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독수리는 어떻게 거북의 등딱지를 깨는가…‘공중 투하’ 사냥법
20m 상공서 바위지대에 뚝, 거북 2억년 지켜준 등딱지 무게 역이용
주 먹이 토끼는 줄었는데 보호로 검독수리 증가, 대체 먹이 거북 무사할까
성체 암컷이 주요 사냥감, 인위적 산불과 밀렵 증가 더해 거북 멸종위기
고대 그리스의 이솝 우화 가운데 하늘을 날고 싶은 거북과 수리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판본에 따라 내용이 다르지만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거짓이 드러나거나 너무 기막힌 경치에 입을 놀리다 거북은 높은 하늘에서 땅에 떨어져 등딱지가 박살 난다.
이런 우화가 탄생한 배경으로 그곳에 서식하는 검독수리가 실제로 거북을 높은 하늘로 들어 올렸다 바위지대에 떨어뜨려 사냥한다는 사실이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뜨리는 검독수리의 기발한 거북 사냥 방법은 거북의 장기 생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특히 “수리의 주 먹이인 야생토끼가 질병으로 급감한 스페인에서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그리스거북의 포식이 늘어나는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고 이들을 현장 연구한 스페인 연구자들이 밝혔다.
보호종끼리 먹고 먹히는 딜레마
호세 길-산체스 스페인 그라나다대 동물학자 등은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유럽 최대의 그리스거북 서식지인 스페인 남동부에서 검독수리의 거북 사냥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조사한 결과를 밝혔다.
검독수리는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하는 대형 맹금류로 토끼나 쥐부터 사슴이나 여우까지 사냥하는 최상위 포식자이다(▶시속 240㎞로 날아와 사냥 ‘순삭’ …‘하늘의 호랑이’ 검독수리). 이곳 검독수리의 주요 먹이는 굴토끼인데 1990년대 이후 바이러스 감염병이 두 차례나 휩쓸면서 개체수가 급격히 줄었다.
반면 검독수리는 20세기 중반까지 독약 놓기와 사냥으로 멸종위기에 몰렸다가 최근 보호조처로 개체수를 많이 회복했다. 입은 늘었는데 주식은 급감한 상태에서 검독수리가 대체식단으로 거북에 눈을 돌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연구자들은 “검독수리와 그리스거북은 모두 보호종인데 이들이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여서 보전의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고 논문에 적었다. 연구자들은 검독수리 서식지 11곳에서 소화하지 못하고 게워낸 펠릿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먹이 변화를 조사했다.
지중해 일대에 서식하는 그리스거북은 중형의 육상 거북인데 9∼12살이 되어야 처음 번식에 나설 만큼 성장이 느리고 번식률이 낮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취약’ 종으로 분류했다. 서식지 파괴와 애완동물로 남획한 결과이다.
그러나 검독수리에 거북은 흔한 먹잇감이다. 연구자들은 “그리스 일부 지역에서 검독수리 먹이의 90%를 거북이 차지한다”고 밝혔다.
검독수리는 거북을 발로 낚아채 20m 상공까지 올라간 뒤 바닥에 돌이 깔린 곳에 떨어뜨려 등딱지가 깨진 거북을 잡아먹는다. 이런 방식으로 척추동물을 사냥하는 맹금류는 수염수리와 검독수리가 유일하다.
연구자들은 “이런 사냥법이 번식능력이 있는 성체를 솎아내 개체군의 장기 생존을 위협한다”고 밝혔다. 대개 거북은 새끼 때를 빼고는 포식자가 거의 없다.
거북은 갈비뼈가 확장해 몸통과 사지를 감싸는 식으로 진화한 등딱지 덕분에 2억년 동안 지구에서 살아왔다(▶그 많던 거북은 어디로 갔나). 그러나 검독수리의 사냥법은 육중한 등딱지의 보호 장갑 무게가 오히려 자신을 파괴하도록 작용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다 자란 암컷이 사냥 표적
조사 결과 “거북이 토끼의 대체 먹이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토끼가 줄면 그만큼 거북을 많이 먹는 식으로 단순한 것은 아니”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서식지의 상황, 수리의 거북 선호도, 사냥 능력 등 다른 요인도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거북 사냥에는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재빠른 토끼보다 잡기는 더 쉽지만 등딱지가 깨질 장소를 물색하고 성공할 때까지 여러 차례 떨어뜨려야 한다. 또 평균 무게가 토끼 786g에 견줘 거북은 387g에 그쳐 “토끼보다 훨씬 많을 때만 거북이 적절한 먹이가 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그렇다면 토끼가 줄어도 거북은 안전한 걸까. 연구자들은 그렇지는 않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수리의 먹잇감이 되는 거북은 가장 큰 성체 암컷이었다. “암컷은 수컷보다 덤불이 적은 곳을 선호해 사냥에 취약하고 수리도 큰 거북을 노리는 경향이 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번식이 왕성한 암컷이 사냥 되면 개체군 유지에 이상이 생긴다. 실제로 거북 포식이 많은 곳에는 수컷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주 먹이인 토끼 감소로 인한 거북 포식률 증가는 최고 4%였다”며 “그러나 사람에 의한 기후변화, 산불 증가, 서식지 분단, 애완동물 밀렵 등을 고려하면 장기 생존을 위협하기에 충분하다”고 논문에 적었다.
인용 논문: Scientific Reports, DOI: 10.1038/s41598-022-22288-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속보] 북, “통제불능 국면” 비난 직후 탄도미사일 3발 또 발사
- 용산구청장, 현장 인근 걷고 지역구 의원에 “인파 걱정” 문자만
- [공덕포차] 이태원 참사, 정부의 부실 대응과 한덕수 ‘농담’ 파문
- “딸 운구비 보탭니다” 200만원 선뜻…국가는 없고, 시민은 있다
- 참사 2시간 30분 전 ‘경찰 기동대 급파’ 요청 묵살당했다
- 추궁의 시간, 면피의 시간 / 최혜정 논설위원
- [단독] 112 책임자, 참사 당시 자리 비웠다…1시간24분 만에 복귀
- 봉화 광산 붕괴 9일째 시추 성공했지만…생존 확인은 아직
- ‘두리랜드’ 임채무 “아이들 웃음이 좋은데 어쩌겠어요”
- 오늘 낮부터 기온 뚝…내일 아침엔 남부 지방에도 얼음 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