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한눈에 보는 레고랜드 사태…"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김정우 기자 2022. 11. 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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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도지사의 '악수'…피해는 '일파만파'


지난 9월 28일,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얼어붙은 금융시장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김 지사는 레고랜드 테마파크 개발을 맡은 중도개발공사가 기업회생 절차를 밟게 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재작년에 강원도는 레고랜드 개발 과정에서 진 빚 2,050억 원에 대해 보증을 섰습니다. 중도개발공사가 돈을 못 갚으면 강원도가 대신 갚아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돈을 갚아야 할 때가 되니 '빚보증을 못 서겠다'며 말을 바꾼 겁니다.

강원도 같은 지자체의 경우 신용등급이 높습니다. 토지나 건물처럼 지자체가 갖고 있는 재산이 많고, 1년 예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 입장에선 떼일 염려가 적고 이자도 꼬박꼬박 받을 수 있습니다. 지자체가 큰 사업을 벌이더라도 언제든 돈 구하기가 쉽다는 겁니다. 하지만, 김 지사의 발언 이후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지자체에 대한 신용도가 떨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강원도 춘천시는 레고랜드와 가까운 곳에 동춘천 산업단지를 조성했습니다. 개발 과정에서 빚을 졌는데, 160억 원 정도를 갚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레고랜드 사태 일주일 뒤 돈을 빌려준 쪽에서 이자를 더 받아야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지자체의 신용도에 문제가 생겼으니 더 많은 이자를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결국, 연 5.7% 금리가 13%로 껑충 뛰었습니다.

건설사들이 둔촌주공아파트 관련 채권을 제 때 팔지 못한 것도 큰 충격을 줬습니다. 둔촌주공의 경우 사업성이 높은 만큼 자금을 구하기 어렵지 않단 전망이 나왔었는데, 채권이 잘 안 팔리니 목표금액인 7천억 원을 구하지 못한 겁니다. 정부의 도움으로 간신히 자금 마련에 성공하긴 했지만 시장 분위기는 더 얼어붙었습니다.
 

'돈맥경화' 우려 커졌다…회사채 시장 '꽁꽁'


불은 회사채 시장으로 옮겨 붙었습니다. 회사의 경우 회사 채권을 팔아 돈을 마련하고, 회사채를 사는 사람은 이자를 받습니다. 은행 대출과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용등급이 높은 지자체에 돈 빌려주는 사람이 적어지자 여러 회사들이 타격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규모가 작은 경우엔 어려움이 더 컸습니다.

물론, 모든 게 레고랜드 때문만은 아닙니다. 올해 초부터 기준금리가 꾸준히 오르면서, 시장에 풀린 돈이 말라붙기 시작했습니다. 시장금리가 덩달아 오르니 개인의 경우 높은 이자를 주기 시작한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게 더 안정적인 만큼 주식, 가상화폐 시장 등 불안한 시장에서 빠져나왔습니다. 투자자들 역시 은행이 발행하는 채권으로 몰렸습니다. 실제로 지난 3분기에 팔린 회사 채권은 5조 5천억 원으로 1년 전보다 무려 40% 가까이 줄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레고랜드 사태가 터지니 울고 싶은 데 한 대 맞은 격이 된 겁니다.

금융시장에서 돈줄이 막히는 '돈맥경화' 현상이 발생하자 정부가 개입했습니다. 일요일인 지난달 23일 경제금융 수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시장에 50조 원 넘게 풀어 돈이 잘 돌게 하겠단 내용이었습니다.
 

'관치금융' 논란…고민에 빠진 한국은행


지난달 23일 이후 금융시장의 모든 참여자들이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돈을 풀고, 은행은 지원사격을 했습니다. 증권사도 힘을 보탤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융당국이 대형 증권사 9곳에 '기업 채권을 사들일 돈을 1조 원을 모아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분위기는 좋지 않았습니다. "다른 증권사, 투자자들의 위험을 왜 우리가 떠안아야 하느냐" "우리 증권사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배임' 행위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여러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정부 정책의 실패를 수습하는 데 증권사들의 팔을 비트는 방식을 선택했냐는 겁니다.

한국은행의 고민도 시작됐습니다. 최근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시장에 있는 돈을 거둬들이고 있었는데, 다시 돈을 풀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겁니다. 워낙 분위기가 안 좋으니 협력하곤 있지만 정부의 압박이 거셉니다. 기업유동성지원 기구를 재가동해야 한단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에 대해선 '시기상조'란 입장입니다. 기업유동성지원 기구를 가동한다는 건 한국은행이 간접적으로 부실 채권을 사 들이는 방식이라 지금 통화정책 기조와는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정부가 온 힘을 쏟아내고 있지만 앞으로 상황이 나아질지는 미지수입니다. 물가는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국제 정세는 여전히 불안합니다. 이미 경기 침체 터널의 초입에 진입했단 의견도 다수입니다. 여기에 고금리·고환율·고물가 '3중고'가 사회 각계각층에 위험요인을 끊임없이 넘기고 있어 앞으로의 대응이 중요할 때입니다.

김정우 기자fact8@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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