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이슬람사원 공사장 입구에 ‘삶은 돼지머리’…“무슬림 고통 극심” 우려에도 지자체는 ‘모르쇠’
무슬림 유학생들 심리적 충격 호소
북구청 “현장 소관…조치 의무 없어”
대구 이슬람사원 공사장 입구에 이슬람 문명권에서 혐오하는 삶은 돼지머리가 며칠째 놓인 것으로 파악됐다. 건축주와 시민단체 등은 “사실상 범죄 행위”라는 입장이지만, 갈등을 중재해야 할 관할 지자체는 현황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
1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27일부터 현재까지 대구 북구 대현동 이슬람사원 건축 공사장 출입구 옆에 위치한 주택의 대문 앞에 삶은 돼지머리가 놓여 있다. 이슬람 문명권에서는 돼지고기를 먹는 것을 죄악으로 여긴다.
지역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대구 이슬람사원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이러한 행위가 혐오 범죄이며 지자체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창호 대책위원장은 “돼지머리를 공사현장 출입구에 갖다놨다는 건 무슬림 학생을 괴롭히는 범죄 행위”라면서 “사원 건립을 두고 주민과 건축주 간의 갈등을 중재해야 할 구청에서 모른 척하며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는 이슬람사원 건립을 반대하는 주민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 차원에서 이러한 차별적 행위를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돼지머리를 집 앞에 놓았다는 이유만으로 법적 처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다.
서 대책위원장은 “사원 반대 주민들은 돼지머리를 갖다놓지 않았다고 밝혔고, 해당 집 주인은 치울 의사가 없다고 얘기했다”며 “답답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현재 무슬림 유학생들은 심리적 충격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같은 행위에 대한 처벌 근거가 없어 관련 신고가 접수되더라도 조치가 힘들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주민들이 법적으로 사원 건립을 막을 길이 없으니 비신사적인 행동을 한 듯 하다”면서 “2주 전쯤에도 주민들이 (공사장 인근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은 적이 있었는데, 이와 비슷한 차원에서 행동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살아있는) 돼지를 고문하는 등 훼손한 것도 아니어서 현실적으로 경찰이 조치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덧붙였다.
외국에서 이슬람사원이나 주거지 인근에 돼지머리를 두는 행위는 무슬림 혐오 차원에서 종종 발생하고 있다. 2015년 12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이슬람사원 앞에서는 반이슬람주의자로 추정되는 트럭 운전자가 운행 중 잘려나간 돼지머리를 사원 쪽으로 던지는 사건이 발생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상훈 북구청 건축주택과장은 “관련 (공사장 인근에 돼지머리를 가져다 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구청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다”며 “공사는 현장에 배치된 감리자의 소관”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난 것이 아니라 옆집에 돼지머리를 둔 것에 대해 (지자체가) 조치할 의무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건축주와 주민 사이의 중재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지만 의견 차가 커서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이슬람사원 건축주들은 지난해 7월 공사중지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해 최종 승소했다. 법원 판단이 속속 나오면서 사원 건립공사는 지난 8월부터 재개됐다. 경찰은 법원 판결 후 건축 공사를 방해하던 상당수 주민들을 입건해 조사를 벌인 바 있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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