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오늘 주요 상황'에 없던 이태원…9쪽 경찰력 계획 보니
15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 저녁 7시쯤 <'핼러윈'에 오늘 밤 이태원 10만 명 몰린다>는 제목의 기사를 띄웠다. 사고 발생 약 3시간 전이었다.
그보다 1시간 전, 서울 용산경찰서 직원 여럿에 전활 걸었다. 핼러윈이 낀 주말, 더욱이 토요일이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가 붐빌 게 불 보듯 뻔했다. 얼마나 사람이 몰릴 걸로 보는지 물었다. "10만 명은 넘을 거 같다"고 했다. 이날 경찰 예측 이태원 유동인구가 '10만 명 이상'인 건 새로운 내용도 아니었다. 핼러윈 기간 매일 10만 명이 모일 거라고 용산경찰서는 이틀 전인 지난달 27일 보도자료를 냈다. '이태원 핼러윈, 시민 안전과 질서 확립에 총력'이라는 제목의 자료에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핼러윈으로 클럽 등 영업제한이 해제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축제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적혔다. "핼러윈 주말 3일간 112·형사·여성청소년·교통 등 관련 기능에 추가로 경찰기동대를 지원 받아 총 200여명 이상을 이태원 현장에 배치해 핼러윈 시민 안전과 질서유지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란 내용도 담겼다.
'그럼 오늘 밤사이엔 몇 명 정도 모일 걸로 보는지'로 질문을 바꿔 물었다. "10만 명은 넘을 것"이란 같은 답이 돌아왔다. 어떤 조치가 예정돼 있는지 묻자 한 경찰관은 "보도자료가 나간 대로 200명 이상 투입할듯하다"면서 "형사과 등에서 일대 클럽을 중심으로 마약 등 범죄단속을 할 것"이라고 했다. "예전부터 준비해온 불시 마약 단속이라 아직 이 부분은 보도가 나가면 안 된다"고도 일렀다.
용산구청도 종합상황실까지 차려 긴급 대응을 예고했다. '그 좁은 동네에 10만 명이 몰린다고?' 의구심이 들었다. '진즉 10만 명이 몰릴 걸 예상했다면 어련히 잘 대비했겠지'라고, 아마도 평생 후회로 남을 생각을 그땐 했다.
그날 밤 사고 소식을 듣고 기자가 달려가 만난 현장은 표현이 죄스러울 정도였다. 사고 발생 골목에서 한참 떨어진 도로부터 응급차로 차 있었다. 밤 11시가 넘었지만 아직 정확한 사고 개요가 알려지지 않은 때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해줄 정신이 있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인근 술집에서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 나와 심폐소생술을 도왔다는 20대 임모 씨는 "최선을 다했는데 살리지 못 했다"면서 손을 떨었다. 그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는데, 왜 통제가 없던 건지 이해가 안 된다"면서 울먹였다.
9쪽 분량 계획에 언급 '0건'
서울경찰청은 이 인력을 △집회 등 '금일 주요상황'과 △거점근무 △외국공관 등 주요시설로 나눠 투입했다. 81개 부대를 쪼개서 다시 부대를 만드는 식으로 '주요상황'에는 70개 부대를 집중 배치했다. 이 '주요상황'에는 당일 있었던 양대 노총과 진보, 보수단체의 집회 등 서울 시내에서 있었던 총 21개의 집회가 열거됐다. 이 가운데 20명 안팎이 모일 걸로 신고 됐거나 예상하는 집회도 4개나 됐다. 용산경찰서가 10만 명 넘게 모일 걸로 일찍이 내다본 이태원 핼러윈 상황과 관련해선 단어 하나 적히지 않았다.
"생각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광화문과 용산·여의도와 서초 등 4개 거점근무 지역에도 14개 부대가 동원됐다. 이태원도 용산구에 속하지만, 핼러윈 파티가 한창일 야간에는 1개 기동대만 용산구에 평상시처럼 배치됐다. 이마저도 이태원 현장에 배치된 게 아니었다. 미대사관과 대사관저 등 주요시설에도 13개 부대가 배치됐다.
문건이 9쪽 분량인데, '이태원' 또는 '핼러윈'이 누락된 건 '안중에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단 평가다. 서울의 한 일선경찰서 경비과 간부를 지낸 한 경찰관은 "상식적으로 대규모 행사가 예정돼 있으면 '혼잡경비'라고 해서 경비대책을 작성한다"면서 "그걸 서울경찰청 경비과로 보고하고,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경력을 붙여주는 식인데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참사 당일 서울 시내에서 기동대를 이끌었던 경찰관도 "근무 시 무전 등에서 일절 이태원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면서 "그날 이태원엔 경비경찰은 동원되지 않고 마약과 성범죄를 단속하는 경찰관만 배치됐던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인구가 그렇게 모인다면 범죄단속 경찰관도 있어야 하고 혼잡상황을 정리하는 경찰도 따로 배치하는 게 일반적"이라면서 "경비경찰이 모자라면 지역경찰이 붙지만 대규모 밀집이 예상될 때는 보통 그렇게 안 한다"고 꼬집었다.
