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공간 트렌드] 영화관이 불시착했다, 라이카시네마
우리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대에 살고 있다. 넷플릭스·왓챠·티빙·웨이브·쿠팡플레이 등 적으면 한 개, 많으면 서너 개까지 OTT를 구독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구독 서비스가 생겨나면서 자연스레 영화관을 찾는 발길이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으로 다중 시설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 탓일까. 하지만 2021년 1월 코로나19 사태가 가장 극심한 시기에 연희동에 한 영화관이 문을 열었다. 그것도 그냥 영화관이 아니라 독립 예술 영화관이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의 가치가 변화하고 있는 요즘, 라이카시네마의 존재가 어쩐지 특별하게 느껴진다.
소규모 대면 시대를 꿈꾸다
올해 9월 개봉된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는 주인공 오세연(염정아 분)과 남편 강진봉(류승룡 분)이 처음 만났던 장소로 서울극장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극장 앞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데이트를 회상한다. 1980년대 향수를 대변할 만한 장소로 채택될 만큼 서울극장은 40년간 문화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하지만 이곳은 코로나19 사태의 후폭풍으로 2021년 8월 31일 영업을 종료했다. 이제는 극장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모여 영화를 보는 게 아닌 집에서도 최신 영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어 오랜 영화관들의 본래 기능을 잃게 된 것이다. 영화관이 사라지고 있는 이때 라이카시네마는 ‘연희동 최초 예술 영화관’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등장했다.
라이카시네마가 들어선 스페이스독(SPACEDOG)은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로 무장한 채 연희교차로 골목에 자리해 있다. 라이카시네마는 39석의 소규모 극장으로, 주로 독립영화·예술영화 등을 상영한다. 광화문 시네큐브, 종로 인디스페이스 등의 계보를 라이카시네마가 잇게 된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라이카시네마는 서울의 예술 영화관 중 유일하게 입체 음향 기술 돌비 애트모스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내부도 어느 좌석에서나 시야가 가려지지 않도록 설계했다. 오픈 당시는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된 때였다. 전체의 절반인 19석만 손님을 받았다. 전석 매진 행렬이 이어지면서 연희동을 찾는 젊은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연희동에 불시착한 우주선
처음 라이카시네마가 생겼을 때 연희동에 있을 법한 것이 그동안 없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희동은 연희문학창작촌이 자리하고 있을 만큼 문화·예술에 대한 뿌리가 깊은 동네이기 때문이다. 신달자·은희경·성석제 씨 등이 거쳐간 이 창작촌은 새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도보로 20분만 걸어가면 시끌벅적한 신촌과 연남동이 나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연희동의 갤러리들은 2014년부터 궁동산과 안산 자락 일대에 들어왔다. 대부분 주택가의 1층 혹은 상가 건물을 개조해 만든 건물에 들어서며 연희동 고유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되 예술적 동네의 모습을 갖춰 갔다. 이러한 연희동의 분위기에 힘이라도 싣듯이 라이카시네마는 젊은 창작자들에게 영감이 될 만한 문화 공간을 목표로 들어섰다.
1957년 11월 3일 구소련이 쏘아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2호에는 개 한 마리가 탑승해 있었고 그의 이름은 라이카였다. 구소련은 여러 마리의 개를 훈련시킨 후 그중 훈련 성과가 가장 좋았던 라이카를 택했다. 그날 이후 라이카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가 됐다.
라이카시네마는 처음 우주로 떠난 생명체 라이카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나아가 ‘영화로 광활한 여정을 떠나자’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홈페이지에 실린 영화관에 대한 소개 역시 ‘연희동에 불시착한 복합 문화 공간’이라고 할 정도니 우주 콘셉트에 대한 진심이 느껴진다.
라이카시네마뿐만 아니라 스페이스독 건물은 자체만으로도 우주선에 탑승한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그도 그럴 것이 메탈로 완성한 인테리어는 물론 이름과 콘셉트 모두 우주에서 영감을 얻어 왔기 때문이다. 우주선과 가장 닮은 공간은 바로 상영관 출입구다. 마치 오랫동안 우주 여행을 다녀온 우주 탐험가에게 지구로의 귀환을 환영하는 것만 같다고나 할까.
스페이스독 건물은 지하 1층 라이카시네마, 1층은 티켓박스, 2층 카페, 3~4층 멤버십 작업 공간 겸 공유 오피스 ‘스페이스독 스튜디오’로 이뤄져 있다. 특히 스페이스독의 루프톱에는 작은 정원이 마련돼 있는데 건물 내부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자연을 경험할 수 있다. 마치 지하 우주 세계에서부터 루프톱의 자연으로 닿기까지 문화·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만 같다.
라이카시네마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로 8길 18(연희동) 스페이스독 1층
운영 시간 : 매일 오전 10시~ 오후 8시
상영관 수 : 1관, 39석(장애인석 1석 포함)
이민희 기자 minhee@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