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②매일매일이 '이태원 그 골목'…과밀의 일상화

김윤철 2022. 11. 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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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 지하철에 몸 구겨넣는 출퇴근길…과밀 환경에 경계심 무뎌져
OECD 인구 밀도 1위에 수도권에 인구 절반…정부 역할·책임 필요
출근길 붐비는 신도림역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국종합=연합뉴스) "출근길 지하철에선 두 손을 가슴에 모아 공간을 확보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숨쉬기가 힘드니까요. 사람 사이에 끼어 발이 붕 떠 있을 때도 있어요."

매일 지하철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대림역을 거쳐 역삼역까지 출근하는 전모(30) 씨에겐 압사 참사가 난 이태원의 '그 골목'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전씨뿐 아니라 이태원 참사를 바라본 시민들은 일상에서 비슷한 공포를 느껴본 적 있다고 토로한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만원 지하철이나 각종 행사, 이름난 관광지 등 가는 곳마다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사람들이 몰리는 밀집 상태에 점점 둔감해졌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태원 참사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과밀' 상황에 대한 시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한편, 지방자치단체 등 관계 당국이 장소별 밀집도를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관리하는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인파 가득한 이태원로 (서울=연합뉴스) 이재희 기자 =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일대에서 열린 이태원지구촌축제를 찾은 시민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다. 2022.10.16 scape@yna.co.kr

"서울 지하철서 생명의 위협 느낀 적 많아"

몸을 그야말로 구겨 넣어야 하는 서울의 만원 지하철은 시민 대다수가 경험한 가장 대표적인 과밀 사례다. '지옥철'이라는 별칭은 그 자체로 사고 위험성을 내재한 위험을 투영하지만 그런 극단적 의미의 지칭마저도 '일상어'로 자리 잡았다.

참사 이튿날인 10월 30일 한 네티즌은 희생자를 추모하면서 "금요일 강남역 퇴근길 지하철에서 숨이 턱 막히고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게 돼 무서운 상황을 자주 맞닥뜨린다"고 적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이 많다", "지옥철에서 사람을 밀치며 억지로 구겨 타는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 "제야의 종소리 행사에 인파가 너무 몰려 겨우 빠져나왔다" 같은 경험담도 잇따랐다.

회사원 신모 씨는 "지옥철 출근이 일상이 되다보니 안전불감증으로 이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새해 해돋이에 몰린 인파 [연합뉴스 자료사진]

"OECD 인구밀도 1위…서울만의 일 아냐"

수도권이 인구의 절반이 살고 문화 시설이 편중된 탓에 수도권에서 벌어지는 행사, 명소엔 좁은 공간에 사람이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히 들어차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콘서트가, 바로 옆 잠실야구장에서 프로야구 '빅게임'이 열리는 날이면 10만명이 2호선 삼성역, 종합운동장역, 잠실새내역에 집중되는 식이다.

이런 과밀 현상은 비단 수도권뿐만이 아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인구밀도는 2020년 기준 1㎢당 51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만큼 지역에서도 과도한 밀집은 비일비재하다.

매년 11월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일대에서 열리는 불꽃축제에는 100만 명 이상이 몰려 인파에 몸이 떠밀리고 구급차가 출동하는 풍경이 종종 연출된다.

서울과 경기 김포시를 오가는 무인 경전철 김포도시철도(김포골드라인)는 출퇴근 시간대면 한 칸에 표준 탑승 인원의 3배가량이 탄다.

강원 동해안 관광 명소는 새해 벽두마다 일출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맘때면 해변을 빠져나오는 데만 반나절이 걸린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은 인구가 수도권에 편중됐고 교통 등이 발달해 한 공간에 운집하기 좋은 조건"이라며 "우리는 어느새 그런 라이프스타일에 많이 익숙해졌다"고 분석했다.

제야 타종 행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만원 지하철 등에선 실제로 호흡이 곤란해지거나 공포감이 들 정도"라며 "(우리 사회에서 과밀이) 일상이 되다보니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무뎌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인파가 과밀했다고 해서 무조건 위험한 것만은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건 수십만 명이 한꺼번에 모이는 대중 행사는 일반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제야의 종소리 타종 행사는 서울시가 안전에 특별히 신경 써 인원이 많은데도 위험 방지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 사례라고 꼽았다.

초대형 행사는 정부, 지자체, 경찰 등 공권력의 역할과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정우 교수는 "이 같은 현상이 재난 상황으로 이어지면 참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만큼 안전 모니터링 강화, 지역 균형발전 등 미시적·거시적 고민이 동시에 필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대규모 행사 안전 점검 돌입한 지자체

지자체들은 이번 이태원 압사 참사를 반면교사 삼아 인파가 몰리는 지역 행사의 안전 문제를 다시 점검하는 작업에 서둘러 착수했다.

전북 전주시는 한옥마을 안전 상황을 점검하는 한편 남부시장상인회와 협의해 야시장 인파를 분산할 방안을 찾고 있다.

커피축제, 한우축제 등 연 30만 명 이상이 모이는 축제가 여럿 열리는 강원도도 이 같은 행사의 안전 상황을 점검한다.

경남 창원시와 진해구는 내년 봄꽃축제 진해군항제에 투입되는 안전요원 수를 늘리고 일부 지역을 일방통행 구역으로 지정할 방침이다.

(이해용 정윤덕 최찬흥 이정훈 노승혁 고성식 윤태현 차근호 임채두 송정은 김윤철 차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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