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는 참신한데"...익수볼, 좁히지 못한 현실과 이상의 괴리
[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안익수 감독이 30일 전북 현대와의 FA컵 결승전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말한대로 "다사다난한 시즌"이 끝났다. FC서울의 2022시즌을 냉정하게 돌아볼 때다. 리그 9위와 FA컵 준우승. '명문구단'에 어울리지 않는 결과다. 하지만 K리그에서 드물게 참신한 전술적 시도를 하고, 젊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한 측면은 무시할 수 없다. '익수볼'(안익수 축구)의 공과를 따져봤다.
▶공=참신한 시도
서울이 '하나원큐 K리그1 2022'에서 잔류싸움에 한창이던 지난 10월 3일(현지시각), 국제축구연맹(FIFA) 산하 국제스포츠연구센터(CIES)에서 전 세계 71개 리그에 속한 1천226개의 프로팀을 대상으로 패스 수치를 조사해 발표했다. 서울은 경기당 패스 부문에서 세계 17위에 올랐다. '빅클럽'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보다 많았단 점이 팬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서울은 올시즌 K리그1에서 가장 많은 경기당 550.61개의 패스를 기록했다.
안 감독은 지난해 9월 '소방수'로 서울 지휘봉을 잡은 뒤 선문대 사령탑 시절 갈고 닦은 익수볼을 선보였다. 빌드업, 패스, 유기적인 스위칭, 절묘한 오프사이드 트랩으로 대표되는 전술이다. '전술 천재'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끄는 맨시티를 참고했다. 여전히 수비적인 스리백이 대세를 이루는 K리그에서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서울의 축구는 참신하다, 재밌는 축구를 한다, 계속해서 이런 시도를 해야 한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과=힘빠진 익수볼
지난시즌 시즌 막바지 '센세이션'을 일으킨 익수볼은 올시즌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과 상대의 전술적 대처 등의 이유로 서서히 힘이 빠져갔다. 패스 템포가 느려졌다. 공이 전방으로 나아가질 못하면서 자기 진영에서만 공을 돌리는 횟수가 늘어났다. '혁신적'이라던 전술은 어느샌가 '지루한 전술'이란 꼬리표를 달았다. 상대팀 감독들 사이에서 서울은 '공략하기 쉬운 팀'이란 인식이 퍼졌다.
'질식수비의 대가'였던 안 감독은 시즌 중 여러 차례 전술 변화를 고민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용은 좋지만, 결과가 따르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다. 결국 현실과 이상의 괴리 앞에서 전술이 바뀌기 시작했다. 4-1-4-1 포메이션이 4-4-2가 되고, 3-5-2가 되었다가 4-1-3-2로 바뀌었다. 그런데 타이밍을 놓친 감이 있다. 이미 계속된 부진에 팀 분위기가 가라앉고 상위권 팀들과 격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스리백 카드가 등장했다. 그 과정에서 익수볼의 색깔은 점차 옅어졌다. 지난해 10월과 올해 10월, 서울은 같은 감독 아래에서 전혀 다른 축구를 했다.
▶과=결과를 담지 못한 내용
익수볼의 오작동은 자연스레 부진한 성적으로 연결됐다. 줄기차게 패스 플레이를 펼치다 문전 앞에서 허망하게 공격 기회를 놓치는 장면이 시즌 내내 반복됐다. 여름에 전북에서 일류첸코를 영입하기 전까지 전방에 장신 공격수를 두지 않고도 측면 크로스 공격에만 의존했다. '전반 서울'과 '후반 서울'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서울은 팀 득점 43골 중 전반 득점이 10골에 불과했다. 상대방 체력이 어느정도 고갈된 상태에서만 익수볼이 효과를 발휘하는 듯했다.
반드시 잡아야 할 경기를 놓쳤다. 최하위로 강등된 성남을 상대로 홈에서만 2번 패한 게 결정적이었다. 서울은 올시즌 3경기 이상 연속 무승만 5번 기록했다. 그에 반해 연승은 3번 뿐이었고, 그마저도 3연승 이상은 없었다. 기세를 탈 때 그 기세를 유지하고, 하락세를 상승세로 바꾸는 법에 미숙했다. 서울은 9월 이후 리그 10경기에서 단 2승(4무 4패)만을 따냈다. 안 감독에겐 자연스레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 감독'이란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서울은 FA컵 결승전 1차전을 2-0 리드한 채 시작했지만, 1-2차전 합계 3대5로 결국 우승컵을 내줬다.
▶공=강성진의 성장
서울은 K리그에서 손꼽히는 유스 시스템을 장착했다. 흔히 '오산이'(오산중, 오산고 출신)로 불리는 유스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키우는 정책을 펼쳤다. 안 감독은 이에 발맞춰 유스 출신 젊은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서울의 미래"를 아끼고 살폈다. 강성진을 필두로 이한범 이태석 김신진 정한민 권성윤 김주성 백상훈 박호민 등 22세이하 선수들이 중용됐다. 한 경기에서 절반 가량이 22세이하 선수로 꾸려진 덕도 있었다. 22세이하 선수 활용횟수는 155회, 출장시간은 8643분. 12개팀 중 가장 많았다. 서울 선수단(출전자 기준)의 평균연령은 26.0세로 김천 상무(25.6세) 다음으로 낮았다.
이중 2003년생 왼발잡이 윙어인 강성진은 안 감독의 조련 아래 유망주에서 핵심 공격수로 거듭났다. 지난 7월 일본에서 열린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챔피언십 1차전 중국전을 통해 국가대표에 데뷔했고, 2차전 홍콩전을 통해 데뷔골까지 쐈다. 올시즌 출장 경기수는 프로 데뷔시즌인 지난해 14경기에서 34경기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시즌 초 부침을 이겨내고 중반부턴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치며 영플레이어상 최종 후보 4인에 이름 올렸다. 안 감독은 지난 8월 강성진에 대해 "조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성숙하다"고 칭찬했다. 강성진의 성장은 웃을 일 없던 서울을 웃게 하는 몇 안되는 요인이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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