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잡습니다[플랫]
“정치와 국제 분야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내게 공포와 무력감을 안긴다.
현실이 감당하기 너무 벅찰 때, 마음이 잠시 도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이야깃거리는 필요한 법이다.
남은 빵을 다 먹으면 전설 포켓몬 띠부씰을 찾는 여정을 다시 시작하리라.”
지난 3월 발행한 주간경향 1469호에 ‘[꼬다리] 돌아온 포켓몬빵이 반가운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고백하자면 이 글이 부끄럽다. 돌아보면 ‘문제투성이’ 빵이었는데 현실 도피를 하며 만족했다. 포켓몬빵을 생산하는 SPC삼립은 SPC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다. 지난 10월 15일 SPC그룹 계열사인 SPL 평택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홀로 일하다가 기계에 몸이 끼어 사망했다. 외면해서도, 외면할 수도 없는 ‘진짜 현실’은 포켓몬빵 열풍 이면에 숨겨진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이었다.
포켓몬빵 재출시 한 달 무렵인 올해 3월 28일 임종린 전국화학식품섬유산업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은 SPC그룹의 불법행위·부당노동행위 중단을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했다. SPC 계열사 파리바게뜨는 과로, 부당노동행위 등 문제로 논란이 됐다. 2018년 불법파견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노조와 합의했지만, 본사가 직접 고용하지 않고 자회사에 고용해 ‘간접고용’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임 지회장은 53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으나, 파리바게뜨 노동자들은 근무요건 개선을 요구하는 집단 단식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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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투쟁을 굽는 파리바게뜨 임종린 제빵사
당시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대학가를 중심으로 ‘SPC 불매운동’이 번졌다. 지난 6월 13일 SPC 본사 앞에선 청년유니온 등 63개 청년단체의 ‘불매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서울 시내 한 대학엔 “청년 여성 노동자를 착취한 빵으로 배를 채우지 말자”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었다.
2020년 10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개봉한 후 임 지회장을 인터뷰했다. 회사의 부당함을 토로하기 위해 정의당 노동 상담 창구인 ‘비상구’를 찾았다 노조까지 만들어버린, 임 지회장의 이야기는 영화 주인공 이자영 캐릭터의 토대가 됐다. “당신이 생각하는 ‘어쩌다 영웅’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임 지회장은 “혼자, 섬처럼 일하는 환경에서 신념을 믿고 노동환경을 개선하려 애쓰는 (제빵) 기사님들”이라고 답했다. 그후 2년, 노동환경은 개선되지 않았고, 결국 공장에서 ‘섬처럼’ 홀로 일하던 20대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번 사고로 다시 불붙은 불매운동에 어떤 이는 실효성을 지적하며 냉소한다. 시민들은 이번 불매가 단순히 기업 매출에 타격을 주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말한다. “피 묻은 빵을 먹을 수 없다”는 구호는 여론이 됐고, 사회적 압력이 됐다. 노동자의 피와 살을 갈아 만든 그런 빵은 먹고 싶지 않다는 절규인 셈이다. 비겁하지만 지금이라도 지난 글을 바로잡는다. 정말 내게 공포와 무력감을 주는 건 나아지지 않는 노동환경과 연이은 불매운동에도 꿈쩍 않는 기업의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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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기자 yjleee@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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