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딸 매일 입던 재킷"…어머니의 눈물(종합)
유품 안고 오열…생존자 "살아남아 감사하지만 마음 아파"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저거예요, 저거. 저 좀 보여주세요. 아아!"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 바닥을 살펴보던 한 중년 여성은 가지런히 놓인 여성용 부츠를 보자마자 털썩 주저앉아 비명을 질렀다. 경찰로부터 건네받은 부츠를 품에 꼭 안은 어머니는 힘겹게 걸음을 옮기면서도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남편도 안경 아래로 연신 눈물을 훔쳤다.
지난달 29일 이태원 압사 참사 직후 이 체육관에는 희생자 45명 시신이 잠시 안치됐다. 사흘이 지난 이날은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사상자들 옷가지와 가방·신발·안경 등 유실물 수백 점이 보관돼있다. 무게만 총 1.5t이다.
이곳을 찾은 이들은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딸이나 아들·친구·연인이 마지막으로 입고 지녔던 물건을 찾기 위해 조심스런 걸음으로 유실물을 꼼꼼히 살폈다. 곳곳에서 흐느낌과 탄식이 들렸다.
"이거 맞는데…. 찾았다. 맨날 입던 거잖아."
또 다른 중년 여성은 검은 재킷을 단번에 알아보고서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과 자녀들의 부축을 받던 그는 겨우겨우 앞으로 나아가 건네받은 재킷을 끌어안았다. 경찰은 흰 장갑을 끼고 물건을 조심스레 상자에 담아 유가족에게 전했다.
이곳에는 양쪽 모두 온전히 수거된 신발만 256켤레가 있다. 한 짝만 남은 신발도 66점이었다. 무릎까지 와 벗겨지기도 어려운 부츠가 그날의 급박한 상황을 대변했다.
핼러윈을 즐기려고 친구들과 찍은 것으로 보이는 네 컷 스티커 사진이 삐죽 나온 가방도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는 이들의 행복했던 그 날이 사진 프레임을 가득 채웠다.
핼러윈을 앞둔 토요일 누군가가 축제의 기쁨에 들떠 한껏 치장하며 차려입었을 옷가지는 여기저기 찢어졌고, 핏자국인 듯 붉은 얼룩이 묻었다. 겉옷이나 웃옷이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청바지와 반바지 같은 하의도 보였다.
각종 소지품이 담긴 가방도 테이블 위에 일렬로 늘어선 채 유가족을 기다렸다. 대부분 땅바닥에서 발에 치이거나 밟혔는지 겉피가 해져 온전치 못한 모습이었다.
가방 틈 속으로 공과금 고지서와 카드 영수증·화장품·마스크 등이 얼핏 비쳤다. 한 핸드백 속에는 20대 여성의 신분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신분증이 든 가방처럼 주인이 확인된 분실물에는 이름표가 붙었다.
경찰이 미처 수거하지 못한 것인지, 한 가방에 들어 있던 휴대전화에서는 애타게 벨이 울리기도 했다.
이날 오후 5시께까지 유가족이나 주인에게 돌아간 유실물은 총 34점이다.
급히 현장을 빠져나오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물건을 찾는 생존자들 발길도 이어졌다.
장여진(21)씨는 "살아남아 감사하지만, 희생자분들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며 그날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듯 황망한 모습이었다. 표정은 어두웠고 목소리는 떨렸다.
그는 사고 당일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에서 인파에 떠밀려가다 넘어지면서 가장 아랫부분에 깔렸다. 하반신은 다른 행인의 몸에 짓눌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였다. 구급대원들 도움으로 간신히 구조됐지만, 왼쪽 다리에 심한 골절상을 입었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어서 언제 가방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장씨는 "인파가 너무 많아져 빨리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사람들에 휩쓸려 그 골목길까지 가게 됐다"며 "나는 다행히 밤 11시쯤 구조가 됐지만, 주변에는 이미 정신을 잃은 사람이 많았다"고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돌아봤다.
장씨가 되찾은 작은 손가방은 누군가에게 밟힌 듯 짓이겨지고 여기저기 흙먼지가 묻어있었다. 그는 놀란 마음이 아직 진정되지 않은 듯 초점이 명확하지 않은 눈으로 한동안 자신의 가방을 쳐다봤다.
또 다른 20대 여성 생존자는 팔에 깁스를 한 채 신발을 찾으러 왔다.
그는 "죽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숨막혀서 잠깐 실신했는데, 옆에서 한 외국인이 (일어나라고) 소리쳐주는 바람에 깼다"며 "지금은 멍하긴 하지만 살았다는 안도감이 든다"고 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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