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화된 무책임, 희생자에 책임 돌리는 방식은 ‘모두의 트라우마’ 남길 뿐”[이태원 핼러윈 참사]

박하얀 기자 2022. 11. 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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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이태원 핼러윈 참사 추모공간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달 29일 300명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고도 안전 대책을 세우지 않은 당국의 안일한 행정이 초래한 ‘인재’임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서양 명절에 누가 이태원에 놀러가라고 했냐” “놀다가 죽은 거 아니냐”는 식으로 피해자를 조롱하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발언이 참사 당일부터 쏟아지고 있다.

피해자를 향한 무분별한 비방은 사회 ‘구조’의 문제를 가리고 생존자들과 유가족의 트라우마를 키운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원인이 규명되지 않는 참사는 모두의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조직화된 무책임, 쌓여가는 불안은 피해자를 향한다”

이번 참사는 서울 한복판에서 길을 걷다가 벌어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이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지만 누구하나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다. 책임의 공백 속에 쌓여가는 시민의 불안과 분노가 참사 피해자 개인의 행동을 문제삼는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1일 “(서울)시장, 경찰, 용산구청장, 중앙정부 대통령, 행정안전부 장관까지 책임자 라인에 있는 어느 누구도 반성하거나 책임지지 않고 있다”며 “그래서 피해자나 밀었다고 알려진 사람을 찾으려는 ‘굉장히 나쁜 혐오적, 부정적 방식’으로 사회 혼란을 해소하려는 현상들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런 식의 피해자 비난은 구조적 원인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서 분노 방향을 다른 데로 돌리는 매우 위험한 혐오 발언”이라고 했다.

피해자들을 ‘비정상’으로 구분지어 자신의 안전을 확인받고자 하는 심리의 반영이라는 분석도 있다. 세대론을 연구해 온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로에게 책임을 계속 전가하는 ‘조직화된 무책임성’ ‘책임의 수건 돌리기’”라며 “희생자에게 책임을 돌림으로써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제대로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하는 심리이자, 사회적 태도”라고 말했다. 또 “자신과 같은 ‘정상적’인 사람에게는 이 세상이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게 반영된 듯 하다. 그런 가운데 피해자들의 ‘등급’을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핼러윈은 ‘서양에서 유입된 축제’라고 강조하는 것도 피해자에 대한 비난을 정당화하는 기제처럼 작용한다.

피해자 비방은 형법상 모욕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차별 받아온 소수자 집단을 공격하는 전형적인 혐오표현과는 양상이 다르지만, 참사 희생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비난하는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1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유실물센터에 유실물들이 놓여 있다. 권도현 기자
“모두의 트라우마로 남지 않으려면”

‘경쟁’ ‘개인주의’를 내세우는 신자유주의를 개인이 오랜 시간 학습해 내면화하고 조회수, 즉 관심이 돈이 되는 ‘주목경제’의 영향으로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국가가 이런 문제를 조정할 능력을 갖지 못했던 것, 입시경쟁 교육, 신자유주의 ‘먹튀 경제’ 등이 혐오, 적대에 (우리) 사회가 속수무책인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며 “구조나 사회에 대한 감각이 거의 결여돼버린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모든 게 개인화된다. ‘개인의 잘못’이라며 일말의 애도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국가의 사회안전망에 기대본 경험의 부재가 참사 원인 규명과 생존자·유가족 지원 등에 투입되는 사회적 비용에 대한 반감으로 번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가 국민을 책임져야 한다는 관념이 약한 것 같다”며 “국가가 국민의 물리적 안전, 소득보전 등 사회안전망 보장을 잘해줘 혜택을 받은 시민 입장이라면 국가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사람을 케어해주는 것에 별 불만이 없을 수 있는데, ‘나도 국가로부터 도움받은 게 없는데, 축제에 가서 (피해)당한 사람들을 왜 해주냐’며 일차적인 감정을 즉각 표출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여권이 참사 원인을 규명하라는 여론을 ‘정쟁’ 프레임으로 규정하는 것을 경계하고 피해자 비방에 엄정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경아 교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건 ‘정치’적 입장과는 관계가 없다. 국가 ‘행정’의 책임을 묻는 것”이라며 “희생자들이 왜 죽었는지 밝혀야 우리가 제대로 애도할 수 있는 근거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사건) 원인을 설명할 수 없으면서 슬픔에 잠기면 트라우마가 된다. 세월호 때 겪은 것처럼 집단적 트라우마가 되지 않으려면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이주희 교수는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정부의 태도가 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고 했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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