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스토킹 처벌법, 피해자 관점에서 재구성하자
지난 9월 서울의 한 지하철 역에서 여성 역무원이 자신을 스토킹하던 남성에게 죽임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으로부터 막 1년이 되던 시점에 일어난 이 사건은 많은 국민의 공분을 샀다. 자연스럽게 스토킹 범죄에 대한 경·검의 수사 과정과 피해자 보호조치, 법원의 판결, 그리고 현행법에 부족한 점에 대한 비판이 이뤄졌다. 특히 많은 여성이 스토킹 범죄에 불안감을 드러내며 제대로 된 피해자 보호를 요구했다. 스토킹이라는 특수한 범죄를 어떻게 이해하고 피해자 보호조치를 구성할지 이제는 피해자의 입장과 관점에서 제대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라고 불리는 해당 사건 직후, 경찰과 검찰뿐만 아니라 지자체와 정부 부처, 여당까지 여러 대안을 내놓았다. 어떻게 해야 스토킹 피해자가 자꾸만 더 큰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단순히 피해자에게 이른바 어떤 장치나 호위를 추가 하는가를 넘어서야 한다. 피해자가 스토킹을 신고하는 것은 위협받는 자신의 일상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할 뿐만 아니라 처벌 결과가 나올 때까지 피해자 일상이 제대로 보호돼야 한다. 피해자가 원한다면 스마트워치나 CCTV 등 장치를 활용할 수 있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보호 조치가 피해자로 하여금 더 잘 '조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피해자가 잘 조심하고 잘 피하지 않아도 가해자가 피해자 일상을 더는 위협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들이 사실상 피해자에게 가장 필요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 1년동안 스토킹 신고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법 시행 시작일인 2021년 10월 21일부터 올해 9월 30일까지 112로 접수된 스토킹 신고는 총 2만9156건이다. 하루에 85건 스토킹 신고가 있었던 셈이다. 법 시행 직전 1년동안 신고량 7702건과 비교하면 무려 3.7배나 증가했다. 경찰은 스토킹 신고 접수를 위해 2018년 6월에 처음으로 스토킹 코드를 신설했는데, 그때부터 법 시행 직전까지 약 3년간 신고량이 1만9711건이었던 것과 비교해도 1.5배 많은 수치다. 스토킹 처벌법이 생기자 피해자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신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고, 스토킹 범죄가 심각할 정도로 많다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스토킹 처벌법에서 명시하는 피해자 보호조치는 강제력이 떨어져 실효성이 떨어진다. 현행법상 피해자 보호조치는 긴급응급조치와 잠정 조치 두 가지가 있다. 긴급응급조치는 경찰이 바로 시행할 수 있으며 피의자가 접근금지명령을 내릴 수 있다. 잠정조치는 검사를 거쳐 법원의 허락을 받아 시행할 수 있는데, 접근금지뿐만 아니라 유치장 구류(4호)까지 비교적 강제력이 있는 조치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잠정조치 4호는 경찰이 신청하는 것 중 반 정도만 시행되고 있고, 긴급응급조치 불이행 과태료는 평균 235만원으로 강제성이 크게 떨어진다. 스토킹 범죄가 반복적으로, 끈질기게 일어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235만원의 과태료는 피의자가 긴급응급조치를 지켜야 할 어떤 이유도 되지 못한다.
잠정조치는 지키지 않을 경우 불이행죄로 법원의 판결을 받아야 하는 데에 비해 긴급응급조치는 가벼운 과태료로 끝나는 점이 피해자 보호의 공백으로 지적할만하다. 또한 잠정조치가 경찰에서부터 검사와 법원까지 긴 과정을 거치다 보니 시행까지 시차도 생기고 현장에서 경찰이 판단한 것을 검사나 법원이 기각하는 경우도 많다. 직접 피해자와 만나고 피해 상황을 듣게 되는 경찰이 피해자 보호조치를 결정하는 데에 영향력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스토킹 피의자를 구속 판단하는 기준이 없다 보니 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피의자가 추가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이다. 법 시행 1년간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고한 건은 377건에 그친다. 그중 실제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은 254건으로, 전체 피의자 중 4%다.
