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제발 도와달라”던 경찰관의 절규···트라우마 시달리는 경찰관들[이태원 핼러윈 참사]
“다 이쪽으로. 사람이 죽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제발.”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경찰관 A씨의 영상이 퍼졌다. 1분27초 분량인 이 영상은 지난 31일 유튜브 채널 <니꼬라지TV>에 맨 처음 올라왔다. A씨는 인파가 몰려 혼잡한 거리에서 홀로 시민들의 통행을 정리했다. 확성기 없이 쉰 목소리로 “뒤로 빠져주세요” “돌아가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다 이쪽으로. 사람이 죽고 있어요”라고 외쳤다. 음악 소리 등에 묻혀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자 “다 이동하시라! 멀뚱멀뚱 보고 있지 말고 그냥 돌아가라”라고 소리쳤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A씨는 서울 용산경찰서 이태원파출소 소속으로 확인됐다. 영상은 이날 오후 2시 기준 조회수 11만회를 기록했다. 누리꾼들은 A씨를 “진정한 영웅”이라고 평가하면서 그의 트라우마를 걱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영상 속 경찰관은 참사 당일 주간 근무를 담당했으나, 속한 팀 전체가 참사 이후 24시간 가까이 근무를 했다”며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들은 그날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참사 당시 출동했던 경찰관들 중 일부는 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호소하고 있다. 한 경찰관은 “직원들 트라우마가 심각하다”면서도 “지금 분위기상 현장 경찰관들 고생했다는 얘기도 꺼내기 힘들지 않겠냐”고 했다. 다른 경찰관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이태원 관할은 아닌데 타 관내에서 (참사 현장에) 지원을 하러 갔다”며 “아비규환인 현장 상황과 사망자들 시신이 아직도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 분이라도 더 살리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살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글을 올렸다.
경찰 내부에서는 현장 경찰관들에 대한 심리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용산경찰서 용중지구대 소속 경찰관 B씨는 경찰 내부망에 “사건 당일인 29일 삼각지에 대규모 집회로 용산서 각 기능별 많은 경력들이 동원돼 고된 근무를 해야 했다”며 “이태원 파출소 동료들은 대규모 압사 신고를 받고, 100여명의 사람들이 차마 보기 힘든 모습으로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보면서 구조 활동을 벌여야 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저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밤잠을 설치며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며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이태원 지구대와 용산서 동료들에게 본청에서 PTSD 예방을 위해 심리치료 등 정신건강 관리를 반드시 지원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경찰청 복지정책담당관실은 “마음동행센터 상담사와 민간 상담사 등을 활용해 사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긴급 구조에 참여한 경찰관 등에 대해 해당 관서로 ‘찾아가는 긴급심리지원’을 추진 중에 있다”면서 “심리적 지지와 상담, 호흡 등 스트레스 관리법 교육, 마음동행센터 연계 등 사후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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