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기업 대출 늘려달라”… 당국 한 마디에 기업들 은행 몰려
금융지주 유동성 지원 약속에 은행 기업대출 더 늘 듯
은행권 “기업대출 증가 속도 부담스러운 수준”
금융당국이 자금 시장 경색으로 돈줄이 막힌 기업들의 유동성 확대를 위해 은행권에 기업대출 확대를 요청했다. 기존 거래 기업의 대출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신규 기업들에도 대출 기회를 열어달라는 내용이다. 당국의 요청에 따라 은행이 자금 조달이 어려운 기업들에 대출의 문을 열면서 기업대출은 사상 처음 700조원을 돌파했다.
다만, 은행권은 향후 경기 악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단기간에 기업대출이 크게 늘어나자 산업계의 부실 리스크가 전이될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감독원은 은행에 기업의 유동성 확보를 위한 요청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존 기업에 대해선 특이사항이 없는 한 대출을 축소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내용과 신규 기업에 대해서도 여신을 늘렸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최근 자금 시장이 경색되면서 기업들이 자금을 제대로 조달하지 못하는 상황을 고려해 은행권에 이 같은 요청을 했다. 돈을 구하지 못한 기업의 유동성 위기가 신용 위험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 역할을 강조한 셈이다.
기업은 통상 자체 자금이 부족한 경우 채권 발행, 대출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하지만 최근 채권시장은 레고랜드 사태 이후 얼어붙어 일반 회사채의 경우 발행하더라도 미달이 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레고랜드 사태 직후인 지난달 17~20일에 발행된 일반 회사채는 단 한 곳을 빼고 수요예측 경쟁률이 1을 밑돌았다. 쉽게 말해 채권을 발행하려고 해도 채권을 사려는 수요가 없다는 뜻이다.
자금력이 약한 중견·중소기업들은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을 통해 발행하는 프라이머리채권담보부증권(P-CBO)을 통해 자금 조달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팔리지 않아 증권사가 인수하는 상황이다. 발행에 성공하더라도 금리가 10%에 육박한다.
금융당국이 은행채, 공사채 등 우량채 발행 자제와 채권시장안정펀드 등을 조성하며 자금 시장의 안정화를 꾀하고 있지만, 시장 분위기는 쉽사리 반전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자체적인 자금 투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금융지주에 시장 안정화를 위한 긴급지원요청을 했다. 이에 KB·신한·우리·하나·NH 등 5대 금융지주는 금융당국의 요청에 따라 유동성 지원 및 시장 안정을 위해 95조원을 연말까지 투입하기로 했다.
은행권이 시장 안정을 위해 기업대출을 확대하면서 10월에만 기업대출은 9조원 가까이 늘어 사상 처음 700조원을 돌파했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지난달 27일 기준 703조7512억 원으로 전월 말 대비 8조8522억원 늘어났다.
은행권은 당국의 요청에 따라 적극적으로 기업대출을 취급하면서 대출 확대에 따른 이자 수익 향상이 기대되지만, 마냥 이 상황을 즐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물가·금리·환율·원자재 가격 인상 등 기업을 둘러싼 경기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어 여신 부실화에 대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경기둔화로 향후 한계기업의 비중은 확대될 가능성이 있고 이로 인해 기업구조조정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일부 은행에서는 기업대출 확대 속도를 우려해 여신 심사를 보수적으로 진행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기업대출을 유치하려는 기존 입장은 변한 게 없다”면서도 “다만 최근 대기업대출이 급격히 늘어나 은행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증가 속도가 빠른 것 같아 유의 깊게 보고 있다”며 “일부 은행에선 산업 전반을 보수적으로 보고 기존 배점의 80%만 주는 등 심사를 보수적으로 하고 있는 곳도 있다”고 전했다.
은행권은 기업대출을 실행하더라도 부실 징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원리금 납부 현황, 담보물 등을 재확인하면서 대출 부실화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보고 사전에 부실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당국 요청도 있어 대출 심사 기준은 기존대로 유지하지만,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며 부실 리스크가 커지고 있어 원리금을 어떻게 납부하고 있는지, 담보물을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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