그날 이태원에는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지역경찰 32명, 형사 등 수사경찰 50명, 교통경찰 26명 등 총 137명이 투입됐다. 성범죄와 마약 단속 등을 위해 사복차림인 이들이 많았고, 정복 차림을 한 건 58명에 불과했다. 사복을 입은 경찰관들은 질서를 유지하고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거보단 범죄현장을 급습하거나 적발하는 역할을 맡는다. 방호장비를 착용한 채, 충돌이 생기면 막아서고 호루라기를 불고 경찰봉을 휘두르며 질서를 유지하는 기동대나 의무경찰은 현장에 없었다.
'말장난' 같은 책임 회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 다음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긴급회의에서 "예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면서 "경찰,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가지는 재난에 대비하고 시민의 안전을 관리할 책무를 져버렸단 비판이 쏟아졌다. 도심 한복판에서 150명 넘는 희생자가 생겼는데 막을 수 없었던 사고라면, 국가의 역할은 무엇이냐는 질타도 이어졌다.
이 장관은 뭇매를 맞은 다음날에도 합동분향소를 들렀다가 "축제 참가자가 8만~10만 명에서 이번에는 13만 명 정도로 30% 늘었는데, 경찰 인력도 130여 명으로 40%정도 증원됐다"고 말했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마약 단속을 하려 사복을 입고 음지를 찾아다닌 경찰관들과 불법촬영에 대비해 건물 내 여자화장실 칸을 수색하던 경찰관들이 어느새 질서 유지 전담인력처럼 둔갑한 것이다. 당장 지난해 범죄단속 경찰관 85명에 방역대책의 일환이었지만 3개 기동대원 180명 등 총 약 265명을 투입한 전력 등 불리한 맥락은 감춘 것이기도 하다. 31년 만에 경찰국을 행안부 밑으로 들여 경찰 지휘 기능을 되살렸고, 총책임자가 된 장관이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비판 받는 건 국민에겐 비극이고 유가족과 피해자에겐 상처다.
경찰 수뇌부도 못지않다. 용산경찰서는 보도자료까지 내고 '200여 명 이상을 이태원 현장에 배치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었는데, 어제(31일) 경찰청 책임자는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 나와 "최초에 200명을 배치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는 제가 지금 처음 듣는다"고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피해자와 유가족, 전 국민이 주목하고 있는 브리핑에 경찰을 대표해 나오면서 가장 기본적인 정보도 숙지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또 10만 명 이상이 모일 걸로 예상했으면서도 경력 배치가 미비했던 게 아니냐는 질의에 "그간 다중이 운집하는 상황에 대해서 경찰은 현장 통제보다는 범죄 예방, 그리고 불법 단속을 중심으로 경찰력을 배치해서 대비를 해왔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해당 지역에서 당일 예상되는 여러 불법행위에 대해서 단속하고 또 예방하기 위한 경찰력을 배치해서 대비했던 것"이라고도 했다. 국민 누구나 군중밀집이 이뤄지는 곳에서 수없이 마주쳐왔던, 정복을 입거나 방호장비까지 착용하고 상황을 살피던 경찰관들은 그럼 다 현장 통제는 아닌 불법 단속만 하고 있던 건지 되묻고 싶다.
경찰이 아니면 누가
같은 날 대통령실 관계자도 "경찰은 집회와 같은 상황이 아니면 일반 국민을 통제할 법적, 제도적 권한이 없다"고 밝히며 경찰을 감쌌다. "주최 측의 요청이 있거나 주최 측의 안전관리계획상 필요한 경우에는 선제적으로 나설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권한에 한계가 있다"는 설명도 붙였다.
하지만, 경찰관 직무집행법 5조에는 "경찰관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 관계인 경고 또는 필요한 한도에서 억류 및 피난조치, 위해 방지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집회와 같은 상황이 아니고 뚜렷한 범죄 행위가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 땅의 14만 경찰은 뒷짐을 지고 있어야 한단 해명은,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어렵다. 누군가에게 피해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는 경찰이 아닌 시민도 나서는 게 상식이다. 지난달 24일 경찰이 대대적으로 공개한 '경찰 미래비전 2050'에서 윤희근 경찰청장이 직접 "치안은 경찰 뿐만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지켜내야 하는 미래 자산"이라고 천명하지 않았던가. 치안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가 '국가사회의 안녕과 질서의 유지 또는 보전'이다.
불과 며칠 전 경찰이 역사상 처음 발표한 '비전'이 담긴 종합계획 자료에는 또 "경찰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의 보호',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는 만큼, 부정적 요인에 대한 선제적, 능동적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내용도 담겼다. 비전은 조직의 지향점이다. 이번 사태 수습 과정에서 경찰은 불과 일주일여 만에 '선제적, 능동적인 대응'이란 지향점을 버린 셈이다. 적법한 유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찰이 아니라면, 그 일은 대체 누가 할 수 있는 건지 이번 사태에서 내놓은 해명에 대해 경찰과 대통령실에 묻는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2조(직무의 범위) 경찰관은 다음 각 호의 직무를 수행한다.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 △범죄의 예방・진압 및 수사 △범죄 피해자 보호 △경비, 요인(주요 인사) 경호 및 대간첩・대테러 작전 수행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을 위한 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교통의 단속과 위해의 방지 △외국 정부기관 및 국제기구와의 협력 △그 밖에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
한성희 기자chef@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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