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름다움 압축한 추상미술 거장들
자화상이 서로 닮았다. 한쪽으로 치켜뜬 날카로운 눈, 그 덕에 대칭은 깨졌다. 이 뜻밖의 발견에 우리나라 추상미술 1세대 수화 김환기(1913~1974)와 우성 김종영(1915~1982)을 함께 만나는 여정은 출발부터 흥미로워진다. 나란히 걸린 김환기의 연필 자화상(1955)과 김종영의 콘데 자화상(1940년대)이 반긴다. 그러고 보니 2년 위인 김환기는 전남 신안, 김종영은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바다를 품고 예술 세계를 펼친 것도 통한다.
한국 추상미술을 개척한 김환기와 김종영이 70년 만에 전시로 만났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본관 2·3·4관에서 11월 13일까지 열리는 2인전 '수화와 우성, 70년 만의 재회'다.
1946년 서울대 미술대학 개교 때 서양화가 교수로 부임했던 김환기와 1948년 조소과 교수로 온 김종영은 미술학부에서 2년을 함께했다. 6·25 동란 중 창원 고향 집에 피란 간 김종영을 김환기가 찾아왔다. 해군종군화가단 소속으로 진해에서 창원 소답동까지 배낭을 메고 산을 넘어 걸어왔다. 김종영의 장녀(81)는 "웬 키다리 아저씨(김환기)가 배낭에서 빨간 크래커 상자를 꺼내 주셨는데 다 부스러졌어도 맛있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만난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두 거장은 회화와 조각이라는 장르적 차이도 있지만 한국 추상미술 선구자로서 화업 고찰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환기미술관과 협력 전시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김환기는 주로 회화로 표현하고, 김종영은 조각으로 조형 원리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다름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전시장에서 같은 시기 두 거장의 작품과 당시 고민을 담은 글들을 함께 보면 닮은 점이 더 많이 올라온다.
첫 번째 전시실 '프롤로그'에서는 1950년대 초반까지 작품에서 한 인간이자 가장으로서 두 예술가의 고뇌가 보인다. 둘은 참 달랐다. 김환기는 술을 좋아하고 사교적이라 문인들과도 잘 어울렸지만, 김종영은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학교와 집만 오갔다. 둘 다 글을 많이 썼지만 전자가 생전에 출판했다면, 후자의 글은 사후에야 공개됐다. 김환기의 '판자집'(1951)은 진해 태양다방으로 추정되는 구상화인데 추상의 기운이 서려 있다.
두 번째 전시실은 '실험과 모색(소재, 형식)'으로 두 작가 모두 50대에 들어서야 본인들 작품 세계를 본격 펼쳤음을 보여준다.
김환기는 전위미술의 선봉에 섰던 일본예술대학 미술부를 다녀 동시대 초현실주의 등 서구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프랑스 파리에서 반추상으로 변화하고 미국으로 가서 추상의 세계로 들어섰다. 그는 시(詩) 정신(서정성)을 중시하며 백자를 통해 한국적인 미를 연구했다.
반면 김종영은 보수적인 도쿄미술학교 조각과를 다니며 조형 어법과 형식적 요소를 고민했다. 그의 '풍경'(1960)에서 몬드리안적 선과 '산신'(1958)에서 생성론의 영향을 받아 조형성을 탐구한 것을 엿볼 수 있다.
"예술은 한정된 공간에 무한의 질서를 설정하는 것."(김종영, 1980년 작품집 자서)
한국적 감성을 탐구하고 추상으로 흡수했던 김환기가 따뜻한 추상을 대변한다면, 김종영의 습작은 차가운 추상에 가까워 보인다.
마지막 전시실 '종합(점화, 불각)'에서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작품 세계가 펼쳐졌다. 김종영은 주변 풍경을 추상화하고 생명력의 생성을 기호나 형상으로 표현한 끝에 결국 서구 추상 양극단의 부족함을 충족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불각(不刻)의 미의식에 도달했다.
김환기는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중국 붓을 사서 점화를 시도하면서도 시 정신을 놓치지 않고 점묘화로 발전시켰다. "내 작품은 공간의 세계란다.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 가지 생각하며 찍어내는 점. 어쩌면 내 맘속을 잘 말해주는 것일까. 그렇다. 내 점의 세계…."(김환기, 뉴욕 일기)
두 거장은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난 것도 닮았다. 김환기는 의료비가 비싼 미국 병원에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61세에 별세했고, 서울대 퇴직 후 작품 활동을 본격화하던 김종영은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1년 반 만에 우리 곁을 떠났다. 향년 67세였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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