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4시간 전부터 “압사당한다” 112신고 접수… 경찰은 ‘대답’만 했다

이학준 기자 2022. 11. 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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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불편신고’라더니... 오후 6시부터 ‘압사’ 112신고 접수
오후 8시 이후부터는 경찰 통제·단속 요구도 빗발쳐
첫 신고에 출동했으나 경찰력 투입은 안 한 경찰
”사고 날 정도로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며 변명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발생 4시간 전에 ‘압사’를 우려하는 112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드러났다. ‘단순 불편신고’라던 경찰 해명과 달리 경찰의 통제를 적극 요구하는 신고였다. 그러나 경찰은 별다른 지시나 조치를 하지 않았다. 경찰이 제때 경력을 투입해 현장을 통제했더라면 이번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1일 경찰청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 29일 오후 10시 15분 이전에 ‘압사 사고가 날 것 같다’는 취지의 112신고는 총 11건이었다. 이 중 경찰이 실제 출동한 것은 4건에 불과했고, 나머지 7건은 신고가 접수된 곳 주변에 위치한 경찰관에게 통보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래픽-손민균

특히 첫 112신고는 사고 발생 약 4시간 전인 오후 6시 34분이었다. ‘단순 불편신고’라던 경찰 설명과 달리 압사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실제 참사가 벌어진 곳에 경찰의 통제를 요구하는 신고였다.

첫 신고자인 A씨는 사고가 발생한 골목길에 위치한 한 편의점을 언급하며 “골목에 사람들이 오르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내려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당할 것 같다”며 “겨우 빠져나왔는데, 인파가 너무 많다. 통제 좀 해줘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에 신고를 접수받은 경찰관은 “사람들이 교행이 잘 안 되고 압사(하고) 밀려서 넘어지고 그러면 큰 사고 날 것 같다는 거냐”며 되물었고, A씨는 “지금 너무 소름끼친다”며 당시 상황을 더 자세히 전했다.

A씨는 “올라오는 골목이 굉장히 좁은 골목인데, 이태원역에서 내리는 인구가 다 올라오니 거기서 빠져나오는 인구와 섞이고, 클럽에 서 있는 줄하고 섞여 있다”며 “메인 거리에서 나오는 인구하고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나와서 그 골목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 아무도 통제를 안 한다”며 “경찰이 좀 서서 통제해서 인구를 좀 뺀 다음에 안으로 들어오게 해줘야 한다. 나오지도 못하는데, 지금 사람이 막 쏟아져서 다니고 있다”고 했다. 이에 경찰관은 “출동해서 확인해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의료진과 소방대원들이 압사 사고 사망자들을 이송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대기하고 있다./뉴스1

대형 사고를 직감해 경찰의 통제·단속을 요구하는 112신고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고 발생 약 2시간 전인 오후 8시 9분에는 시민 B씨가 “인원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밀치고 난리가 나 넘어지고 다치고 있다”며 “단속 좀 어떻게 해야 될 것 같다”고 신고했다. 이번에도 경찰관은 “한번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두 번째 신고 약 20분 뒤부터는 “사람들이 길바닥에 쓰러진다” “대형사고가 나기 일보 직전이다” “위험하다” “통제가 안 된다” “심각하다” “아수라장이다” 등 신고가 빗발쳤다. 사고 바로 직전인 오후 10시 11분쯤에는 112신고 전화에 사람들의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경찰은 첫 신고 당시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력을 투입해 이태원 일대에 대한 통제에 나서지는 않았다. 첫 신고가 그리 위험해보이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황창선 경찰청 치안상황관리관은 이날 첫 신고와 관련해 “평상시에 ‘아 죽을 것 같다’라고 말하듯이 하는 게 아닌가 싶다”며 “신고자는 공포심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시간대나 장소적으로 사고 날 정도로 위험도가 있지 않아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녹취록을 보면서 ‘압사’라는 용어가 나와 당시 신고자 입장에서는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신고도 (이태원역) 입구 쪽이었기 때문에 상황판단을 그렇게 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첫 신고 이후에도 비슷한 신고가 10건이나 더 있었지만 경력 투입 등 별다른 조치나 지시사항을 내리지 않았다. 이에 대해 황 관리관은 “신고가 누적됐을 때 상황실에서 어떻게 했는지는 감찰에서 조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곱 번째 신고 이후에는 현장에 출동조차 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는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도 확인이 필요하다”고만 했다.

이번 사고는 지난 29일 오후 10시 15분쯤 이태원 해밀턴 호텔 인근에서 핼러윈 행사를 위해 모인 인파 중 일부가 넘어지면서 발생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시민들은 좁은 골목에 인파가 과도하게 몰리면서 사람들이 중심을 잃고 넘어져 사고가 발생했다고 증언했다.

이번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이날 오전 11시 기준 156명이다.

그래픽=손민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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