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여성들, 점령·젠더 폭력에 정신건강 문제까지 삼중고

김양균 기자 2022. 11. 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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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팔레스타인 보건인권 리포트] ⑤정신건강 관리 대책 시급하지만 예산 비중 낮고 정책 의지도 약해

(지디넷코리아=김양균 기자)[나블루스(팔레스타인 서안지구)=김양균 기자]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거주하는 현지 여성들은 이스라엘 점령폭력(Occupation-Related Violence)과 가정폭력 등 젠더 기반 폭력(Gender-Based Violence), 이로 인한 정신건강의 문제 등 삼중고에 노출돼 있었다.

지난 9일(현지시각) 서안지구의 나블루스(Nablus)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여성 트라우마 힐링센터’의 도움으로 가정폭력 피해를 당한 5명의 현지 여성들을 만났다. 그들은 가정폭력과 그로 인한 불안·우울·트라우마(Trauma) 등 치료가 시급해 보이는 정신건강 문제를 갖고 있었다.

사진=김양균 기자

최근 이란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히잡(Hijab) 거부 운동에서 알 수 있듯 이슬람의 영향력 아래 있는 국가들에서 여성은 오랜 기간 차별과 억압, 희생을 강요받아왔다. 이는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인데, 이스라엘 점령 하의 삶이 팔레스타인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즉, 이스라엘의 점령 폭력이 가정 폭력을 더욱 유발하고, 이것은 다시 여성의 정신건강의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이중, 삼중의 폭력이 가해자고 있다는 주장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 여성의 젠더 기반 폭력 경험: 정신 건강 전문가의 인식과 우려’(Gender-based violence experiences among Palestinian women during the COVID-19 pandemic: mental health professionals’ perceptions and concerns) 연구는 팔레스타인 여성을 향한 폭력이 법·가족·사회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슬람 문화의 가부장제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분석한다. 논문은 여기에 더해 이스라엘 점령 하의 삶도 현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희생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나블루스 내 심리학자는 “이스라엘 군인이 남성에게 가하는 폭력은 집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유발한다”고 밝혔으며, 사회복지사도 “이스라엘 점령 정책에 의한 폭력은 가정폭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팔레스타인 여성 인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온 사단법인 아디는 “70년 이상 이어진 이스라엘의 점령과 폭력, 여성으로서 겪는 젠더 기반 폭력은 팔레스타인 여성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김양균 기자

■ 팔레스타인 여성 5인의 증언

지난 9일 오전 11시28분(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나블루스 올드시티(Nablus old city)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여성 트라우마 힐링센터에 아이를 안은 여성이 찾아왔다. 하키마(36·가명)는 현지 여성들이 입는 푸른색 베일에 얼룩무늬의 히잡(Hijab) 차림이었다. 볼에는 가로로 긴 흉터가 있었다.

결혼 첫 해부터 시작된 가정폭력은 8년 동안의 결혼 생활 내내 이어졌다. 남편은 술만 마시면 주먹을 휘둘렀고, 하키마는 일주일에 1~2번 가량 구타와 언어·성적 폭력을 당했다. 2년 전에는 남편의 폭력으로 실신해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었다.

무직 상태였던 남편이 간혹 일용직 근로 등으로 돈을 벌어오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식비 정도만 주곤 했다. 돈을 벌어오지 않을 때면 하키마는 친지의 도움으로 음식과 자녀에게 입힐 옷가지를 얻어 생활했다. 

하키마는 법원에 소송을 청구하고 싶었지만, 소송비용이 없었다. 법원 대신 경찰에 가정폭력 피해 사실을 신고하자, 경찰은 피해를 입증할 병원 진단서 제출을 요구했다. 진단서 발급에는 100셰켈(약 4만원)이 들었는데, 하키마는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남편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으며, 현재도 하키마는 남편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는 우울감과 자신감 저하를 호소했다.

나블루스에 거주하는 마리엠(38·가명)은 8명(딸 2명, 아들 6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남편이 그의 머리를 가격해 이주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귀가 후 마리엠은 딸이 삼촌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음을 알게 돼 경찰에 신고하려했다. 그러자 가해자는 집에 불을 질렀다.

이후 딸은 심리치료를 받았는데, 상담과정에서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충격을 받은 마리엠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심리상담을 받고 생각을 바꿨다. 두 살배기 막내딸에게는 엄마가 필요했다. 마리엠이 살아야 할 이유는 자녀들 뿐이었다.

