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CPR 했던 상인 “너무 괴롭다”…이태원 뒤덮은 트라우마

장현은 2022. 11. 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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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1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 부근에서 40년 가까이 양복점을 운영해 온 나용순(74)씨가 가게로 들어가고 있다. 나씨는 “사고 이후 마음이 아프고 울적하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해서 안에 있기가 어렵다”며 종종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다들 계속 토하고 밥도 못 먹죠. 죄책감 같은 것도 있고요. 생업의 공간이고 앞으로도 매일 와야 하니까 그게 너무 힘든거죠.”

“가게에서 혼자 가만히 있다 보면 자꾸 그날 생각이 들고…이런 마음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어요.”

참사가 발생한지 사흘이 지난 1일 이태원 인근 상가에서 만난 상인들은 상당수가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상인들은 “매일 출근하는 일터 주변에서 그런 참사가 발생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상인 연합인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에서 국가 애도기간인 오는 5일까지 휴점을 독려하면서 많은 가게가 문을 걸어 잠갔지만, 잠시 가게 문을 열거나 가게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나온 상인들은 참혹한 현장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참사 현장에서 직접 부상자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던 상인들의 트라우마는 심각했다.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박근호(59)씨는 당일 사고 현장에서 직접 여러명에게 CPR을 실시하고 사고를 수습했다. 박씨는 “고인의 명복을 빌 뿐”이라며 “그때 생각을 하면 너무 힘들고 괴로워 떠올리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참사 현장을 목격한 또 다른 상인은 현장을 떠올리는 것 자체에 대한 괴로움을 호소했다. 박아무개(32)씨는 “충격을 받았고 자질 못한다. 알레르기처럼 계속 뭔가 (감정적인게) 올라온다”며 “질문을 받을수록 더 힘들다.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지역 인근 상인을 대상으로 한 트라우마 치료 지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1일 <한겨레> 취재 결과 고용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공단 ‘직업트라우마치료센터’가 이태원 주변 상인을 위한 상담 지원에 나선다. 직업트라우마치료센터는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장의 안전보건 관리자에게 신청을 받아서 노동자 트라우마 상담을 지원하지만, 이태원 참사의 경우 국가트라우마센터의 요청을 받아 인근 상인들의 트라우마 상담을 지원하기로 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담 기관인 만큼, 이태원 인근 상점 등 노동자들 역시 가까운 센터에서 상담이 가능하시도록 협력하고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30일 정부는 국가트라우마치료센터치료 내에 ‘이태원사고 통합심리지원단’을 만들어 유가족, 부상자, 목격자 등 1000여명에 대한 치료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1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인근 가게에 휴업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는 주변 100여개 업소에 국가 애도기간인 오는 5일까지 임시 휴업을 할 것을 독려했다.

현장을 목격하진 않았지만 참사 현장에서 매일 생업을 이어가야 하는 이들의 고통도 크다. 사고 현장 30m 거리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김아무개(60)씨는 이날 오전 11시께 참사 뒤 처음으로 가게를 찾았다. 김씨는 “가게 상황을 보러 왔는데, 막상 오고보니 (현장) 상황이 더 참혹한 것 같다”며 “매일 지나다녀야 하는데 마음이 편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40년 가까이 이 골목에서만 일한 김씨는 “여기서 뭔 생각이 들겠나. 이제 올해까지만 하고 장사를 접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맞은편 거리에서 타로집을 운영하는 백련(65)씨는 참사 이후 계속 두통약을 먹고 있다. 백씨는 “그날 잔상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며 “두통약을 먹으면서도 일단 가게 상황 봐야 하니까 잠시 나온 것”이라 말했다. 양복점을 운영하는 나용순(74)씨는 “머리도 띵하고 울적하고, 그런 기분이 계속 이어진다”며 “이쪽은 보통 30∼40년 일한 사람이 많은데, 우리 생업의 공간이고 현실인데, 이건 죽는 날까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트라우마와 함께 생계의 막막함도 호소했다. 인근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박씨는 “사고 이후로 모든 게 다 멈춤이다. 정부에서도 상인들에게 조금 더 관심 가져줬으면 한다”며 “너무 슬프고 충격적이라 당장 잠도 안오는데, 생계가 걱정되니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동희 이태원 관광특구연합회장은 “그 현장을 목격하고 직접 구조에 나섰던 상인들도, 생업의 현장이 이곳인 상인들도 있다.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그 당시 기억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강한 상황”이라며 “정말 비극적인 일이고 유가족이 느낄 슬픔에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 당시 현장에서 느낀 무력감 등의 감정을 가지고 출근을 해야 하는 상인들을 위한 심리 지원도 추후 제공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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