾸려졌다. 이를 통해 유가족 약 600명, 부상자 150명과 목격자 등 일반 시민들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날 통합심리지원단 운영에 관한 정책브리핑 자료를 배포했는데, 여기에서도 유족 외 심리적 도움이 필요한 ‘일반 시민’을 지원 대상으로 명시했다.

연이어 나온 정부 발표에도 구급 인력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참사 피해자들의 심리회복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내면서도 “유가족과 부상자, 일반 시민도 심리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 트라우마센터와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를 통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구급 인력의 정신건강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에 이들을 일부 포함한 심리지원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소수의 구급 인력이 심리지원을 받은 일이 있다. 개인적으로 지원을 요청할 경우에도 얼마든지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구급인력을 당초 지원 대상으로 고려했는지와 관련해서는 명확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

소방청은 전문 상담사를 통해 현장 출동 소방대원들의 긴급 심리지원에 나선다는 공문을 지난달 31일 전국 시·도 소방본부에 내렸으나, 정작 대원들이 이를 알지 못해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잖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뉴스1
각종 사건, 사고 참사 현장에 투입되는 구급·구조 인력에 대한 정부의 미흡한 관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에서 잠수부를 비롯한 구조대원들이 정부의 무관심 속 지독한 심리적 아픔을 견뎌야 했던 전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당시 사고 수습을 했던 민간잠수사 전광근(46)씨는 2015년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청문회에 참고인 자격으로 나와 “수습 과정 중간에 심리치료를 받은 적이 전혀 없다. 2014년 12월 이후에는 모든 병원 지원이 끊겼다”고 토로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구급 인력들도 초기에 심리치료를 받아야 위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정엽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는 “일반 시민이나 구급 인력 모두 심리치료를 같은 시기에 들어가야 한다”며 “구급 인력도 이 정도의 참사는 예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에 일반 시민보다 위험도가 결코 작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국의 워싱턴포스트(WP)는 31일(현지시간) 한국에서 이태원 압사 참사로 인한 집단적 트라우마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WP는 한국 국민이 참사로 인한 공포에 떨고 있다며 온라인상에 떨림과 메스꺼움, 악몽, 피로, 제어할 수 없는 울음 등과 같은 트라우마를 고백하는 글이 게시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29일 사고 당일 실시간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참사 현장 이미지와 비디오가 모자이크 처리 등이 없이 공유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안병수·이정한·조병욱·나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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