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오후 6시까지 먹는 시간제한 섭식이 좋은 이유
아침은 왕처럼, 점심은 귀족처럼, 저녁은 소작농처럼 먹어라.
- 마이모니데스
십수 년 전 ‘과학동아’ 기자로 일할 때 ‘오리지널 논문으로 배우는 생명과학’이라는 연재를 한동안 진행한 적이 있다. 오늘날 생명과학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내용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가 누가 어떤 계기로 그런 발견을 하게 됐는지를 알아보자는 취지였다.
29편 가운데 하나로 제3의 광수용체세포로 불리는 감광신경절세포의 발견을 다뤘다. 그런데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제3의 광수용체 발견을 보고한 2002년 논문이 아니라 그 존재를 예측한 1991년 논문을 ‘오리지널’로 선정하게 됐다. 눈먼 생쥐도 여전히 일주리듬, 빛의 유무에 따른 하루 24시간 주기를 따른다는 발견이다.
논문에서 저자는 그때까지 알고 있던 두 가지 광수용체세포인 막대세포와 원뿔세포 외에 또 다른 세포가 있어 빛을 감지해 그 정보를 뇌의 시각피질이 아니라 일주리듬 조절영역으로 보낸다고 추측했다. 그 결과 유전자 결함으로 막대세포와 원뿔세포가 없어 보지 못하는 생쥐도 여전히 낮에 자고 밤에 돌아다니는 야행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1991년 논문이 나왔을 때는 주류 학계가 무시했지만, 그 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면서 제3의 광수용체세포 찾기 경쟁이 붙었고 2002년 미국 브라운대 신경과학과 데이비드 베르슨 교수팀이 영광을 차지했다.
○ 디너 쓰임새의 변천사
얼마 전 학술지 ‘사이언스’의 서평란에서 ‘Life Time’이라는 제목의, 생체시계를 다룬 책이 있어 재미있을 것 같아 보니 저자 이름이 낯설지 않다. ‘러셀 포스터(Russell Foster)가 누구더라...’ 한참을 생각하다 ‘오리지널 논문’이 떠올랐다. 눈먼 생쥐도 여전히 일주리듬을 지닌다는 발견을 보고한 1991년 논문의 저자였다. 반가운 마음에 서평을 읽지도 않고 책을 주문했다.
며칠 전 책이 와서 좀 봤는데 영어를 쉽게 써 술술 읽히는 데다 최신 연구 결과까지 소개돼 있어 생체시계 연구의 현황을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10장 ‘언제 약을 복용할까’와 12장 ‘먹는 시간’, 13장 ‘당신의 자연 리듬을 찾아라’는 실용적인 생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아마 1년 안에 한글판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13장에서는 하루 24시간에서 일정 시간 범위 안에서만 음식을 먹는 시간제한섭식이 건강에 좋고 살찌는 것도 억제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해가 떠 있을 때(오전 6시에서 오후 6시 사이)만 먹고 그나마 저녁은 가볍게 먹는 게 가장 이상적인 식사법이다.
저자는 ‘아침은 왕처럼, 점심은 귀족처럼, 저녁은 소작농처럼 먹어라’라는 12세기 철학자이자 천문학자, 의학자인 마이모니데스의 말을 인용하며 영어 ‘dinner(정찬)’의 쓰임새 변천사를 소개했다. 중세 영국과 유럽에서는 아점(brunch)에 정찬을 했지만 점차 늦어져 정오 무렵이 됐고 그 뒤 양초와 램프가 널리 쓰이게 되면서 저녁에 정찬을 하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디너쇼’ 같은 말이 익숙해 디너가 저녁(supper) 가운데 정찬을 뜻한다고 알고 있던 필자는 영어사전에서 ‘하루 중 제일 중요한 식사(점심 또는 저녁)’이라는 설명을 보고 뜨끔했다.
