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를 어쩌나… 골판지 생산 줄자 산더미처럼 쌓여
’골판지 원료’ 폐지 쌓이자 가격도 ‘뚝’
”적체 이제 시작… 수거 거부할까 우려”
최근 경기 침체로 물동량이 줄어 골판지 생산이 줄면서 국내외 폐지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 지난해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며 폐지를 원료로 하는 골판지 수요가 늘어 한때 ‘금(金)판지’로 불릴 만큼 가격이 오르기도 했으나 1년도 지나지 않아 상황이 반전된 것이다. 국내 폐지 압축상과 제지공장에는 팔리지 못한 폐지가 쌓여 수거를 거부하는 ‘폐지 대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일 한국제지연합회에 따르면 골판지 원지 생산량은 올해들어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골판지 원지 국내 생산량은 지난해 12월 51만1412톤(t)이었으나 올해 1월 50만t 아래로 내려왔고 지난 7월에는 46만8083t까지 떨어졌다.
골판지는 포장용 박스를 만드는 데 쓰이기 때문에 골판지 수급은 경제지표와 흐름을 같이 한다. 경기가 좋으면 소비가 활발해져 박스 수요와 폐지 배출량이 많기 때문에 폐지와 골판지 수급이 원활해지고, 경기가 침체될수록 수급이 막히는 구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었을 때는 배송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골판지 수요가 함께 늘었고 지난해에는 글로벌 경기회복과 맞물리면서 골판지가 ‘금판지’로 불릴 만큼 업황이 좋았다. 그러나 올해에는 복합적인 경제위기가 덮치면서 이런 수혜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가정이나 사업장에서 폐지가 버려지면 수거돼 폐지 압축상에 모인다. 폐지는 압축된 상태로 제지공장에 팔리거나 해외로 수출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국내 제지사가 보유한 폐지 재고는 총 14만8000t이다. 일반적인 국내 제지공장의 폐지 재고량은 7만~8만t이다. 제지사의 폐지 재고는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평균 수준이었으나 지난해 9월 들어 13만t으로 급증한 뒤 올해 6월엔 19만t까지 늘었다.
재고가 쌓이면서 가격도 떨어지고 있다. 환경부가 공개한 전국 평균 폐지 가격 동향을 보면 1㎏당 가격은 지난 1월 149원에서 9월에 108원까지 내렸다. 수출 가격도 지난해 9월 1t당 242달러에서 올해 9월 129달러로 1년만에 반토막이 났다.
업계에 따르면 폐지 적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경기침체 등 복합위기 영향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제지업은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업종인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일부 유럽 제지업체들이 에너지 수급 문제를 겪어 공장을 가동하지 못하게 되면서 유럽에 폐지가 쌓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국가들이 쌓인 폐지를 소비하려 동남아시아와 중국 수출을 늘리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동남아시아도 경기가 나빠 수입 물량을 줄이고 있고 중국도 코로나19 영향으로 수입이 위축됐다”며 “우리나라 역시 동남아를 통해 중국으로 폐지를 수출해왔는데 이런 상황이 겹쳐 적체가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또다시 ‘폐지 대란’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폐지가 팔리지 못하고 쌓이게 되면서 폐지 압축상이 저장 공간 부족 등 이유로 폐지 수거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18년과 2020년에도 폐기물 가격이 급락하고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금지하면서 수거업체들이 폐지 수거를 거부한 사례가 있다.
정부는 급히 재고 비축에 나섰다. 환경부는 국내 제지기업 5곳으로부터 폐지 1만9000t을 매입해 전국 6개 창고에서 9개월간 비축할 방침이다. 정부가 폐지 공급과잉에 대비해 비축에 나선 건 2020년 1월 이후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사태 장기화가 우려되는 만큼 추가적인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지업체가 하루에 폐지를 2만4000t씩 쓰는데 1만9000t 비축은 많은 양이 아니다”라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다는 신호를 줄 수는 있지만 더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폐지 적체 문제는 이제 시작이다. 점점 안 좋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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