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경제는 돌아가야 한다"...국가적 힘 모아야 할 때
15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로 온 나라가 침통에 빠져 있다. 사고 직후 45구의 희생자 시신이 안치됐던 용산 다목적 실내체육관에는 현장에 있었던 이들이 분실한 옷가지와 가방, 신발, 안경 등 유실물 수백 점만이 쓸쓸하게 보관돼 있다. 그 무게만 1.5t이다.
이번 사고는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2014년 4월 세월호 사고에 이은 세번째의 대형 참사다. 대구 지하철때는 192명의 시민이, 세월호때는 미수습자를 포함해 304명의 학생들이 숨졌다.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사고는 되풀이 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안전수준과 안전의식은 여전히 제자리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교수(소방방재학)는 "만원 지하철 등이 일상이 되다보니 안전 의식이 무뎌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오는 5일까지를 국가 애도기간으로 선포하고 단체회식이나 사적 모임, 음주 자제령을 내렸다. 관청에는 조기가 게양되고, 공무원이나 공기업 임직원들은 검은 리본을 달고 근무한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줄줄이 축제나 행사 계획을 취소했다. 부산시는 5일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개최하려던 부산불꽃축제를 무기한 연기했다. 대구시는4~5일 예정이던 오페라축제를 12월로 늦췄으며, 파주시는 '감악산 단풍거리 축제'를 긴급 취소했다. 서울 마포구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홍익대 일대 업소에 자율휴업을 권고했다.
민간에서도 애도의 물결이 뜨겁다. 이재용 회장 취임 이후 처음 창립기념일(53주년)을 맞은 삼성전자는 계획했던 내부 축하 공연을 취소했다. 신세계그룹은 11일까지 진행키로 했던 '쓱데이' 행사를 취소했다.롯데쇼핑도 9일까지 진행하는 '롯키데이' 행사를 최소화하고 상품 할인만 진행하기로 했다. 현대백화점은 크리스마스 점등 이벤트 등을 축소하거나 중단했다. '한국판 블랙 프라이데이'로 불리는 코리아세일페스타 추진위원회는 31일 개막식 행사를 취소한 데 이어 별다른 공연이나 행사 없이 판매만 진행키로 했다.
정치권에선 사고 원인과 책임을 둘러싸고 여야간 본격적인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행사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인 축제로 '인파 사고'의 성격이 강하다며, 사고 원인 규명과 재발방지책 마련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무책임한 가짜뉴스들이 국민 분열과 불신을 부추겨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한다"며 "대형 사고를 예방할 사회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국가 역량을 모을 수 있도록 국민께서도 마음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반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명백한 인재이고, 정부의 무능과 불찰로 인한 참사가 맞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대한민국은 위태로운 국면이다. 또다른 경제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도 적지 않다. 끝이 안보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에 따른 미·중 갈등의 격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 등 대외 악재가 가득하다. 내부적으론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에 저성장) 경계에서 경제지표는 '빨간 불' 일색이다. 수출이 2년만에 감소세로 돌아서고, 올 무역적자는 480억달러로 사상 최대에 이를 전망이다. 3분기 성장률은 전기 대비 0.3%에 그쳤다. 소비 심리도 얼어붙고 있다. 한은의 '10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의 종합적인 경기 인식을 나타내는 소비자심리지수는 88.8로 전달보다 2.6 떨어졌다.
이태원 참사가 우리 경제의 혹한기를 앞당길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8년 전 '세월호 참사' 직후처럼 애도 분위기가 확산되고 소비 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할 것이란 우려다. 고물가와 고환율, 고금리 상황에서 소비와 일상생활 마저 멈춘다면 서민들의 생계는 더 팍팍해질 것이다. 수많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삶이 계속된 것처럼 경제는 돌아야 한다. 축제를 열더라도, 세일 행사를 하더라도 애도하는 마음을 간직하면 되지 않을까. 이태원 참사는 '대한민국호'의 또다른 분수령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국력을 분산시키는 게 아니라 보다 선진적이고 안전한 국가로 탈바꿈하는 계기로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강현철 총괄부국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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