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방송, 구조물·마네킹 동원해 이태원 사고 ‘아날로그’ 분석…“‘군중 눈사태’ 재현”

사고 장소와 유사한 5.7도 경사각 구조물에 마네킹 밀집시켜 세워 현장 재연
마네킹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는 모습 시연…“몸 조금만 기울여도 쏠려”
“옷 두께·소지품 생각하면 압박 더욱 심하다” 분석

경사 구조물과 마네킹을 이용해 이태원 대규모 압사 사고를 분석하고 있는 일본 ANN 방송. 일본 ANN 방송 유튜브 캡처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발생한 대규모 압사 참사와 관련해 일본의 한 방송사가 경사 구조물에 직접 마네킹을 밀집시켜 세우고 사람이 안에 들어가는 ‘아날로그 실험’을 하며 사고 원인을 분석했다.

지난달 31일 일본 ANN 방송사는 ‘재해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154명(방송 당시)의 사상자 군중 눈사태 현장 재현’이라는 제목으로 이태원 참사 요인을 짚었다.

방송 진행 기자는 “서울 번화가 이태원 핼러윈 행사에 모인 많은 젊은이가 ‘군중 눈사태’에 휘말려 일본인 2명을 포함해 154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가 됐다”며 “왜 154명의 희생자가 이 좁은 길에서 나온 것일까. 사고 현장의 언덕을 재현해 검증하겠다”고 분석을 시작했다.

스튜디오에는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 골목 경사도인 경사각 5.7도의 구조물이 설치됐다. 구조물 크기는 1㎡였으며, 그 위에 9개의 마네킹이 밀착된 채 세워져 있었다.

ANN 측에서 실험을 위해 준비한 구조물. 각도가 이태원 사고 현장의 경사각과 유사한 5.7도로 설정돼있다. 일본 ANN 방송 유튜브 캡처

 
기자는 “이 길은 비교적 급격한 내리막이다. 화면에서는 완만해 보이지만, 실제로 올라가 보면 경사가 급격해져 조심해야 한다”면서 “몸을 조금만 기울여도 앞으로 쏠린다. 휠체어 슬로프보다 2배 정도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마네킹 사이로 들어간 기자는 “1㎡에 10명 이상이 들어가면 군중 눈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내 눈앞에는 앞사람의 후두부가 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으며 압박감이 든다”고 전했다.

이어서 “마네킹들은 마른 체형으로 제작됐는데, 실제로 사람들이 더 두꺼운 옷을 입고 소지품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압박감이 더 심하다”면서 “발 밑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니) 경사가 더 급격하게 느껴지고 어느 쪽이든 무서운 느낌”이라고 부연했다.

밀집된 마네킹 사이로 진입을 시연해보이는 기자. 일본 ANN 방송 유튜브 갈무리

 
아울러 이 매체는 사람들이 중심을 잃고 앞으로 쏠리게 되는 이유도 분석했다.

기자는 허리를 숙이는 동작을 하면서 “서로 몸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지만, 누군가 허리를 숙이거나 땅에 떨어진 것을 주우려고 하는 순간 주위에 있던 사람은 지탱하던 것(앞사람의 상체)이 없어져서 넘어지고, 또 그 앞에 있던 사람도 함께 넘어지는 등 도미노처럼 우르르 쓰러진다. 경사가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50㎏의 압력이 가해지면 사람은 답답함과 공포를 호소하게 되며, 많은 사람이 쓰러져 포개진다면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는 수백㎏의 압력이 가해진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기립 상태로 압사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를 인용해 “강한 압력에 노출되면 혈류가 제한돼 30초 뒤 의식을 잃고 약 6분 만에 죽음에 이른다”고 전했다.

기자는 끝으로 “이제 해마다 핼러윈이 돌아오면 이 참사가 떠오를 수밖에 없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한편 이번 사고에서 사망한 일본인은 여성 2명이며, 각각 20대와 10대이다.

정재우 온라인 뉴스 기자 wamp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