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진 신발 한 짝, 찢긴 옷…지워지지 않은 참사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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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잃으려고 할 때 얼굴 위로 물을 뿌려주고 '정신 차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군가 잡아주셔서 손에 있는 걸 다 일단 놓고 빠져나왔습니다."
150명 넘는 사망자가 나온 '이태원 참사' 당시 엉킨 인파 속에서 빠져나온 장모(22)씨는 1일 잃어버린 가방을 찾으러 서울 용산구 원효로다목적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유실물 센터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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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물 확인하고 주저 앉아 '오열'
생존자 "지금도 놀라서 잠 못자"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정신을 잃으려고 할 때 얼굴 위로 물을 뿌려주고 ‘정신 차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군가 잡아주셔서 손에 있는 걸 다 일단 놓고 빠져나왔습니다.”
장씨는 지난달 29일 친구와 이태원을 방문했다가 참사에 휘말렸다. 장씨는 넘치는 인파에 밀려 사고가 난 해밀톤 호텔 뒤편 골목으로 휩쓸렸다. 골목 중간 지점에 있던 장씨는 뒷사람에 밀려 술집 쪽으로 넘어졌다. 술집의 벽 뒷공간으로 넘어지면서 상반신이 빠져 간신히 얕은 숨은 쉴 수 있었지만, 쓰러진 인파가 장씨의 다리를 덮쳤다.
이후 사람들이 뒤엉키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각종 토사물 등 이물질이 장씨의 옷과 가방 위로 쏟아졌다. 장씨의 손에는 휴대전화와 가방이 들려 있었지만, ‘이러다가 죽는다’는 목소리를 듣고 손에 쥐고 있던 소지품을 전부 놓았다. 장씨는 그렇게 가방과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 그는 인근 상인이 내민 손을 잡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려 인파에 깔린 다리를 빼냈다. 정신이 아득해 눈이 감길 때마다 누군가 물을 뿌리고, ‘정신 차리라’며 얼굴을 만져줬다고 당시 상황을 장씨는 설명했다.
같은 시각 장씨의 가족은 장씨의 스마트 워치에서 송신한 비상전화를 듣고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감지했다. 비명은 들리는데 대답은 없었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기 전 친구와 이태원에 놀러 간다고 한 장씨의 말이 떠오른 장씨 가족은 ‘무슨 일 났구나’ 싶어 이태원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이날 유실물 센터에 장씨와 동행한 친척 김모(70)씨는 “조카에게 10시쯤에 비상신호가 왔고, 그때쯤 뉴스가 나오고 심각함을 느꼈다”며 “전화해보니 나중에서야 경찰이 받아서 발칵 집안이 뒤집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부분 사고가 나고 경찰이 전화를 받으면 죽은 줄 알지 않느냐”며 “이태원으로 달려갔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조카가 경상자로 분류돼 업고 현장에서 빠져나와 바로 응급실에 갔다”며 “천운으로 산 것”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들 가족은 아직도 그날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김씨는 “나도 그렇지만, 얘 부모님도 충격에 놀라서 지금도 자다가 깨다가 반복한다. 트라우마가 금세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며 “불안하고 걱정이 돼서 어디 갈 때나 항상 조카를 데리고 다닌다. 오늘도 (유실물 센터에) 같이 왔다”고 했다.
장씨 소지품 외에도 많은 유실물이 유실물 센터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찢긴 옷’, ‘한 짝밖에 없는 신발’, ‘부서진 이어폰’ 등 총 860점이다. 유실물들은 하나같이 흙과 먼지 등을 뒤집어 쓰고 있다. 인파에 휩쓸려 뒹굴고 밟히는 등 당시 참혹하고, 급박했던 참사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유실물 센터엔 이날 오전부터 하나둘 발길이 이어졌다. 한 중년의 여성은 찾던 유실물을 발견하자 주저앉아 오열했다. 다른 이들은 그를 옆에서 부축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한 여성은 휴대전화로 찍은 신발과 옷 사진과 유실물을 대조해보더니 이내 유실물을 끌어안고 한동안 흐느꼈다.
이용성 (utilit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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