앞서 언급했던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이미 불법 촬영으로 고소했던 피의자를 스토킹으로 재차 신고했음에도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스토킹 범죄가 얼마나 재발하는지 더욱 심각한 범죄로 이어진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고 있었다면 스토킹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승인하는 기준을 더욱 촘촘하게 세울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찰도 검찰도 구속영장은 일관된 기준, 즉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에 따라 신청하고 있다. 법원의 영장 발부 기준 또한 마찬가지다. 스토킹처럼 피해자에게 어떤 추가적인 위협을 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해자를 구속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피의자가 검찰과 법원 단계로 넘어가더라도 충분한 처벌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올해 8월까지 검찰의 기소 2017건 중 62%가 구약식 기소였기 때문이다. 공판이 열리더라도 법원은 3명 중 1명꼴로 집행유예를 결정한다. 징역이나 벌금형을 받게 되더라도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에 한참 못 미치는 정도의 형량이 나온다. 올해 6월까지 233건의 판결을 분석해보니, 징역형 63건 (전체의 27%)의 형량 평균은 13개월, 벌금형 38건 (전체의 16%)의 벌금액 평균은 279만 원에 그쳤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이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스토킹 처벌법상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윤희근 경찰청장 또한 폭넓은 피해자 보호와 잠정조치 절차 간소화를 약속했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 또한 스토킹 근절을 외쳤다. 정치권의 행보가 잘못됐다거나 불필요한 공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고 더 나아가 스토킹 범죄가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면 스토킹 처벌법이든,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이든 피해자 관점에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피해자 관점을 가장 잘 녹여낼 수 있는 부처가 스토킹 근절에 대한 기본 계획을 세우고 수사 과정부터 판결까지 적극 의견을 내고 개입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사건 이후 여성가족부가 피해자 보호법 입법이나 피해자 지원 시설에 스토킹 피해자 입소를 가능케 하겠다는 대안 정도로 제 역할을 다했다는 듯하던 태도는 매우 유감스럽다.
결국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고 스토킹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여성가족부 차원의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 수사 과정에서 잠정조치 등 피해자 보호조치가 늦어지거나 자꾸만 기각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이나, 경찰과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분리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재구성하는 일은 모두 피해자의 관점에서 다시 진행돼야 한다. 또 반성폭력 교육에 스토킹이나 데이트 폭력, 디지털 성폭력 등 기존에는 포함하지 않던 내용을 반영하고 일상적으로 젠더 폭력에 대한 인식을 키울 기회를 만드는 것 또한 필요하다. 범죄 이후 과정뿐 아니라 범죄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또한 피해자 보호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이후, 이수정 교수가 한 인터뷰에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우고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는 잠정조치가 피해자로부터 100m 이내 접근금지인데, 100m면 뛰어오는 데에 20초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라는 지적을 했다. 피해자 보호조치에서 피해자가 얼마나 빠져 있는 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피해자는 출퇴근길에 경찰과 동행하고 팔목에 밴드를 두른 채로 언젠가 가해자가 갑자기 나타나면 누군가 지켜주기를 바라지만은 않는다. 나 혼자서도, 언제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일상을 영위하길 바란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 1년, 이제는 피해자의 입장과 일상을 고려한 입법과 수사 과정을 새롭게 써야 할 때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hello@yonghyein.kr
○…용혜인 의원은
제21대 국회의원이자 기본소득당 원내대표이다. 기본소득 실현에 대한 열망 하나로 기본소득당을 창당했고, 현재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국회 본회의에서 '저는 임차인입니다' 연설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기본소득 공론화법', '기본소득 탄소세법' '기본소득 토지세법'을 대표 발의하며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의정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출산 이후에는 '국회 회의장 아이동반법'을 대표발의하는 등 임신·출산·육아·돌봄이 보장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의정 활동도 이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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