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이행요구권’ 소멸시효 넘기도록 해제 안 한 부동산 계약···대법 “계약금 반환할 필요 없다”

박용필 기자 2022. 11. 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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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부동산을 팔기로 한 사람이 매수인으로부터 계약금을 받은 뒤 건물의 소유권을 매수인이 아닌 다른사람에게 넘겨벼렸다면 매수인은 ‘계약이행불능’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도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매수인이 ‘계약 이행을 요구할 권리’의 소멸시효가 지나도록 매도인에게 계약을 해제한다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다면, 계약을 해제할 권리가 사라져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A씨가 B씨를 상대로 낸 추심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일 밝혔다.

B씨는 2007년 1월 C회사에 건물을 파는 계약을 하고 C사로부터 계약금 300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B씨는 C사로부터 중도금과 잔금을 지급받지 못했고, 2012년 건물의 소유권을 C회사가 아닌 다른 이에게 건물의 넘겨버렸다. 결국 B씨는 C회사와 계약상 채무(건물의 소유권을 C회사에 넘길 의무)를 이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이처럼 계약당사자 한쪽이 채무이행불능 상태가 되면 다른 한쪽은 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계약금 등의 반환을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C회사는 계약을 해제하지 않았다.

그런데 5년이 지난 2017년 C회사가 아닌 C회사에 돈을 빌려준 A씨가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해 C사와 B씨 간의 건물매매 계약을 해제했다. C사가 돈을 갚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당 계약을 해제시키면 B씨가 C사에 계약금을 돌려줘야하는데, 그 계약금을 압류 추심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A씨는 해당 계약을 해제하면서 B씨를 상대로 “(C사가 지불한) 계약금 3000만원과 계약해제에 따른 위약금 3000만원을 달라”며 추심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결과 원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갈렸다. 주된 쟁점은 C사가 B씨에게 계약상의 채무(건물소유권을 C사에게 넘겨줄 의무)를 이행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채권)의 소멸시효였다. 원심은 채권의 소멸시효와 상관없이 C사나 C회사의 채권자인 A씨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B씨가 A씨에게 계약금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C회사가 B씨에게 건물의 소유권을 넘겨달라고 요구할 권리(채권)의 소멸시효가 지나기 전에 계약해제권이 행사됐다면 계약해제가 가능하지만, 소멸시효가 지나 채권이 무효화된 상태에서는 채무도 사라진 셈이니, ‘존재하지 않는 채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게약을 해제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B씨가 건물을 다른사람에게 넘겨 채무이행불능상태가 된 지 5년이 지난 뒤 A씨가 해제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채권의 소멸시효(5년)가 이미 지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채무불이행은 계약해제 사유가 되지만, 그 해제권을 행사하기 전에 상대방의 채무가 소멸된 경우에는 더 이상 해제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처음으로 밝힌 판결이라고 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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