저자는 저녁(evening)의 정의를 오후 6시에서 잠잘 때까지로 정의한 뒤 저녁에 섭취하는 칼로리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게 현대인의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 결과 2형 당뇨병, 비만 등 대사질환이 늘어난다는 것으로 사실 익숙한 내용이다. 저자는 최적의 식사 시간이 왜 시간제한섭식인지를 포도당 대사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건 좀 참신하다.
췌장과 간의 능력이 하루 24시간 일정한 게 아니라 낮에 낫고 저녁에 떨어지는 리듬을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저녁에는 췌장이 인슐린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고 간은 인슐린 저항성이 커져 같은 양을 먹어도 오전 8시에 비해 오후 8시에는 식후 혈당 수치가 17%나 더 높다. 따라서 저녁(supper)은 저녁(evening) 전 또는 이른 저녁에 가볍게 먹는 게 좋다.
책을 읽다가 문득 얼마 전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이 떠올랐다. 시간제한섭식이 열발생을 활발하게 해 살찌는 걸 억제하는 메커니즘을 밝힌 연구 결과로 여기에는 생체시계도 관여한다. 책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라 만일 러셀 교수가 2판을 내게 된다면 이 내용도 포함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여기서 소개한다.
○ 크레아틴 공회전 이용
열 발생은 우리 몸이 열을 만드는 과정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몸을 움직일 때 나오는 열로, 겨울에 밖에 나오면 춥지만 한참 달리면 추위가 안 느껴지고 나중에는 오히려 더워 땀이 나는 이유다. 차가 움직일 때 엔진 주변이 뜨거워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때 열발생은 목적이 아니라 연료분자인 ATP가 소모될 때 나오는 ‘폐열’이다(화학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바뀌는 변환효율이 100%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열을 내는 게 목적인 열생성이 있다. 환경의 요구에 맞춰 일어나므로 적응 열발생(adaptive thermogenesis)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심부체온을 일정 범위에서 유지해야 하는 정온동물인 포유류에서 생존에 중요한 과정이다. 열을 내려고 매번 몸을 움직여 쓸데없이 운동에너지를 만드는 건 낭비이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적응 열발생 과정은 UPI1이라는 단백질이 개입하는 ‘짝풀림 반응’이다. 갈색지방과 베이지색지방이라는 특화된 지방조직의 미토콘드리아는 세포호흡(포도당을 산화하는 과정)으로 구축한 양성자 기울기로 ATP를 만드는 대신 양성자를 누출시켜 흩어지게 하고 이때 열이 발생한다. 흥미롭게도 짝풀림 반응이 잘 안 일어나는 사람은 비만이 되기 쉽다고 한다. 똑같이 먹어도 누구는 날씬하고 누구는 뚱뚱한 배경이다.
그런데 수년 전 또 다른 적응 열발생 과정이 발견됐다. ‘크레아틴 공회전’(futile creatine cycle에 대한 공식 번역어가 아직 없어 내가 임시로 만든 용어다)으로 짝풀림 반응과는 좀 다르다. 세포호흡으로 만들어진 ATP가 근육 수축 같은 의미 있는 작업에 연료로 쓰이는 대신 크레아틴을 포스포크레아틴으로 바꾸는 데 소모된다.
물론 근육에서라면 포스포크레아틴이 근육 수축에 필요한 연료로 저장되지만(엄밀히 말하면 크레아틴으로 돌아가며 ATP가 다시 만들어져 쓰인다) 지방조직에서는 별 쓸모가 없다. 대신 다른 효소의 작용으로 인산이 떨어져 나가면서 다시 크레아틴으로 바뀐다. 이렇게 만들어진 크레아틴은 ATP를 소모해 다시 포스포크레아틴이 되고 위의 과정이 반복된다. 이처럼 헛된(futile) 일에 ATP가 낭비되는 것 같지만, 이 과정에서 열이 나오는 게 중요하다.
