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알고도 방치했다면 경찰에 업무상 과실치사 적용 가능

이성원 2022. 11. 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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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지자체가 '이태원 핼러윈 참사' 직전 여러 차례 위험 신호가 있었는데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으면 위해 방지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5조에 따라, 위험 사실을 알고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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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집행법상 '위험발생 방지' 위반
지자체도 경고 무시했다면 수사 대상
우면산 산사태 때 경찰·구청 손해배상
"주최자 없으면 되레 국가 책임 더 커"
지난 31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압사 사고 추모공간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과 지자체가 '이태원 핼러윈 참사' 직전 여러 차례 위험 신호가 있었는데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고강도 수사를 천명하면서 관련자들의 형사처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상주 압사 사고 때 형사처벌

법조계에 따르면, 지자체장이 처벌받은 대표적 사례는 2005년 10월 경북 상주시민운동장에서 발생한 압사 사건이다. MBC 주최로 열린 공개 녹화공연을 보려고 주민 1만여 명이 운동장으로 몰렸다가 11명이 압사하고 162명이 다쳤다. 이 사고로 당시 김근수 상주시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금고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김 시장이 축제 추진위원장으로 안전 조치에 대한 책임이 있었지만,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김 전 시장이 경비업체가 대금을 받지 못해 행사장에서 철수한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안전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됐지만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았다"며 밝혔다.

2005년 10월 3일 관객 수만 명이 한꺼번에 공연장에 들어가려다 인파에 떠밀려 수십 명이 숨지거나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50, 60, 70대 노인들과 초등학생 등 11명이 밟혀 숨지고 2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상주 뉴시스

명백한 위험 보고에도 무시했으면 문제

이태원 참사는 상주 압사 사고와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김 전 시장은 축제 추진위원장으로서 안전사고 방지에 대한 구체적·직접적 주의 의무가 있었지만, 이번 참사의 경우 뚜렷한 주최 기관이 없다. 용산구나 서울시에 일반적·추상적 주의 의무만 부여돼 법 조항을 엄격히 적용하긴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다만 구체적 위험을 보고받고도 무시한 것으로 드러나면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특수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 초점은 핼러윈 행사를 앞두고 이태원에 인파가 몰려 위험하다는 보고를 구체적으로 받았는지, 여러 차례 경고가 있었는데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뭉갠 사실이 있는지에 모아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직무집행법 따라 '위험발생 방지' 조치 취했나

경찰도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다.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으면 위해 방지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5조에 따라, 위험 사실을 알고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수도 있다.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로 기소된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은 법원에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됐다. 경찰청은 안전 관리를 담당한 용산경찰서에 대한 감찰을 착수하는 한편 112 신고 대응에 있어 미흡한 부분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손익찬 변호사는 "주최 측이 없더라도 이태원에 사람들이 얼마나 모일지 추산 가능했고 위험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며 "병력 투입과 배치 권한이 있는 경찰 지휘부는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 현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 등 수사관들이 현장감식을 마친 후 철수하고 있다. 뉴스1

우면산 산사태 지자체·경찰 손해배상

경찰과 지자체의 손해배상 책임도 따져볼 만하다. 위험이 예견된 곳에서 적절한 안전 조치를 세우지 않았다면 공무원이 할 일을 하지 않아 위법하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2011년 7월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 때 법원은 서초구청과 경찰 책임을 인정해 산사태 피해자에게 4억7,767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우면산 소송에서 피해자 측을 변호한 김영희 변호사는 "이태원 참사의 경우에도 손해배상 인정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10만 명이 모인다고 예상한 곳에 투입한 경력이 현저히 적었기 때문에 경찰이 위험 발생 방지조치를 하지 않은 게 명백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자체 역시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에 따라 1,000명 이상 모이면 안전 조치를 취해야 했지만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우면산 산사태 사건 때도 이런 점을 법원에서 인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주최자가 없을 때 군중이 더 무질서해질 것으로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국가 책임이 더 커질 수 있다"며 "공무원은 법규뿐 아니라 상식상의 주의 의무도 지기 때문에 사고 전에 신고가 있었는데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배상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support@hankookilbo.com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박준규 기자 ssangkk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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