파티마(26·가명)는 두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을 뒀다고 했다. 남편은 툭하면 물건을 집어던지고 파티마와 자녀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가정폭력과 학대를 받던 그는 경제적으로도 쪼들렸다. 참다못해 남편과 별거코자 집을 나왔지만, 자녀들과 헤어지자 우울증과 고립감이 생겼다.  어쩔 수 없이 파티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린(37·가명)도 남편의 상습적인 물리·정신 폭력과 성적학대에 시달렸다. 그는 “남편은 자신이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폭력적인 행동을 했다”고 증언했다. 시댁으로부터는 살해협박까지 받았다. 남편의 형은 아이린이 유산을 상속받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PA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검찰에 신고할 것을 권고했다. 남편은 그녀가 검찰에 가지 말라고 위협하고, 형이 자신의 아내에게 했던 살해 협박에 대한 증언도 거부했다. 결국 검찰 고소는 이뤄지지 못했다.

에일리(37·가명)는 지난 7월경 1년 반의 별거 끝에 이혼했다. 결혼 당시 그녀의 나이는 29세였지만 남편은 50세였다. 남편은 이미 첫 번째 부인이 있었으며 자녀도 7명이나 있었다. 아랍인 이스라엘 시민권자였던 남편은 에일리와의 중혼으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참고로 이스라엘 형법은 중혼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시 최대 징역 7년에 처해질 수 있다. 첫째 아내가 자신의 중혼을 신고할까 염려한 남편은 첫째 아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에일리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유산까지 하게 된 에일리는 별거 끝에 이혼을 결정했다. 당시 에일리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자신감이 저하된 상태로, 감정조절에도 문제를 갖고 있었다. 여기에 모친의 사망으로 그녀는 정신건강 문제는 더 악화됐다. 그는 자신을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라고 표현했다.

사진=김양균 기자

■ 정신건강 관리 인프라 열악…팔레스타인 보건부 의지도 부재

앞선 5명의 여성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거주민 중에서도 여성들은 젠더 폭력에 따른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를 갖고 있으며, 이에 대한 치료 등 적극적 해결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문제는 열악한 인프라와 부족한 예산, 팔레스타인 보건부(PMOH)의 대책 부재 등이다.

관련해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트라우마(Trauma)는 개인에 따라, 상처·충격의 강도에 따라 몇 가지 종류도 나뉜다. 전쟁·테러·재난·사고 등 삶에 영향을 미치는 트라우마, 자신감·자존감 등 존재에 상처를 입히는 트라우마, 충격적 경험이 일회성 또는 반복적으로 발생해 이로 인한 상처와 충격으로 여러 심리 문제를 안기는 복합성 트라우마 등이 존재한다. 트라우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원인이 된다. 크고 작은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과 우울 등 정서적 문제도 PTSD로 접근하는 추세다.

문제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정신건강 관리 수준이다. ‘정신과와 팔레스타인 연구’(Psychiatry and the Palestinian population)에 따르면, 1967년 이후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한 정신 건강 서비스는 이스라엘 정부가 주도해 이뤄졌다. 논문은 정신건강 서비스가 충분히 만족스럽게 제공되지 않았고 저개발 됐다고 지적한다.

‘이스라엘 점령 하 팔레스타인의 정신 건강 시스템 구축’(Establishing a mental health system in the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ies) 연구는 정신건강 서비스에 대한 자원과 전문가가 매우 부족했고 비록 국제구호단체들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지원과 정신건강 서비스의 공백을 메우려 했지만, 정신건강 서비스는 정체돼 왔다고 전했다.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서안지구의 정신건강 분야의 관리를 시작했다. 지난 2004년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발생한 2차 인타파다(민중봉기) 이후 팔레스타인인의 정신 건강관리는 시급성이 요구됐지만, 당시 소요 사태의 영향으로 관련 의료기관과 진료소는 상당부분 파괴되고 말았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정신 건강 시스템에 대한 보고서’(Report on mental health system in West Bank and Gaza strip)에 따르면, 지역사회 정신건강은 보건부의 재정 예산에서 우선순위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건부(PMOH) 전체 예산의 2%가 정신건강에 사용될 뿐이며, 2%의 73%는 정신의료기관에 병원에 지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재정·관리 구조 및 인적 자원의 부족은 팔레스타인 정신 건강 서비스의 질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WHO는 ‘WHO와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을 위한 국가 협력 전략’(Country cooperation strategy for WHO and the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ies 2009–2013) 보고서를 통해서도 “더 많은  전문가 훈련 및 정신 건강 작업장을 개선이 필요하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김양균 기자(angel@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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