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④비극을 반면교사로…'대규모 인파' 외국 안전대책은
美 재난당국, 인파 분산·구획 설치 명문화한 가이드라인 운영
中, 관광지 유동인구 통제…日, 대형 행사 사전예측·협의 관행
(뉴욕·서울=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김동호 최재서 기자 = 서울 이태원에서 참사가 벌어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의 최대 도시 뉴욕.
맨해튼 중심가의 남서쪽에 위치한 그리니치빌리지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핼러윈 행사로 알려진 '빌리지 핼러윈 퍼레이드'가 질서정연한 통제 속에 진행됐다.
이날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퍼레이드에서는 5만여 명의 참가자가 각종 괴물과 유령, 슈퍼히어로, 영화 캐릭터, 호박 등의 분장을 하고 경찰이 막아놓은 차도를 따라 2㎞가량을 안전하게 행진했다.
제복 경관은 물론 사복경찰도 구석구석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고, 경찰견과 기마경찰대도 동원됐다.
수십만의 일반 관람객도 경찰이 설치한 차단선 너머 인도에서 퍼레이드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으며 핼러윈 분위기를 만끽했다.
이태원 압사 참사를 계기로 대규모 군중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사고를 예방해오고 있는 외국의 사례들이 주목받고 있다.
각국은 앞서 겪은 비슷한 사고를 반면교사로 삼아 군중 밀집도 관리를 핵심으로 하는 엄격한 '크라우드 매니지먼트'(인파 관리) 안전수칙을 마련, 대형 행사가 벌어질 때마다 적용해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의 핼러윈' 트럭테러 악몽 美, '컨틴전시 플랜'…오늘 핼러윈 퍼레이드 안전히 마쳐
1일 연합뉴스 취재와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미국 연방 재난관리청(FEMA)은 2005년 군중이 몰리는 실내외 행사 진행에 대한 가이드라인인 '특별 행사 비상계획'을 수립, 현재까지 운용 중이다.
1979년 신시내티 콘서트장 11명 사망, 1991년 뉴욕 농구 경기장 9명 사망에 이어 2003년 시카고 나이트클럽에서 21명이 숨지는 참사를 겪은 이후다.
FEMA는 "군중 재해의 특성상 1인당 공간이 4∼5제곱피트(0.37∼0.46㎡)까지 줄어들면 밀집도가 임계점에 다다른다"며 별도의 좌석이 없는 야외 행사에서는 인파를 통제하며 분산하고, 현장에 구획과 장벽을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지 당국은 이 지침을 미국 전역에서 열리는 핼러윈 등 기념일 행사는 물론, 매년 100만 명이 운집하는 뉴욕 타임스퀘어의 새해맞이 행사 등에도 적용하고 있다.
이번 뉴욕의 핼러윈 퍼레이드 현장을 지켜봐도 행진 참가자들이 지나가는 길과 관람객 통행로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길게 늘어서 여유 공간을 확보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개인화기로 무장한 경찰관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치돼 행여 통제선을 넘어 위험 상황을 초래하는 사람이 없도록 감시했다.
뉴욕 경찰(NYPD)은 올해도 2천여 명의 경관을 현장에 투입했다.
지난 2017년 핼러윈 당일 이 축제 행렬을 겨냥한 '트럭 테러' 사건으로 사망자 8명 등 2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 경비 수준을 더욱 끌어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시와 시의회가 후원한 이 행사는 공식 축제이고 경찰 통제에 따라 이뤄지며 퍼레이드 행렬과 다수의 일반 관람객이 거의 섞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압사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의 이태원 상황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다만 경찰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다수가 밀집할 가능성이 있는 뉴욕 유흥가 일대에도 다수의 경비 인력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라고 지역방송 NY1이 전했다.
中, 행사 규모 제한으로 위험도↓…日, 시부야서 "밀면 사고난다" 반복 방송
중국도 2014년 말 상하이에서 새해맞이 행사 도중 사람이 몰리며 30여 명이 압사하는 아픔을 겪은 이후 대응책을 내놓은 바 있다.
대형 참사에 놀란 중국은 일단 줄지어 예정돼 있던 대형 행사를 상당수 취소한 후 사고 예방책 마련에 부심했다.
당시 일부 목격자들은 행사장 인근 고층 건물에서 가짜 돈이 뿌려지면서 참극으로 이어졌다고 봤지만, 상하이시는 '군중 쏠림'을 근본적 원인으로 판단했다.
사고 예방책도 행사 규모를 축소하거나 참가 정원을 제한, 밀집도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해 인파 집중에 따른 위험을 낮추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에 따라 중국 국가관광국은 2015년 4월 관광지 최대 수용인원 책정 지침을 마련해 시행에 돌입했다.
