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구원투수 K원전 위기 돌파할 초석으로
글로벌 수요 침체로 한국 경제를 지탱해왔던 수출도 상황이 여의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폴란드가 퐁트누프 용지에 원전 건설을 추진하기로 한국과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한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이번 의향서 체결로 우리나라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이후 13년 만에 우리 고유 노형, APR1400에 기반한 원전 수출의 전기를 마련했다. 수년간 막혀 있던 원전 수출의 물꼬가 지난여름 이집트 엘다바 기자재 수주로 트였다면, 이번엔 물길을 유럽 시장으로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출 경쟁력의 핵심은 결국 기술과 사람이 모여 있는 기업이다. 특히 원전 수출을 위해서는 탄탄한 국내 원전산업 및 운영 성과가 뒷받침돼야 한다. 원전은 200만개가 넘는 부품으로 구성돼 있으며, 수십 년간 가동돼야 하는 만큼, 안정적 부품 수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내 원전산업의 밸류체인이 탄탄히 유지돼야 발주국이 불안감 없이 우리 원전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에너지 안보와 탄소 저감이 전 세계적 화두가 된 오늘날, 세계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원전을 가장 현실적 대안으로 주목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우수한 원전산업이 미래 먹거리로 유망한 셈이다. UAE 바라카 원전의 성공적 건설을 통해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민관이 함께 팀 코리아로 똘똘 뭉친다면 못 해낼 이유가 없다. 제2의 바라카 원전 기적을 만들 때까지 팀 코리아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폴란드 원전 건설은 정부 주도 사업과 민간 주도 사업으로 나뉘어 추진 중인데, 민간 주도 사업은 폴란드 제1의 민간 발전사인 ZE PAK와 국영 전력회사인 PGE가 한국수력원자력과 손을 잡고 원전 건설에 참여한다. 기업 간 원전 건설 협력을 지원하고자 폴란드 국유재산부와 한국 산업통상자원부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양국 기업들은 이번 LOI를 기반으로 올해 말까지 원전 건설 기본계획을 만들고, 그 결과에 따라 타당성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원전 도입 경험이 없는 폴란드는 '2040 에너지 전략'에 따라 원전 건설을 추진 중이다. 그런 폴란드가 한국을 원전 건설의 파트너로 고려한 이유는 후보국 중 가장 우수한 원전을 차질 없이 공급할 수 있는 국가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과 원전 건설을 함께한다면 폴란드는 에너지 안보 강화와 함께 산업 발전에 필요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능력을 확충할 수 있다. 원전 관련 제도의 구축, 인력 양성, 기자재 공급 등 원전 생태계 전반에 대한 선진 경험을 압축적으로 배울 수 있으며 배터리, 수소·전기차 등 다양한 산업협력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연달아 원전 수출 낭보가 이어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무엇보다 국내 원전 산업인들의 불굴의 도전과 끊임없는 혁신의 결과물이다. 원전 불모지였던 한국은 1978년 첫 원전 도입 이후 28기의 원전을 안전하게 건설하고 문제 없이 운영해왔다. 이러한 운영 노하우에 우리의 독자적인 기술을 더해 2000년대에는 미국과 유럽도 인정하는 APR1400 개발에 성공했다. 경쟁국을 압도하는 합리적인 단가로, 약속한 일정에 맞춰 시공한다는 비즈니스의 기본에 충실했고, 2009년에는 본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기후와 문화가 전혀 다른 열사의 땅, UAE에서 첫 해외 원전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한국 원전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입증했다. 올해 이집트와 폴란드가 한국을 파트너로 선택한 배경에는 한국 원전 40년의 역사가 녹아 있다.
앞으로도 정부는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원전산업을 국가의 핵심산업으로 키워나갈 것이다.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민관이 모두 참여하는 원전 수출전략 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켜 강력한 원전 수출 드라이브를 펼치고 있다. 특히 지난 6월에 개최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등을 계기로 원전 세일즈 외교에 나섰고, 장관급 원전 수출 협력단 파견 등을 통해 상대국에 강력한 의지를 전달해왔다. 이를 통해 그간 잠시 잊혀 있던 우리 원전의 우수성을 다시금 확인시키고, "세계 원전시장에 한국이 돌아왔다"는 점을 널리 알렸다.
이번에 폴란드와 LOI를 체결했지만 최종 수주까지는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이번 성과가 폴란드 원전의 최종 수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원전 10기 수출 목표 달성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정부는 수주를 위한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나갈 것이다. 우선 원전 수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40~60년의 긴 시간 동안 그 나라와 형제 수준의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원전 발주국들은 단순히 원전 건설·운영을 넘어서 자신의 국가 비전을 달성하는 데 함께할 수 있는 국가를 원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치열한 수주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방산, 산업, 정보기술(IT), 금융 등을 망라한 차별화된 수주전략이 마련돼야 한다. 양국 간 상호이익을 도출해내고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구체적이고 신뢰성 있는 지원 방안을 민관이 함께 고민해나갈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와 폴란드는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며 빠르게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폴란드는 지정학적 위치로 잦은 외세의 침입을 겪었으며 나라를 잃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동유럽 최초로 자유선거를 통해 민주 정부를 수립하고 빠르게 자유시장경제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국가다. 현재 폴란드는 동유럽 지역 내 우리의 최대 교역투자 대상국 중 하나로, 우리 기업들의 유럽시장 공략을 위한 핵심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1989년 수교 당시 1억2000만달러에 불과하던 양국 간 교역액은 지난해 역대 최고인 77억달러를 기록할 만큼 빠르게 증가해왔다. 특히 올해 7월 폴란드는 우리나라의 전차와 자주포 등을 구매하기로 결정하고, 약 20조원 규모의 무기 수입 계약을 체결하는 등 우리나라와 실질적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해오고 있다. 역사적 유사성에 따른 연대감과 그간의 협력 성과를 바탕으로 원전과 함께 첨단제조, IT, 문화산업 등 전 분야에 걸친 협력 확대 방안을 민관이 함께 마련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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