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모양 의자에 앉으니…작품의 시선이 닿는 곳이 보였다 [이선아의 걷다가 예술]

이선아 2022. 11. 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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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들이 마련한 내부 정원은 삭막한 도심에서 잠시나마 청량감을 느낄 수 있는 '자연의 공간'이다.

트리니티가든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세계적 예술가들의 조각 작품이다.

만지기 조심스러운 다른 예술작품과 달리 아이 벤치는 실제로 방문객이 앉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부르주아는 '바라본다'는 행위를 통해 세상을 지각하고, 세상과 교류하는 느낌을 예술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직접 느끼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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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부르주아 '아이 벤치'
신세계百 본점 6층 정원에 전시
화강암 벤치…누구나 앉을 수 있어
"본다는 건 세상과 교류하는 행위"
신체 소재로 작품 만든 부르주아
父 불륜 등 트라우마 작품에 담아
어머니 형상화한 '거미' 만들기도


백화점들이 마련한 내부 정원은 삭막한 도심에서 잠시나마 청량감을 느낄 수 있는 ‘자연의 공간’이다. 서울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6층에 있는 트리니티가든도 그렇다. 이곳에 들어서면 탁 트인 하늘과 함께 푸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트리니티가든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세계적 예술가들의 조각 작품이다. 헨리 무어, 호안 미로 등 각국을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건 20세기 조각 거장으로 꼽히는 프랑스계 미국인 예술가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사진)의 ‘아이 벤치’(왼쪽 사진)다. 화강암을 사람 눈 모양으로 깎아 제작한 의자 조각품이다. 만지기 조심스러운 다른 예술작품과 달리 아이 벤치는 실제로 방문객이 앉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주름진 눈꺼풀 사이로 상대를 꿰뚫어보는 듯한 동공. 아이 벤치는 방문객을 ‘시선의 대상’으로 만든다. 하지만 벤치에 앉는 순간, 방문객은 ‘시선의 주체’로 바뀐다. 부르주아는 ‘바라본다’는 행위를 통해 세상을 지각하고, 세상과 교류하는 느낌을 예술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직접 느끼도록 했다. 부르주아는 생전에 이 작품에 대해 “그 누구도 내가 ‘본다’는 행위를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부르주아는 눈과 귀, 손과 발 등 인체의 일부분을 따로 떼어내 만드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는 여성의 신체에 많은 관심을 뒀다. 여성의 가슴, 성기 등을 추상화한 파격적인 작품을 다수 선보였다. 오명란 신세계갤러리 큐레이터는 “부르주아는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며 느낀 감정을 인체를 통해 표현하곤 했다”며 “눈 모양 벤치도 부르주아의 다른 작품처럼 여성의 주체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르주아의 작품들은 그의 불운한 유년 시절과도 맞닿아 있다는 게 미술계의 해석이다. 1911년 프랑스에서 미술품 거래상의 딸로 태어난 부르주아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가정교사가 불륜관계를 맺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어머니는 홀로 가정을 지키다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떴다. 부르주아의 언니와 남동생은 ‘문제아’였다.

어느 누구 기댈 사람 하나 없었던 부르주아는 40대에 이르러서도 제대로 된 작품 하나를 제작하지 못했다. 부르주아는 늘그막에서야 빛을 봤다. 40대를 넘어서며 굵직한 작품들을 남기기 시작했고, 60대에 비로소 미술계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1982년 여성 작가 최초로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을 때 그의 나이는 71세였다. 88세엔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독창적 작품 뒤에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있었다. 대표작인 ‘마망’(오른쪽 사진)은 높이 10m의 거대한 거미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이 작품 안에 담긴 메시지는 ‘모성(母性)’이다. 알을 지키기 위해 몸을 한껏 부풀리고 있는 거미에게서 부르주아는 홀로 자신을 지키던 어머니를 떠올렸다고 한다. 반대로 가늘고 긴 거미의 다리들은 상처받기 쉬운 자신의 내면을 뜻하기도 한다. 부르주아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제작한 6점의 마망 중 하나는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 있다.

부르주아는 2010년 99세에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예술로 표현하는 것을 넘어, 예술로 자신을 치유했다. 부르주아가 말한 ‘예술의 정의’도 그랬다. “나에게 예술은 카타르시스고, 두려움을 넘어서기 위한 작업이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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