각 관광지가 합리적인 최대 수용인원을 자체적으로 책정해 관광지 운영에 활용하도록 했으며, 특정 장소나 시간대의 군중 몰림 현상을 통제하는 것이 골자다.
휴식, 놀이, 서비스 등 각종 시설도 적절하게 배치해 특정 장소나 시간대에 군중이 몰릴 수 있는 현상을 제대로 통제한다는 것이다.
이후 베이징시도 춘제(春節·중국의 설) 기간 전통 행사 규모를 대폭 축소했고, 중요 행사가 열리는 공원의 입장객 수를 일정 수준으로 제한했다.
일본의 경우 2001년 7월 효고 아카시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를 교훈으로 삼아 행사 주최 측이 사전에 현지 경찰과 구체적인 현장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안전 관행이 자리를 잡았다고 이날 현지 영자지 재팬타임스가 보도했다.
당시 불꽃놀이 '하나비'(花火) 행사 직후 전철역으로 향하던 귀가 행렬이 육교에 한꺼번에 몰리며 11명이 숨지고 247명이 다친 바 있다.
현장 통제에 실패한 것을 '굴욕'으로 받아들인 현지 경찰은 1년 뒤 상세한 현장 지침이 정리된 120쪽 분량의 치안 매뉴얼을 내놨다.
이 매뉴얼에서 경찰은 계절에 따라 복장이 달라진다는 점을 고려해 행사 주최 측이 미리 군중 밀집도를 예상할 것을 제언했다.
또 "한데 모인 사람들이 쉽게 흥분하거나 감정적으로 변할 수 있고, 사고 가능성을 감지하면 폭력적인 행동으로 기울 수도 있다"며 세심한 현장 관리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 이번 이태원 참사 직후 일본 당국은 매해 핼러윈 인파가 몰리는 도쿄 시부야 번화가에 경찰 350명과 민간 경비원 100명을 배치, 관리에 만전을 기했다. 주변 공원과 도로 등 일부 지역에서 야간 노상 음주도 금지했다.
핼러윈 당일인 지난달 31일 오후 7시를 넘기자 거리는 제대로 걷기 힘들 정도로 붐비기 시작했지만, 큰 사고 없이 활기찬 분위기가 유지됐다.
대형 건널목인 시부야역 앞 '스크램블 교차로'를 비롯한 곳곳에 황색 테이프를 든 경찰관이 차도로 사람들이 넘어가지 않도록 통제했고, 경찰차 스피커에서는 신호등에 초록불이 켜질 때마다 "앞 사람을 밀면 생각지 못한 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방송을 반복해 내보내기도 했다.
순례자 압사 반복된 사우디는 '전자발찌·CCTV' 강경책
이슬람교 성지 메카에서 수차례 대참사를 겪은 사우디아라비아는 비교적 과격한 대책을 세우기도 했다.
공식 통계 기준으로 압사 희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단일 사고는 1990년 7월 사우디에서 일어났다. 성지순례 '하지'에 이어지는 '이드 알 아드하'(희생제) 기간 1천426명이 숨졌는데, 메카로 향하는 보행터널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벌어진 일이다.
이후 1994년, 1998년, 2004년, 2006년 등 수년마다 순례자가 200∼300명씩 압사하는 사고가 반복되다가 2015년 대참사가 재연됐다. 사우디 당국은 이 사고로 717명이 사망했다고 밝혔으나 외신들은 최소 2천411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사우디는 이듬해 순례 행사 재개를 위해 초강력 예방책을 내놨다.
순례를 하는 무슬림이 위치정보시스템(GPS)과 개인 정보가 저장된 전자팔찌를 착용하도록 강제하는가 하면, 메카의 '마스지드 알하람' 대사원 부근에 800여 대의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해 순례객의 이동을 면밀히 감시하도록 한 것이다.
한편 한 달 전 축구 경기장에서 100명 넘는 관중이 압사하는 사고를 겪은 인도네시아의 경우 군중 통제 및 안전 조치 개선을 위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인명피해가 끊이지 않는 체육경기 행사도 경기장 과밀을 막고 관중을 적절히 통제·관리하는 것이 핵심으로 꼽힌다.
앞서 아시아축구연맹(AFC)은 2001년 5월 가나 수도 아크라의 축구 경기장에서 관중 폭동에 이은 경찰 진압으로 126명 이상이 사망하자 이에 한국 등 45개 회원국에 긴급 공문을 발송, 모든 경기장에 대한 안전 점검을 시행하고 경기장 수용 능력을 초과하지 않도록 감독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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