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송세월만 보냈다’ 봉화 광산 매몰사고 2차 시추 실패…전문가 “생존가능성 크다”

김현수 기자 2022. 11. 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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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한 아연광산에서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가 1일 오전 노동자 2명이 고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 170m 지점 두 곳에 구멍을 뚫는 시추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현수 기자

경북 봉화군 광산 매몰사고 고립자 생존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시도한 2차 시추 작업이 실패했다. 이번 시추작업에만 3일이 소요됐다. 노동자 가족들은 시추작업을 진행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업체가 제공한 엉터리 자료만 믿고 골든타임을 허비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봉화소방서는 1일 오후 3시쯤 지름 98㎜짜리 시추기(천공기)가 지상에서 지하 172m까지 내려갔지만 고립된 노동자들이 있는 지점과 접촉하지 못했다고 이날 브리핑에서 밝혔다. 고립된 노동자는 지하 170m 지점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시현 봉화소방서 재난대응과장은 “기존의 지름 76㎜ 시추기와 추가 도입된 시추기 2대가 오후 3시30분부터 시추를 시작했다”며 “밤사이 시추기 1대가 더 추가돼 총 5대 시추기로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구조당국은 지난 29일 오후 7시20분부터 노동자들이 갇혀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지하 170m 지점 두 곳에 구멍을 뚫는 시추작업을 했다. 다시 작업을 시작하더라도 3일은 소요된다는 소리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업체 측 도면이 오래돼 측량에 오류가 있었다”며 “첫 시추 때는 신속하게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업체 측이 가진 도면을 바탕으로 작업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업체가 가진 도면은 200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외부 측량전문가와 광산분야 전문기관 관계자를 초빙해 정확한 좌표를 설정해 시추작업을 추가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 가족들은 허탈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노동자들이 고립된지 7일째인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작업이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고립된 A씨(62)의 아들은 “가장 중요한 작업을 어떻게 업체 측이 제공한 자료만 가지고 진행을 한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사실상 허송세월만 보낸 것”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고립 노동자 구조를 위한 작업도 더디기만 하다.

구조당국은 이날 오후 3시 기준 폐갱도인 제2 수직갱도 ‘2구간’에서 선로 24m를 연결했다고 밝혔다. 구조가 가능한 지점까지 도달하는데 필요한 남은 진입로는 76m다. 하루평균 10m씩 진척된 것으로 산술적으로는 8일이 더 필요하다.

구조당국은 “(구조를 위해 파쇄해야 하는)암석의 형질이 화강암에서 석회암으로 바뀌고 있다”며 “구조에 더욱 속도가 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물 충분하면 최대 3주까지 생존 가능성 있어
물품 전달할 시추작업 반드시 성공해야

전문가는 고립된 노동자들이 아직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재해 시 생존율이 크게 떨어지는 시점은 72시간이지만, 수분공급 상태가 충분하다면 최대 21일은 버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근미 영남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여러 논문에서 물이 충분하다면 최대 3주까지 생존이 가능한 것으로 본다”며 “나이와 건강 상태, 체지방과 단백질량 등 개인마다 생존 가능 시간이 다르지만 매몰사고 당시 다치는 등 감염위험 상황이 아니라면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구조당국은 노동자들이 고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 170m 갱도의 경우 벽에서 지하수가 흐르는 등 물을 충분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상호 경대연합외과 원장도 “지하수의 성분이 중요하다”면서 “물에 나트륨이나 칼륨이 적당하게 들어있어서 전해질 불균형만 오지 않으면 2주는 버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강한 사람이라면 콩팥이 체내 칼륨을 활용해 전해질 불균형을 막는다. 가족분들이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는 지금까지 붕괴와 매몰사고의 경우 최대 생존 가능 기간은 20일을 넘기기 어렵다고 봤다. 수분 공급이 충분해도 몸이 젖거나 저녁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면 저체온증에 의해 생명을 잃을 가능성이 커서다. 또 악조건 속에서 몸의 건강보다 ‘정신적 공황’ 상태가 찾아올 수 있는 만큼 구조에 속도를 올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고립된 노동자들에게 음식물과 전기, 의약품, 통신기기를 공급할 수 있는 시추작업 성공이 중요하다”며 “생명 유지에 필요한 물품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연락을 통해 정신적으로 무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북 봉화군 한 아연채굴 광산 제2수직갱도에 1일 오전 출입통제 선이 설치돼 있다. 이 곳에는 2명의 노동자가 지하 170m 아래 7일째 고립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현수 기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서 최장 17일 생존
칠레에선 33명 광부가 69일 만에 극적 구조

실제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당시 19세였던 박모씨가 17일(377시간)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사례가 있다. 박씨는 당시 음식은 물론 물도 먹지 못한 극한의 상황에서 17일을 견뎠음에도 비교적 건강한 상태로 구조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충남 청양군 고봉광산 지하 125m 갱도에 갇힌 광부 김모씨(당시 36세)도 15일을 버텨냈다. 그는 부인이 싸준 도시락을 이틀간 나눠 먹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지하수를 도시락통에 받아 마시며 허기를 채운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 칠레 광부 매몰사건은 21세기의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다. 이 사건는 2010년 8월5일 아타카마 사막의 산호세 구리광산 붕괴사고로 갱도에 매몰된 33명의 광부가 69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일이다. 기적적인 구조 과정은 TV 등에서 생중계되며 전 세계 1억 명이 지켜봤다. 당시 구조당국은 사고 17일 만에 광부들이 갇혀있는 공간에 시추작업을 통해 구멍을 뚫어 생명 유지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했다.

태국에서는 동굴에서 17일간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한 사례도 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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