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인모 “커리어 이루는 것보다 유지가 더 어려워…목표는 나의 곡 쓰는 것”
“파가니니 우승 후 갈 곳 잃은 느낌”
변화의 필요성·커리어의 지속성 고민
콩쿠르 통해 나의 연주 세상에 알려…
“동시대 음악의 중요성 절감…
궁극적 목표는 나의 곡을 쓰는 것”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 이후 연주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갈 곳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었어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어요.”
‘인모니니’(양인모+파가니니)라는 별칭이 따라온 것은 ‘제 54회 프레미오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2015)에서 무려 9년 만의 우승자로 이름을 올리면서였다. 세계적 권위의 콩쿠르에서 우승했지만, 그곳이 ‘커리어의 끝’은 아니었다. 지난 5월 양인모는 새로운 콩쿠르에 도전했고, 또 다시 우승 트로피를 가져왔다.
“시벨리우스 콩쿠르에 출전을 결심한 것은 작년 12월이었어요. 유럽에 온 지 1년 반 정도 됐는데 여기서 어떻게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던 때였어요.”
그의 도전은 의외였다. 당시 핀란드 장 시벨리우스 콩쿠르를 전하는 외신에서도 양인모를 “가장 경험이 많은 연주자”라며 출전 이유에 대한 분석을 내보냈다. 콩쿠르 전부터 이미 ‘가장 유력한 우승자’로 꼽힐 만큼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았다.
최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만난 양인모는 “파가니니 우승 이후 다시는 콩쿠르에 나가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며 “콩쿠르 이후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겠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유럽 지역 콩쿠르 우승자인 양인모는 미국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동안 연주 기회가 원하는 만큼 많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그는 “우승 이후 파비오 루이지 지휘자와 협연을 했는데 그 이후 다른 연주 기회로 이어진 게 아니라 한번으로 끝났다”고 했다.
“콩쿠르 우승 이후에 정체하는 연주자들을 많이 보게 돼요. 최근엔 잠깐 반짝였다가 사라지는 연주자들도 많고요. 그게 두려워요. 겨루는 것은 콩쿠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 시작하는 것 같더라고요. 커리어를 이루는 것보다 길게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꾸준히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해요.”
그러다 닥쳐온 팬데믹은 “음악가로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보게 된 시기였다.
“연주자들은 무대에 오르는 찰나의 시간 때문에 긴 연습 시간을 보내요. 연습 시간의 1∼2%에 불과한 그 시간이 사라지니 연습을 해야 하는 이유와 나아가 음악가로서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어떤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이뤘을 때, 그 이후에 대한 기대를 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게 콩쿠르였고요.”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의 우승은 새로운 음악의 길을 열었다. 그는 “콩쿠르는 세상에 나의 연주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봤다. 물론 “누구나 나가야 하는 건 아니”라는 점도 강조한다.
콩쿠르에 출전하면 “나의 한계를 측정해볼 수 있고”, 심사위원, 지휘자,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에 대한 피드백과 다른 연주자의 해석과 비교”하며 동기부여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양인모는 “변화가 필요했던 해에 콩쿠르를 계기로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며 “늘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연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음악의 폭도 넓어졌다. “듣기 싫었던 음악들이 어느 순간 좋아지고”, “추구하는 스타일도 달라지게 됐다”.
음악을 향한 진지한 태도와 동세대 연주자 중 단연 주목할 만한 연주력과 커리어는 그에게 ‘젊은 거장’이라는 수사를 붙인다. 양인모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면서 “다만 앞으로도 계속 젊은 느낌의 연주를 하고 싶다. 동시대 음악의 중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어 그것에 매진할 생각”이라고 했다. 시벨리우스 콩쿠르 당시 현대작품 최고해석상도 받았던 양인모는 “어느 순간부터 현대음악을 들을 때 눈물이 난다. 평소 쓰지 않는 근육을 쓰는 느낌이고, 이것을 (이어가는 것이) 음악인으로의 사명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음악가가 21세기 음악에 관심이 없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대해 고민 중이에요.”
양인모는 오는 1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창단 60주년 기념 무대에서도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다. 그는 “원래 관심이 있던 곡이었고, 2년 전쯤 자필 악보를 구해 연습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번 연주 일정이 확정되며 지난 6월부터 하루에 3시간씩 연습했다. “그동안 연주했던 곡 중 비교적 가장 어려운 곡”이라고 한다. 형식 면에서 4악장으로 이뤄져 있고, 타악기가 27개나 사용된다. “기존 현대음악에선 찾아보기 힘든 ‘스틸 드럼’과 같은 악기도 많이 등장”해, “다른 콘체르토(협주곡)에서 듣기 힘든 음색을 가지고 있고,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협주곡”이다.
“이 곡을 연습하다가 베토벤, 모차르트 곡을 연습하면 그 곡들이 쉽게 느껴져요. 이 곡은 고전적인 측면과 모던한 측면이 둘 다 공존하고 대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보통 콘체르토라고 하면 솔로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주고 받으면서 여러 주장을 펼치는 대립 관계인데, 이 곡은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새로운 악기를 만들어가는 느낌이에요. 오케스트라의 한 부분으로서 솔리스트가 거의 쉬지 않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도 굉장히 힘들어요.”
연주자와 관객의 입장은 다르다. 양인모는 “서울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들리는 음들이 모두 현대음악”이라며 “현대음악의 새로움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번 연주가 누구나 와서 즐기고 돌아가는 놀이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러 놀이기구가 있는데 본인이 즐기고 싶은 것을 즐기고 돌아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진은숙 작곡가는 대단한 작곡가이고, 그 작곡가를 접하는 자리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거예요.”
음악가로의 궁극적인 바람도 커졌다. ‘나의 곡’을 만드는 것이다. 요즘엔 대위법 공부에 매진 중이다. 바이올린이라는 특정 악기를 연주하다 보면, “위의 성부를 주로 듣고, 멜로딕한 귀로 음악을 듣게” 된다고 한다. 그는 다른 성부를 놓치지 않기 위해 “대위법을 통해 여러 성부가 어떻게 구성될 때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나오는가를 공부한다”고 말했다.
“알고 있는 음악은 많은데 오선지 앞에 앉으면 아무것도 쓸 수 없어요. 그럴 때마다 작곡가들의 위대함을 많이 느껴요. 언젠가는 내 음악을 세상에 내놓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바이올린 협주곡을 써서 직접 연주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대신 곡을 잘 쓰고 싶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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