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단 거리, 경사진 골목만이 아니었다···참사 현장 분석해보니[이태원 핼러윈 참사]
지난달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시 156명이 압사한 주된 이유는 많은 인원이 순식간에 좁은 내리막길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이태원역 대로변에서 세계음식거리로 진입하려는 사람과 반대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뒤엉켰다. 이 과정에서 한 사람이 넘어지자 그 위로 도미노처럼 사람들이 넘어졌고 순식간에 골목 초입에 6~7겹으로 쌓였다.
사고가 난 골목 외에도 이태원역 대로변에서 세계음식거리로 진입할 수 있는 골목은 세 군데가 더 있다. 이들 골목은 모두 내리막길이고, 한 골목은 사고가 난 골목만큼 좁다. 그러나 사고는 한 골목에서만 발생했다. 또 최초 신고가 접수된 오후 10시15분 이전에도 비슷한 수준의 인파가 몰렸으나 압사 또는 깔림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왜 ‘그때 그 골목’에서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지난달 31일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박청웅 교수,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용산소방서 의용대원 A씨와 현장을 둘러봤다.
인파 몰리는 ‘클럽 라운지바 T존’
사고 골목에서 세계음식거리로 이어지는 삼거리 ‘T존’에는 이태원을 대표하는 대형 클럽 라운지바들이 몰려 있다. 라운지바는 호텔 등 라운지에 마련된 바를 의미하지만 국내에선 클럽과 같이 술을 마시며 춤을 추는 장소로 통용된다.
사고가 난 골목 우측엔 ‘와이키키 비치펍’이 있다. 와이키키 비치펍은 1층 (124.36㎡)과 2층(129.94㎡)을 합쳐 총 254.3㎡다. T존 우측 해밀턴호텔 별관엔 이태원 최대규모 라운지클럽인 ‘프로스트’와 ‘글램 라운지’가 있다. 별관 1층은 프로스트가 사용하고 2층은 글램 라운지가 사용한다. 둘을 합쳐 825.6㎡로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서 가장 큰 라운지클럽으로 알려져 있다. 사고 골목이 끝나는 정면에는 ‘아틀리에(220.88㎡)’가, 좌측에는 ‘파운틴(257.91㎡)’이 자리한다. 이들 모두 T존 바깥에 위치한 클럽인 매드홀릭(80.86㎡), 골드바(99.75㎡) 등보다 규모가 크다.
박 교수와 A씨는 이 라운지클럽들 주위로 인파가 몰리면서 사고가 일어났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어서서 춤을 추는 클럽은 앉아서 식사를 하는 음식점보다 단위면적당 수용 인원이 많다. 라운지클럽에 있던 손님들이 골목으로 나오거나 또는 이 클럽에 입장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면서 T존에 사람들이 과밀됐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사고 근방 라운지클럽들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이 건물들을 중심으로 모였을 것으로 보인다”며 “사람이 가장 몰리는 곳 앞에 위치한 골목이 가장 좁다 보니 사고가 난 것”이라고 했다.
세계음식거리로 들어가는 네 골목 중 맨 왼쪽 골목은 사고가 난 골목만큼 좁으나 주변에 대형 라운지클럽이 없다. 또 왼쪽부터 세 번째와 네 번째 골목 주변엔 유명 클럽들이 있으나 사고 골목들보다 폭이 넓다.
이런 조건에다 다른 지역에서 밥을 먹고 라운지클럽에서 ‘2차’를 즐기기 위해 넘어온 사람들이 더해져 인파가 늘어났다. 2018년과 지난해 이태원 핼러윈 파티에 참석한 B씨(27)는 “오후 10시가 사람이 막 몰리는 시간대”라고 했다. 대목을 맞은 이태원 주변 상권 가격이 비싸다보니 근처에서 저녁을 먹은 뒤 오후 9시30분에서 10시쯤 이태원으로 넘어와 술을 마시며 축제를 즐긴다는 것이다. B씨는 “이번에도 비슷한 시간대에 사람들이 몰리다보니 사고가 일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압사사고 위험에 대한 인지 부족
박 교수는 사람이 많이 몰리는 군집 상태에서 압사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일반인이 인지하기 어려운 점도 많은 사상자가 나온 이유로 꼽았다. 출퇴근 대중교통이나 연말 보신각 타종행사 등에서 대규모 군집 상태를 자주 경험하나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이 없어 위험한 상황이라고 알아차리기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지하철의 경우 (열차가 오면) 군집 상황이 조금 있으면 해소되고, 제야의 종소리 때도 사람들이 밀려 밀려 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지만 압사까지는 안 간다”며 “군집 상황이 위험한 상황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인데, 군중에 속한 개인이 이를 알아차리기는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개인뿐만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 경찰 등이 압사 사고 발생 가능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점도 사고를 키웠다. 26일 경찰과 용산구청은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와 핼러윈 축제 진행과 관련해 간담회를 열었으나 압사 사고와 관한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경찰은 성범죄와 마약 단속을 하겠다고 연합회 측에 전달했고, 구청 관계자는 통행을 위해 외부에 배치된 테이블을 치우도록 돕겠다고 통보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 때문에 소방당국은 소방관 이외에도 행사를 도울 100명 이상의 소방 자원봉사단체를 활용하지 못했다. 용산소방서 의용소방대원 A씨는 “용산소방서에만 가용한 소방 관련 자원봉사자가 120명이 있다”면서 “별다른 지원 요청이 들어오지 않아 3명씩 2개조로 10시까지 순찰만 돌았다”고 말했다. 이어 “뉴스를 보고 사고가 난 것을 안 뒤에야 현장에 자발적으로 가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말했다.
주체 없어도 신고해야
박 교수는 주최가 없더라도 대규모 행사에는 경찰 등이 관리 인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지금은 집회신고를 해야지만 안전관리를 위해 행정적으로 기관간의 협력이 이뤄지고 인력이 배치된다”며 “만약 자율적으로 하는 행사더라도 사람이 많이 모인다면 행정기관이 관리 인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규모 인원이 투입되지 않아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제복을 입은 경찰이 확성기를 들고 흐름만 통제했었더라도 이정도 규모의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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