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머리띠 남성’ 찾는 경찰, 혐의 입증 쉽지 않을 듯[이태원 핼러윈 참사]
CCTV 분석·목격자 조사 등 수사 집중
‘밀치기-사망’ 인과관계 입증 어려워
‘책임 떠넘길 희생양 만들기’ 시각도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원인과 책임을 수사하는 경찰이 이른바 ‘토끼 머리띠 남성’을 추적하고 있다. 이런 모습의 남성 일행이 골목 위쪽에서 “밀어! 밀어!”라고 외치며 사람들을 밀어내 156명이 압사당하는 참사를 촉발했다는 주장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특정인에게 형사책임을 지우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경찰청은 수사본부에 475명을, 강력범죄수사대장이 팀장인 전담수사팀에만 105명을 투입해 참사 경위를 수사 중이다. 경찰은 지난달 31일 기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 폐쇄회로(CC)TV 42곳의 영상을 확보하고 목격자 44명을 조사했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골목 위쪽에서 밀었다는 인물을 특정해 수사하느냐’는 질문에 “목격자 조사와 영상 분석을 통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정확한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처벌하려고 한다면 ‘가해자’에게는 폭행치사죄나 과실치사죄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가해자가 자신이 미는 행위로 누군가가 죽거나 다칠 수 있다고 예견했는데도 고의로 밀었다(폭행)면 폭행치사죄를, 참사를 예견했지만 고의 없이 밀었다(과실)면 과실치사죄를 적용할 수 있다. 폭행치사죄가 과실치사죄보다 형량이 무겁지만 폭행 행위가 사망과 직접적으로 연관돼야 한다.
법조계에선 가해자의 미는 행위가 연쇄작용을 일으켜 참사로 이어졌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을 형사처벌의 전제 조건으로 꼽는다. 당시 골목길에 수백명이 밀집해 밀고 당기던 상황에서 누가 ‘가해자’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데다, 미는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연쇄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입증하기는 더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가해자가 본인도 압사당할 위협에서 피난하려 했다면 적법행위를 기대할 가능성(기대 가능성)이 없었다고 인정돼 책임을 지우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경찰이 책임을 떠넘길 희생양을 찾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특정인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라 참사 재발을 방지할 국가 안전 시스템 마련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누리꾼들에게 ‘토끼 머리띠 남성’으로 지목된 시민은 이날 인스타그램에 “저와 친구가 범인으로 마녀사냥당하고 있다. 그날 이태원에 방문한 사실은 맞지만 사고 당시 저와 친구는 이태원을 벗어난 후였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과력이 어디서 처음 시작됐는지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특정인을 시작으로 보는 시각은 위험하다”며 “특정인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사건’이 되면 경찰이나 지방자치단체는 ‘사고’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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