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한 채권시장에···당국, 보험사에 사실상 '매각 자제령'?
국내 보험사 유동성비율 188%···전년比 58%p↓
"유동성, 채권 팔아 충당···당국, 자제 시그널"
[이데일리 유은실 기자] 금융당국이 보험사의 유동성 비율 규제를 완화해 주겠다는 방안을 발표한 가운데 보험업권에서는 사실상 ‘채권 매각 자제령’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채권 보유 비중이 높은 보험사들이 지속적으로 채권을 팔아치우면, ‘레고랜드 사태’로 가뜩이나 얼어붙은 채권 시장 내 추가 불안요인이 될 수 있어서다.
최근 정부가 레고랜드 사태의 후폭풍을 막기 위해 막대한 유동성 공급을 약속한 만큼 리스크 요인을 최대한 막겠다는 금융당국의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이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8일 ‘보험사 자금조달 및 운용 동향 점검 간담회’를 열고 보험사 유동성비율 규제시 유동성 자산 인정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유동성비율 계산식의 분자에 해당하는 유동성 자산 인정 범위에 활성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 만기 3개월 이상 남은 채권 등 즉시 현금화가 가능한 자산도 포함하기로 한 것이다. 보험사들은 그동안 금융감독원의 세부지침에 따라 ‘직전 1년간 월평균 지급 보험금의 3개월치’를 분모로, ‘만기 3개월 이하 유동성 자산’만을 분자로 산출해 유동성 비율을 계산해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그동안 다양한 경로로 업계 의견을 계속 받았었는데, 유동성 비율 계산할 때 자산 범위가 타 업권에 비해 너무 타이트하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사실 유동성이란 게 짧은 시간 내 큰 거래 비용 없이 현금화가 가능하면 유동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어,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 3개월 이상 채권도 자산에 포함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유동성 비율은 환급금을 포함해 보험계약자에게 지급되는 모든 보험금에 대한 보험사의 지급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현금 동원력이 양호하다고 평가한다. 예컨대 올해 2분기 유동성 비율이 전년 대비 줄었다면, 보험사가 단기간 내 현금화해 지급이 가능한 현금 동원력 수준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실제 보험사들의 유동성 비율은 감소하는 추세다. 1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 26곳의 올해 2분기 평균 유동성 비율은 188.19%로 나타났다. 200%를 상회하던 올해 1분기(203.72%)와 비교하면 15.53%포인트(p) 감소했고, 지난해 동기(246.64%) 대비로 보면 58.45%p나 줄었다.
업종별로 보면 올해 6월 기준 국내 생명보험사 15곳의 평균 유동성 비율은 192.81%로, 3개월 만에 4.09%p 감소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감소폭은 81.1%p에 이른다. 국내 손해보험사 11곳의 2분기 평균 유동성 비율은 전분기 대비 31.11%p 줄어든 181.90%로 집계됐다. 지난해 2분기(2019.45%) 대비 27.55%p 감소한 수치다.
업계 “규제 완화 시점·효과, ‘채권매각 자제’ 메시지”
그러나 보험업권에서는 금융당국이 유동성비율 규제를 완화해 준 시점이 미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몇몇 보험사의 유동성 비율이 낮아지긴 했지만 공교롭게도 보험사의 채권 매도가 빠르게 늘고 있는 시점에 이번 조치가 발표됐고, 이는 ‘채권 매도 자제 권고’랑 다를 바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채권 보유 비중이 높은 생명보험사들의 수입보험료가 최근 가파른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며 “변액보험 중심으로 수입보험료가 줄었다는 것은 해지가 많았다는 의미다. 게다가 신계약 건수도 줄었고 자본성증권 발행 등 자본확충 계획까지 연기되면서, 현금 확보를 위해 채권을 파는 보험사들의 움직임이 가속화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동성 비율 규제 완화 목소리는 이전부터 있었는데, 채권시장이 어지러운 현 시점에서 금융당국이 해당 방안을 발표했다”며 “사실상 (채권 매각을) 자제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의 완화안이 보험사의 유동성 자산을 넓게 인정해 줄 테니, 유동성 비율을 지키기 위한 인위적인 채권 매각은 더 이상 하지 말라는 의미로 읽힌다는 것이다. 업계는 금융당국이 채권시장의 유동성이 부족한 현 상황에서 보험사들의 채권들이 쏟아져 나오면, 시장 내 불안이 더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봤다.
통상 매출이 줄면 유동성 비율도 하락한다. 실제 보험사들의 신계약 건수와 수입보험료 등이 감소하고 있다. 특히 증시에 영향을 크게 받는 변액보험 위주로 매출 감소가 가시화되는 실정이다.
생명보험협회 공시에 따르면 국내 생보사의 변액보험 신계약 건수는 전분기 대비 16.0% 줄어든 5만666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2분기(10만3232건)와 비교하면, 1년 사이 반토막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생보사의 변액보험 수입보험료도 올해 1분기 3조5684억원에서 2분기 3조2304억원으로 9.5% 줄었다. 수입보험료는 보험 회사가 일정한 기간동안 받아들인 보험료를 의미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험사들은 지난달에만 2조원에 달하는 채권을 팔아치운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 내 관계자는 “개별 보험사나 개별 업종의 유동성 비율이 아직까진 급격하게 악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진 않다”면서도 “다만 유동성 자산 내 채권 인정 범위를 늘 넓히면 보험사들이 당장 유동성 비율을 맞추기 위해 불필요하게 채권을 팔아 현금화시킬 가능성은 사리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은실 (yes24@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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