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가 2022년 최대 역주행 신드롬을 이뤄낸 비결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윤하의 역주행 히트곡 <사건의 지평선>을 말하기 전, 일단 윤하의 데뷔 시절로 역주행해 보자. 일본에서 먼저 데뷔한 윤하는 2006년 국내활동을 시작했고 2007년 1집 타이틀곡 <비밀번호 486>으로 큰 사랑을 받는다.
당시 음악방송에서 윤하는 경쾌한 기타 사운드에 둘러싸여 홀로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할 때가 많았다. 신인 치고 노래를 잘한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자그마한 체구와 달리 꽉 찬 라이브 무대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2007년은 대중들이 소몰이 보컬 유행에 질리기 시작한 때였다. 이 시절 윤하가 <비밀번호 486> 무대에서 보여준 라이브는 1980년대 대형가수 이선희의 밀레니얼 버전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비밀번호 486>의 네 번 사랑을 말하고, 여덟 번 웃고, 여섯 번 키스해 달라는 가사의 오글거림의 훅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 이처럼 윤하는 꾸미지 않는 담백한 보컬로 시원하게 노래를 이끌어가며 누구보다 빛나는 솔로 신인가수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윤하의 데뷔 후 음악시장은 후크송과 음원의 시대로 재빠르게 넘어가 버렸다. 귀여운 척하지 않고, 예능무대를 뛰어다니는 재능꾼이 아니면 쉽게 살아남기 어려운 음악계였다. 물론 윤하는 라이브무대에서는 날고뛰었지만, 예능에서는 재능꾼의 아이돌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윤하의 노선은 조금 달라졌다. 음원 시대에 앨범을 통해서 본인의 존재감을 더 알리기 시작한다. 2집의 타이틀곡 <텔레파시>는 <비밀번호 486>의 락킹한 연장선 같은 느낌이었지만, 수록곡들에서 들려주는 음악과 목소리는 훨씬 더 깊어졌다. 특히 2집에서 재즈풍의 <빗소리> 같은 경우 윤하의 보컬은 피아노 연주와 어울리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노래와 하나가 돼 빗소리처럼 잔잔하게 가라앉는다.
다시 2집의 윤하에서 에픽하이와 함께한 <우산>의 윤하를 건너뛰고 현재의 윤하로 돌아와 보자. 그 사이 유행은 바뀌고 바뀌었지만, 윤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색깔을 유지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들을 계속 들려주고 있다.
윤하 보이스의 매력은 진성과 가성, 힘참과 부드러움을 오가지만 꾸미지 않는 담백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기교로 목소리의 단점을 감추거나, 감수성으로 보컬 실력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기교와 감성이 목소리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듣는 이를 때려잡는 신들린 목소리가 아니라, 듣는 이의 손목을 잡고 함께 들어보자고 이끄는 목소리다.
그리고 2022년 가을 윤하는 6집 리패키지의 히트곡 <사건의 지평선>이 역주행하면서 다시 한 번 대중들의 손목을 잡아끌고 있다. 그녀가 가을 축제에서 부른 이 노래의 영상이 공유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윤하가 작사하고 작곡에도 참여한 <사건의 지평선>은 표면적으로는 이별 노래지만 듣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보다 위로하고 다독여주는 느낌이다. 그것도 흔하고 뻔한 노랫말의 위로가 아니다.
<사건의 지평선>은 첫 소절부터 '생각이 많은 건 말이야/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처럼 일단 우리의 이별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말한다. 안전한 유리병, 가둬둔 바람, 사라진 별의 자리, 새로운 길모퉁이, 노력은 우리에게 정답에서 사건의 지평선까지. 이 곡에는 한번쯤 곱씹어서 생각해야 하는 비유들이 많다.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에 이르면 아픈 옆구리를 쿡 찔린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사건의 지평선>의 노랫말은 노래를 들으며 흘려듣기보다, 생각하며 읽어야 하는 문장에 가깝다.
그런데 윤하는 <사건의 지평선>을 놀랍게도 굉장히 편안한 노래로 만들어 버린다. 담담하게 시작해 진성과 가성 어딘가에 편안한 음역의 읊조리는 보컬에 실린 이 노랫말의 감수성이 그대로 경쾌한 모던락 스타일의 음악에 맞물려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고마웠어요, 그래도/사건의 지평선 너머로'에 이르면 모든 아픈 생각들을 정리하고 담담하게 일어나는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하여 이 이별 노래는 어느새 인생의 응원가가 된다. 혹은 다시 시작할 인생의 축제를 위한 BGM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별 혹은 힘든 어떤 시기를 졸업하고, 사건의 지평선 너머를 흥얼대며 걷는 앞날이 있으리란 그런 다독임.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C9엔터테인먼트,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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