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에 돈벼락 맞은 중동 산유국…대립했던 주변국에 투자 확대하는 이유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 덕분에 ‘돈벼락’을 맞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석유 수출로 거둬들인 막대한 자금으로 국내외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특히 과거 관계가 불편했거나 적대적이었던 주변 국가들에 대한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역내 영향력을 키우고 주변국의 정치 불안이 확산하는 것을 미리 방지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사우디, 쿠웨이트, 오만,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카타르 등 걸프협력회의(GCC) 6개 회원국이 2022~2026년 1조달러(약 1419조원)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고 보도했다. 6개국의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중동 주요 산유국들이 재정 상황이 크게 좋아진 것은 단연 국제 유가 상승 덕분이다. 2020년 코로나19로 곤두박질쳤던 국제 유가는 경기회복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영향으로 올 초 급격히 상승했다. 현재 국제 유가는 배럴당 80달러 중반이지만 올해 상반기 내내 100달러를 웃돌았다. IMF는 올해 GCC 국가들의 GDP 성장률을 6.5%로 전망했다. 작년에 내놓은 올해 전망치보다 2배 이상 높다.
중동 산유국들은 새롭게 밀려든 ‘오일머니’로 국내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주요 증권·채권 시장에서 큰손 노릇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CNN방송은 사우디와 UAE 등이 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였던 주변국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추세가 눈에 띈다고 전했다. 정치적·종교적 이유로 반목 또는 대립했던 터키, 이집트, 이란 등에 대한 적대적 외교 정책을 누그러뜨리는 대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사우디의 실질적 통치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주 국부펀드의 하나인 ‘공공투자펀트(PIF)’가 240억달러(약 34조원)을 출자해 바레인, 이라크, 오만, 요르단, 이집트에서 각각 투자·개발 사업을 벌일 회사들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우디는 인프라 및 부동산 개발에서부터 통신, 기술까지 다양한 분야에 투자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부유한 중동 산유국들이 불편한 관계였던 주변국들에 대한 경제적 투자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은 역내 영향력 확대와 함께 해당국의 경제 발전을 지원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소재 국부펀드연구소의 마이클 마두엘 회장은 “국부펀드는 외교정책 수단, 일종의 소프트파워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막대한 투자를 통해 해당국과의 외교적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 위험 분석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의 에이험 캐멀은 “현재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 구도는 하드파워가 더 생산적이라고 여겨졌던 시절과는 확연히 구분된다”라고 말했다.
중동 산유국들이 투자를 확대한 국가 중에는 2011년 ‘아랍의 봄’을 겪은 곳이 포함됐다. 북아프리카와 중동 일부 국가들은 2011년 아랍의 봄을 겪었는데 이 지역을 휩쓴 대규모 반정부 시위 사태는 궁핍한 경제로 인한 시민들의 불만에서 촉발된 경우가 많았다. 이들 지역의 경제 발전을 지원해 정치적 안정을 유도함으로써 정치적 불안이 자국으로 전염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중동 산유국들의 계산이기도 하다.
김재중 기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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