‘사이언스’ 10월 21일자에 실린 논문은 시간제한섭식이 크레아틴 공회전을 활성화해 ATP를 많이 쓰게 하고 따라서 이를 충당하기 위해 세포호흡이 활발해지면서 영양분을 소모해 비만을 억제한다는 놀라운 발견을 담고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자들은 낮 12시간, 밤 12시간 주기의 환경에서 생쥐에게 고지방 먹이를 주고 체중 변화를 측정했다. 이때 열적 평형 온도인 30℃로 맞춰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열발생을 할 필요가 없게 해 변수를 줄였다. 섭식 시간대에 따라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그룹, 활동성이 높은 때(밤)에만 먹을 수 있는 그룹, 활동성이 낮은 때(낮)에만 먹을 수 있는 그룹으로 나눠 비교했다(생쥐는 야행성이다).
평균 먹이 섭취량을 보면 아무 때나 먹은 그룹이 가장 많았고 12시간 안에서만 먹은 두 그룹은 비슷했다. 그런데 1주일 뒤 체중 증가 폭을 보니 아무 때나 먹은 그룹이 가장 컸지만 낮에만 먹은 그룹도 만만치 않았다. 반면 밤에만 먹은 그룹은 증가폭이 훨씬 적었다. 주행성 동물인 사람으로 치면 낮 12시간(오전 6시~오후 6시) 동안만 먹을 경우 살찌는 걸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 열발생에 생체시계 관여
여러 분석 결과 시간제한섭식이 효과가 있는 건 일주리듬을 뚜렷하게 해 크레아틴을 더 많이 만들고 공회전 활성을 높인 결과로 밝혀졌다. 크레아틴 생합성 과정에 관여하는 효소인 Mat2a와 ATP와 맞물려 크레아틴을 포스포크레아틴으로 바꾸는 효소인 CKB의 유전자 발현이 일주리듬을 보이는데, 시간제한섭식을 할 경우 밤에 많이 만들어져 열발생도 그만큼 많이 일어나는 것이다.
실제 생체시계를 이루는 핵심 유전자인 Bmal1이 고장난 생쥐는 Mat2a의 발현량과 크레아닌의 농도가 낮다. 예상대로 이들은 비만을 보이는데 크레아틴을 보충제로 먹이면 비만 억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조직에서 크레아틴 공회전으로 열발생 활성이 높아진 결과다.
크레아틴은 고기나 치즈 같은 동물성 식품에 많이 들어있다. 따라서 채식주의자 특히 생선이나 달걀, 유제품도 먹지 않는 비건들은 대체로 몸에 크레아틴 농도가 낮다. 과체중 또는 비만인 채식주의자를 보고 ‘고기도 안 먹는데 어떻게 저렇게 살이 쪘을까?’라고 의아해한 적이 있다면 이제 크레아틴 공회전 활성이 낮은 게 한 요인일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한편 체내 열발생 활성을 높이려고 크레아틴 함량이 높은 음식을 많이 먹으면 지나친 칼로리 섭취로 오히려 살이 더 찔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 크레아틴 보충제가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크레아틴 생합성 경로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변이로 체내에서 충분히 만들지 못하는 경우 필수적이다. 오늘날 크레아틴 보충제는 근력 강화용으로 널리 쓰이고 있고 가격도 저렴하다. 다만 과잉 섭취 시 신장에 부담을 주고 탈모 등의 부작용도 있다고 하니 주의해야 한다.
다른 많은 일들이 그런 것처럼 건강과 질병에 관련된 조언도 통계에 기반한다. 저자는 책에서 “여성의 월경 주기는 28일이지만 실제 28일인 경우는 15%에 불과하다”며 생체시계도 마찬가지로 사람에 따라 편차가 있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저녁형 인간이라면 낮의 범위도 두세 시간 늦춰 오전 8~9시에서 오후 8~9시 사이로 보고 시간제한섭식을 실천해도 된다는 말이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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