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베이스볼] 리틀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 이현욱, '북일의 에이스' 거듭난다
(MHN스포츠 천안, 김현희 기자) 리틀야구는 국내 야구계에서도 기본이자 기저(基底)를 차자하고 있다. 결국 여기에서 향후 프로야구 선수도 나오고, 국가대표 선수도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리틀야구 대표팀이 통합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이후에는 이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도 했다.
그런데,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하면, 통상 '윌리엄스포트'에서 열리는 12세 이하 대회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13세 이하 대회도 있다. 리틀리그 인터미디어트 대회로 알려진 이 대회의 스타도 제법 된다. SSG의 김건우가 그 대표적인 예다. 특히, 인터미디어트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무려 세 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한동안 중단됐지만, 올해에도 인터미디어트 대회는 열렸다. 그리고 대표팀은 인터내셔널리그 우승, 종합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여전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랬던 인터미디어트 대회의 가장 최근 우승은 불과 4년 전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리틀리그 전체가 잠시 중단되기 전에 열린 마지막 대회이기도 했다. 그 대회에서 대표팀은 예선부터 결선까지 거의 일방적인 스코어를 보여주면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그 주인공 중 하나가 바로 천안북일고 좌완 에이스 이현욱(17)이다. 내년 시즌부터 천안북일의 1선발로 활약하게 될 이현욱도 분명히 눈여겨 봐야 할 좌완 인재임에 틀림 없다. 리틀리그 당시에는 일본을 상대로 상당히 훌륭한 투구를 펼치기도 했다. 이렇게 훌륭한 투구를 보여 주었던 이현욱을 '톡톡(talk talk) 베이스볼'에서 만나봤다.
2018년 압도적인 우승의 비결,
인터미디어트 대회 유년 시절의 추억
Q) 4년 전, 리틀리그 인터미디어트 월드시리즈를 보도한 이후 정말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름인 것 같다.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이현욱(이하 '이') : 현재 천안북일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좌완투수 이현욱이다. 처음 초등학교 4학년 '서초구 리틀야구'에 취미반으로 입단 했는데, 유니폼을 입고 뛰는 정식 선수반 형들의 모습을 보고 부모님께 졸라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선수반에서 야구를 하게 됐다.
Q) 그래, 원래 리틀리그부터 투수였다고 들었다. 그런데, 내야수나 외야수로 뛰어볼 생각은 없었는가?
이 : 리틀리그 때에는 투수와 1루수를 병행해서 했다. 그런데, 중학교 때부터는 투수훈련에만 집중해 보라는 감독님의 조언대로 투수에만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Q) 아무래도 리틀리그 인터미디어트 대회(U-13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를 이야기 안할 수 없다. 당시 예선부터 압도적이었는데, 대표팀 분위기는 어떠했는가?
이 : 다들 워낙 실력이 좋은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 선수들을 상대할 때마다 월등한 실력으로 승리가 계속됐다. 그래서 완벽한 'WINNING MENTALITY'가 형성되어 흠잡을 때 없었다고 본다. 말 그대로 최고의 팀 분위기였다.
Q) 당시 일본전에서 본인의 인생투를 던졌다. 기분은 어떠했는가?
이 : 당시 결승 상태가 일본이었고, 일본전에는 꼭 이야기 된다는 부담감에 다들 긴장한 상태였다. 하지만, 스스로는 이미 대회 몇 달 전에 일본을 상대로 좋은 피칭을 했던 경험이 있었던 만큼, 초반부터 자신감 있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그 결과, 조금은 시시할 정도로 큰 점수차로 이길 수 있었다. 이 승리로 우리 대표팀이 미국으로 갈 수 있었던 만큼, 팀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Q) 그 외에도 예선전에서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었다면?
이 : 사실 국내 대표끼리 맞붙은 예선 결승이 가장 짜릿한 기억에 남는 경기였다. 당시 본인은 서서울리틀 소속이있고, 상대팀이 동서울 리틀팀이었는데, 당시 우리보다 전력에서 살짝 앞선다고 평가받았다. 그만큼 막상막하의 실력을 가진 친구들과의 경기였다. 그만큼, 가장 힘든 경기였기에 기억에 남는다.
Q) 미국 본선 무대에 가니, 느낌이 어떻던가?
