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⑤참사가 교훈돼야…"매뉴얼 섬세히 재설계하자"(끝)
단순한 인원수 아니라 '면적당 밀집도' 확인 등 섬세한 대책 주문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송정은 계승현 박규리 이승연 이미령 기자 = 전문가들은 이태원 압사 참사에 '주최자가 없는 민간 행사'라는 이유로 정부 당국이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뻔히 위험을 예견하고도 상황을 사실상 방치해 국민의 안전을 지키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데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사후 매뉴얼을 만들고 관련 제도를 손질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또다른 대규모 참사를 막을 수가 없다며 안전은 국가와 국민이 함께 발맞출 때 지켜질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위기를 기민하게 파악하기 위해 정부가 섬세하게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대안을 주문했다.
차종호 호원대학교 소방안전학과 교수는 "주최자가 없는 축제나 사람이 많이 몰리는 장소는 비단 핼러윈 때 이태원뿐만이 아니다"며 "여름 해수욕장이나 가을의 단풍놀이에도 '주최자'는 없지만 사람이 몰리니까 지자체와 경찰이 알아서 통제하고 인력을 배치하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주최자가 없다거나 매뉴얼이 없다고 해서 국민의 안전을 정부가 방관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게 매뉴얼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고, 매뉴얼이라는 게 다 명문화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며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행사에 대해선 지자체와 경찰의 선제적 통제가 있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해 밤샘 구조활동을 펼친 노영선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서울중증환자 공공이송센터장) 역시 "사전 신고된 행사가 아닌데 어떻게 경찰을 배치하느냐, 집회와 성격이 다르다는 말들이 있지만 그 둘이 별로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통제가 조금만 있었더라도 사상자 규모가 이 정도로 나오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과 지방자치단체가 위험 징후에 안이하게 대응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이번 참사의 피해가 커진 이유는 거기에 사람이 몰렸고, 위험이 최고조에 이르기까지 방치됐기 때문"이라며 "참사 발생 2∼3시간 전부터 여러 징후가 있었던 만큼 그때 적극적인 조치를 했더라면 이런 상황에 이르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참사를 국민의 안전을 위한 섬세한 대책을 마련하는 값진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했다.
주최자가 명확히 없더라도 인파가 몰리는 큰 행사는 대부분 지역별, 시기별로 정해져서 반복되기 때문에 예상 참여 인원 등을 파악해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단순히 인원수를 기준으로 하는 등 획일적인 매뉴얼을 만들어선 안 되고 행사의 특성과 물리적 공간, 참여자 등 여러 요인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예컨대, 똑같은 1천 명 이상이더라도 어느 정도 면적의 공간에 사람이 모여있느냐가 관건이 될 수 있으므로 하나의 잣대를 들이대선 안 된다고 봤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1천 명 이상 등 단순히 총인원이 아니라 면적당 밀집도를 고려해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원과 밀집도 등을 기본으로 정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사실 매뉴얼로 다 정할 수 없으므로 행사마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도 개선만으로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으므로 경찰과 지자체 등의 책임 있는 역할 수행은 물론, 이와 더불어 시민의식도 중요하다고 봤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 회장 "완벽한 제도만으로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므로 우리 국민이 그 제도에 맞게 행동해야만 안전이 보장된다"며 "안전은 국가와 국민이 동시에 연합할 때 지켜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윤성 교수 역시 "경찰이 참사 발생 전에 안전 통제에 나섰더라도 시민들이 이를 잘 따라줬을 것이라고 단정 지어서 말하기는 어렵다"며 "참사를 커다란 교훈으로 생각하고 시민들 역시 안전을 위한 현장의 통제를 준수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번 참사에서 안전 불감증을 언급하거나 시민의식 결여를 지나치게 원인으로 지목하면 희생자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메시지가 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차종호 교수는 "안전불감증이라는 말 자체가 위험이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얘기하는 거지, 이건 그저 사람들이 놀러 갔다가 변을 당한 것"이라며 "안전불감증이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 교수는 "특정인이나 무리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국민 전체가 가져가야 할 기본적 소양으로 질서 의식을 함양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jandi@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필라테스 강사 출신 배우 양정원, 사기 혐의 고소당해 | 연합뉴스
- 결혼 앞둔 특수교사 사망에 근조화환 160개 추모 행렬 | 연합뉴스
- "전우 시신밑 숨어 살았다"…우크라전 '생존 北병사' 주장 영상 확산 | 연합뉴스
- '흑백요리사' 트리플스타 레스토랑 공금횡령 의혹…경찰 내사 | 연합뉴스
- "잘못을 고백합니다"…'비빔대왕' 유비빔씨, 돌연 가게 접기로 | 연합뉴스
- 1960~70년대 그룹사운드 붐 이끈 히식스 베이시스트 조용남 별세 | 연합뉴스
- 경찰서 유치장서 40대 피의자 식사용 플라스틱 젓가락 삼켜 | 연합뉴스
- '머스크가 반한' 사격 김예지, 테슬라 앰배서더 선정…국내 최초(종합) | 연합뉴스
- 9살·10살 자녀 둔 30대 엄마 뇌사 장기기증으로 6명 살려 | 연합뉴스
- 지하 벙커 물 채워 감금…"13시간 남았어" 지인 가혹행위한 40대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