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쁠 때도 슬플 때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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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거짓말처럼 바뀐다.
마음이 앞서서 마구 씨앗을 뿌렸던 때가 떠오른다.
그러다 제풀에 지쳐 소중한 사람에게 가시 돋친 말을 쏟아냈던 때, 당신이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던 때, 그리고 햇살과 고요.
그런데도 그만두지 않은 이유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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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거짓말처럼 바뀐다. 바람이 차가워지면 덩달아 쓸쓸한 마음이 된다. 마음이 앞서서 마구 씨앗을 뿌렸던 때가 떠오른다. 그러다 제풀에 지쳐 소중한 사람에게 가시 돋친 말을 쏟아냈던 때, 당신이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던 때, 그리고 햇살과 고요. 그저께가 오래전 같다. 나는 오래된 생각이다.
삼십 대를 건너는 동안 새로운 화두가 생겼다. 계속할 것과 멈춰야 할 것을 가늠하는 것이다. 숨 가쁘게 뛴 것 같은데 제자리 같다. 몇 년 전 나는 깊은 늪에 빠졌다. 곁의 것들을 죄다 빨아들였다. 암막을 두른 작은 방에 나와 당신이 있었다. 우리가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뎠는지 모르겠다. 잠들고 또 잠들었다. 시간을 가로질렀다.
당신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널브러진 쓰레기를 종량제 봉투에 담았고 개수대에 쌓인 설거짓거리를 정리했다. 책상 앞에 앉아 밀린 일들을 하나씩 해냈다. 왜 쓰는가? 물으면 모른다는 대답으로 질문을 회피하곤 했지만 글 쓰는 거 말고 딱히 잘하는 게 없어서 계속하는 건지도 모른다. 자주 길을 잃었고 포기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만두지 않은 이유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생활을 잘 꾸리고 싶다.
복다진(사진)의 첫 정규앨범 ≪꿈의 소곡집≫은 지난날의 우리를 매듭짓는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스쳐온 그 자리엔” 크고 작은 허물과 물음이 놓여 있다. “어느 곳에 서 있는지 막다른 길인지도 모를 갈라진 길 위에서”(<갈래>) 나는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들풀과 수선화가 줄지은 강가에 앉아 지나간 시간을 곱씹는다. 되돌릴 수 없어서 아름다운 한때가 빛나고 있다. 노래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함께 노래할 때 나를 발견하고 너를 발견하고 우리를 발견한다. 우리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예감한다.
빛이 어둠을 밝힐 수 있다고 믿으면 자기 약점까지 고백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미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과거를 다시 엮어야 한다. 능선을 따라 정상에 다다랐던 봄날 우리가 꿈꿨던 것은 크고 대단한 게 아니었다. 활짝 핀 개나리 옆에서 자세를 잡으며 우리가 살아남기를, 회복하기를, 행복하기를 바랐다. 당신이 말했다. 너와 있으면 모든 게 잘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복다진이 노래하는 아름다움은 손에 잡히지 않는 감정과 희망, 풍경 같은 것이다. 흐릿하지만 깊고 넓다. 그는 두루뭉술한 세계에서 기꺼이 헤맨다. 그리고 “어둠에게 묻는다. 넌 빛날 수 없는가. 위태로운 벼랑 끝에서 시작할 수 있는가.” 피아노 의자에 앉은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첫 음을 내뱉는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편지를 썼다 지웠다 했던 어느 밤에 이른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있겠지. 너무 매여 살진 말자고 적은 어느 밤. “바다를 건너, 은하를 지나”(<내 마음은 블루>) 당신 마음에 닿았다.
나는 그동안 부끄러움과 무력감을 오가며 여러 편의 시를 썼다.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예술은 언제나 실패를 향해 있다. 어떠한 것도 완전히 재현할 수 없다. 진실은 보이는 것 너머에 있다. 게다가 진실은 하나가 아니다. 예술적인 게 있다면 우리 일상의 아주 작은 면일 것이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결국 태도다. 일상을 되풀이하듯 살펴보고 낯설게 응시하는 게 예술의 태도가 아닐까. 이제 실패를 살아내고 싶다.
최지인 시인
*너의 노래, 나의 자랑: 시를 통해 노래에 대한 사랑을 피력해온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최지인 시인의 노래 이야기. 3주마다 연재.
*복다진 <내 마음은 블루>https://youtu.be/hjq24E0xU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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