이 : 처음 세계 무대에 발을 내딛은 만큼, 긴장보다는 기대와 흥분이 컸다. 그래서 꼭 이겨서 돌아가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세계적인 무대에서 더 큰 스케일의 야구를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Q) 근데 막상 경기에 들어서니 매 경기 압도적(10점 차 이상 승리)이었다. 팀 멤버가 너무 좋았던 것 같은데?
이 :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 정말 우승할 수밖에 없는 최고의 멤버였다. 특히, 매 경기 좋은 피칭을 보여줄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포수 (이)승현이가 지금 함께 북일고에 있어서, 내년에도 최고의 호흡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Q) 그렇다면, 당시 대회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이 : 아시아 예선에서 CNMI, 인도네시아, 홍콩, 필리핀, 일본 등을 모두 10점 이상의 큰 격차로 이겼는데, 홍콩전에서 10-0으로 승리했지만, 경기 내용이 순탄치 못했다. 그래서 이후 분위기를 다잡았던 기억이 난다. 그 경기로 인하여 우리가 한 수 위 기량을 가지고 있어도 매 경기 긴장을 풀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던 것 같다.
Q) 최종 결승전에서도 승리하며 우승했다. 직접 본 미국 선수들은 어땠는가?
이 : 월드 시리즈 내내 선발 투수로 우승에 기여했지만, 결승전에는 투구수 제한으로 인해 타자로 팀과 함께 했다. 물론, 결승전에 던지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가장 긴장되는 경기에 타자로 함께 뛰어보니, 각 포지션의 팀원의 화합의 중요성도 알게 되는 뜻 깊은 자리였다.
사실 인터미디어트 대회 모두 한국팀이 너무나 압도적인 실력을 갖고 있어서, 미국팀도 쉽게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2018년 이후 인터미디어 경기에 우승이 없는 것 봐도 당시 우리 팀의 저력이 정말 강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Q) 귀국 후 성남 중학교 때 모습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이 : 월드 시리즈 참석으로 중학교 야구팀 합류가 조금 늦었지만, 야구명문 중학교인 만큼 실력 좋은 친구들과 또 새로운 합을 맞추며 함께 성장해 왔다. 특히,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꾸준히 투수로 기용되어 3번의 준우승이라는 의미 있는 결과를 함께 만들 수 있어서 행복했다.
Q) 성남중학교를 졸업했는지, 결국 성남고에 갔다.
이 :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 같이 U-15대회에서 준우승을 만들었던 친한 친구들과 함께 성남고로 자연스럽게 진학하게 되어, 전학 전까지 즐겁게 훈련에 임할 수 있었다.
Q) 그렇다면, 북일고 전학의 계기는 무엇인지?
이 : 아버지의 직장이 천안에 있어서, 천안에 있는 학교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북일고로 전학하게 되었다.
Q) 이제 본인 자랑할 시간을 주겠다. 본인의 장기와 잘 던지는 구종을 알려 달라.
이 : 리틀리그 때부터 커브가 주무기였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재학 동안 집중적으로 연습해 온 것이 있다. 빠른 볼이든 변화구든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는 정교한 커맨드, 그리고 몸 쪽을 던질 때 우타자 몸 쪽으로 파고드는 커터다. 그 움직임이 강점이라 자부한다. 특히, 방망이에 맞아도 큰 타구가 나오지 않는 묵직한 볼 끝이 본인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Q) 그런데, 그 좌완이라는 장점을 에이스 김휘건(북일→휘문 전학)과 함께 나누었어야 했는데?
이 : (김)휘건이와 북일고 원, 투 펀치로 활약하고자 했는데, 휘건이가 전학을 가게 되서 너무 아쉽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친구라 본다. 좋은 후배들이 많으니, 후배들과 함께 좋은 팀 만들어 보겠다.
Q) 앞으로 이현욱의 목표가 있다면?
이 : 팀이 필요로 할 때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기 위해서 본인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우선 긴 이닝을 안정적으로 던질 수 있는 정교한 투구와 체력이다. 그것과 함께, 카운터를 잡을 수 있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완성하여 구종을 더욱 발전시키고 싶다. 마지막으로 꾸준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하여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경기에서 발휘되면, 내년 드래프트에서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켜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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