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에 기업 바겐세일 … 삼성 적극적 M&A 나서볼만"
"차세대뿐 아니라 차차세대 제품에 대한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나가자.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부회장 시절인 지난 8월 경기 용인시 기흥구 반도체 R&D 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가 개막하면서 삼성전자는 기술과 인재를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인재와 기술이 '뉴삼성'의 열쇠라는 것이다.
이 회장이 지난달 고(故) 이건희 회장 2주기 추모식 때 사장단과 만난 자리에서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가치가 인재와 기술"이라고 언급한 것은 과거 삼성전자의 성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또 한국 경제에서 삼성전자의 역할 확대와 궤를 같이한다.
삼성전자는 1983년 64K D램 반도체를 처음 개발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87년 한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로 커졌다. 1993년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도시바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그해 삼성전자는 한국 GDP의 2.6%를 담당했다.
이후 기술과 인재에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선 삼성전자는 2006년 소니를 제치고 세계 TV 시장 1위에 올랐고, 2011년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를 꿰찼다. 삼성전자가 한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8.5%에서 2011년 11.8%로 확대됐다.
지난해 기준 삼성전자 매출은 한국 GDP의 13.5%를 차지했다. 삼성전자 매출에는 협력회사들이 만든 부가가치도 포함돼 있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하지만 협력회사들 매출 역시 결국은 삼성전자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계산이 큰 무리는 아니라는 게 업계 판단이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고 전 세계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기술이 외교안보의 중심으로 떠오른 만큼, 삼성전자가 한국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양향자 무소속 의원은 "지금은 외교와 안보가 결국 기술로 직결되는 상황"이라며 "삼성이 이를 인지하고 국가적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은 그동안 지정학 면에서나 인구 면에서나 모든 조건이 부족하기 때문에 강소국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이제 기술이 외교의 중심으로 바뀌면서 처음으로 강대국이 될 찬스를 얻었다"고 말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공급망 재편이 경제적 논리가 아니라 다른 논리로 이뤄지고 있다"며 "삼성은 지난 30년과는 다른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이 같은 변화에 연착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경제가 위축되는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적극적인 투자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시각도 나왔다. 송재용 서울대 교수는 "지금은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20년 만에 있는 기업의 바겐세일 기간이기도 하다"며 "삼성전자 사업구조와 관계 있는 시스템 반도체나 통신기업을 노려볼 만할 것이다. 삼성 입장에서는 놓친 시간을 보상받을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완성품 시장에서 압도적으로 큰 분야가 바로 모빌리티"라며 "전장 산업부터 시작해 그 이상으로 삼성이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양 의원은 "삼성의 '나노' 기술과 '클린룸' 기술을 활용하는 산업군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며 "나노 기술에서는 대표적인 분야가 통신이고, 클린룸 기술에서는 바이오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4세 경영 승계 포기를 밝힌 삼성전자의 미래 지배구조와 관련해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이 모델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지난해 삼성이 용역을 맡긴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이르면 올해 안에 나올 예정인데, 이를 기초로 개편 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발렌베리그룹은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을 비롯해 통신장비기업 에릭슨, 전자기업 일렉트로룩스 등 스웨덴 대표 기업을 여럿 보유한 스웨덴의 최대 기업집단이다. 이들의 특징은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대신 '인베스터'라는 투자회사를 통해 그룹을 지배한다는 점이다. 가문은 인베스터 이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해 주요 의사결정을 내린다. 그 대신 복수의결권 제도를 활용해 지분보다 훨씬 더 많은 의결권을 행사한다. 준법감시위원회 역시 발렌베리그룹 지배구조 등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승진 기자 / 오찬종 기자 / 이새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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