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①'10만명 인파' 뻔히 알고도 안이했던 경찰·구청

고은지 2022. 11. 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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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예방·위생 관리에 치중…대규모 인원 밀집 안전대책 '논외'
당일 '조짐'에도 현장대응 미흡…불법시설 해묵은 문제도 수면
'핼러윈 압사 참사' 현장감식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및 경찰 관계자 등이 '핼러윈 압사 참사' 현장감식을 벌이고 있다. 2022.10.31 yatoya@yna.co.kr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10월29일 토요일 밤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벌어진 압사 참사는 사상자 규모와 사고 전후의 경과까지 전 국민에게 충격을 던졌다.

핼러윈 기간의 정점인 이날 도로와 유명 음식점이 밀집한 세계음식거리를 잇는 좁은 골목에는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렸고 순식간에 대열이 무너지면서 156명의 사망자를 낸 최악의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이태원 일대가 매년 핼러윈이면 10만명 안팎이 몰렸던 데다 올해는 특히 3년 만에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맞게 된 터라 대규모 인파는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시민 안전에 1차 책임이 있는 경찰과 관할 구청의 태도는 '매년 있는 일' 정도로 간과한 나머지 안이했다.

점심시간 줄 서서 조문 기다리는 시민들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1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2022.11.1 pdj6635@yna.co.kr

대규모 인원 밀집 예상하고도 '무대책'…방역·치안만 초점

3년 만에 '노마스크' 핼러윈을 앞두고 지난달 26일 용산구와 경찰, 이태원역장,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는 사전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4자 간담회를 열었다.

핼러윈데이에 발생할 수 있는 사건·사고를 광범위하게 논의하는 자리였는데 주로 치안관리과 위생 등에 관한 일상적 문제만 다뤄졌다.

구청에서는 자원순환과 직원이 참석해 쓰레기 문제 등을 상인회에 안내하는 데 그쳤고 경찰 역시 범죄 예방과 불법 단속, 차량 소통 중심으로 대책을 설명했다.

구청은 간담회 다음날 부구청장 주재로 '핼러윈데이 대비 긴급 대책회의'를 개최했으나 여기서도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구청과 경찰이 대규모 인파에 따른 안전 문제에 둔감했다는 것은 이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잘 드러난다.

구청이 지난달 28일 내놓은 '핼러윈데이 대비 긴급 대책회의' 보도자료를 보면 핼러윈 기간 특별 방역, 안전사고 예방, 거리 청결 확보가 이 회의의 주요 안건이었다.

주민과 시설물 안전이 언급되기는 했지만, 대규모 인원의 안전 관리를 위한 대책은 보이지 않았다. 이 회의에 따라 현장에 배치한 직원도 30명 정도로 알려졌다.

용산경찰서는 지난달 27일 '핼러윈데이 치안 대책' 자료에서 "핼러윈 주말 하루 약 10만명에 가까운 인원이 이태원관광특구 중심으로 제한적인 공간에 모이다 보니 불법촬영·강제추행·절도 등과 같은 범죄가 빈발할 수 있고 교통체증으로 시민 불편도 가중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 "범죄·무질서 취약장소를 분석해 핼러윈 주말 200여명을 이태원 현장에 배치하고 시민 안전과 질서유지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사건 당일 투입된 경찰 인원은 137명이었다.

10만명 규모의 많은 인원이 모일 것을 이미 알았고 이에 따른 질서유지에 힘쓰겠다고는 했지만 성범죄나 마약류 단속 등 범죄 예방이 대책의 방점이었다.

홍기현 경찰청 경비국장은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에서 "다수 인원의 운집으로 인해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예견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태원 참사 골목 옆 호텔 건물 일부 '불법 증축'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모습. 골목 오른편이 해밀톤 호텔 건물이다. 2022.11.1 hihong@yna.co.kr

전조증상에도 현장대응 '미흡'…"주최 측 없어서"

참사 하루전과 당일 전조 증상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사고 전날부터 인파에 떠밀려 가다가 넘어지거나 부딪히는 사고가 많이 있었지만 현장 통제는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1일 참사 직전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가 11건 있었다는 점을 밝히면서 "신고를 처리하는 현장의 대응이 미흡했다고 판단한다"고 자인했다.

참사 4시간여 전에 위험을 알리는 첫 112 신고가 접수됐지만 경찰은 핼러윈 저녁 이태원의 일상적인 일로 여겨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사람의 통행을 통제하기 위한 저지선(폴리스라인)은 없었고 임계점에 다다른 밀집도에도 공권력은 개입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달 15∼16일 이태원관광특구 주최, 서울시와 용산구 후원으로 이태원 일대에서 열린 '지구촌축제'와 비교된다.

당시 시와 구청은 사전에 여러 차례 회의를 열어 축제 방문자의 안전관리 대책 등을 논의했고 용산구 직원만 1천78명을 행사 지원에 투입했다. 경찰과도 협의해 도로 교통도 통제했다.

구청과 경찰은 지구촌축제와 핼러윈데이에서의 대응이 달랐던 가장 큰 이유로 주최 측 유무를 꼽았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지난달 31일 "이건(핼러윈) 축제가 아니다"라며 "축제면 행사의 내용이나 주최 측이 있는데 내용도 없고 그냥 핼러윈 데이에 모이는 일종의,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역시 핼러윈처럼 명확한 주최자 없이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상황을 대비한 경찰 매뉴얼은 없다고 책임 소재에 선을 그었다.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는 시설물 등 오랜 문제도 부상했다.

참사가 벌어진 세계음식거리 옆 건물인 해밀톤호텔 본관 북측 주점에 설치된 테라스(17.4㎡)가 무단 증축된 것이 대표적이다. 사고 당시 세계음식거리에 있던 인파가 테라스가 있던 지점을 지나 좁은 내리막길로 몰리면서 흐름이 원활치 않았다.

카카오맵을 보면 이 테라스는 2010년 10월 거리뷰부터 등장한다.

해밀톤호텔은 북측 별관, 이태원역과 맞닿은 본관 옆 B동도 무단증축에 따른 위반건축물로 지정된 상태다.

구청은 수개월 전부터 이 부분에 대해 호텔 측에 시정을 요구했으나 조치가 이뤄지지 않자 강제이행금을 부과하고 건축물대장에 해당 내용을 기재했다. 다만, 철거 등 적극적인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구청 측은 추후 해당 시설물 철거를 강제집행할 지는 "검토해봐야 한다"라고만 말했다.

[그래픽] '이태원 참사' 피해 왜 컸나 (서울=연합뉴스) 이재윤 기자 = 29일 밤 이태원동 중심에 있는 해밀톤 호텔 옆 폭 3.2m, 길이 40m, 경사도 10% 정도의 좁고 경사진 길에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yoon2@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e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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