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내 작은 들판에서 벌어진 기적 같은 일…흑두루미 부부 8년째 찾아와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세종시의 도시개발지 바로 옆에 ‘장남들’이라는 이름의 들판이 있다. 공공기관 청사나 주택·상가 등에 공간을 내주고 논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13만5000㎡규모의 이 공간에서는 현재 농민들이 농사를 짓고 있다. 사람들은 원래 이곳을 ‘장남평야’로 불렀으나 지금은 ‘장남들’로 부른다. 공간이 너무 작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2015년부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천연기념물 228호이며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흑두루미 부부가 매년 이곳을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흑두루미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취약종’으로 지정한 새이기도 하다.
이곳 사람들은 매년 늦가을만 되면 흑두루미 부부가 찾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장남들의 환경을 지키기 위한 모임인 ‘세종시 장남들 보전 시민모임’의 한 관계자는 “각종 개발 공사로 하루가 다르게 서식환경이 나빠지고 있기 때문에 흑두루미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매년 걱정을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올해는 반가운 소식이 예년보다 빨리 전해졌다. 매년 11월 13일 전후에 모습을 드러내던 흑두루미 부부가 올해는 지난달 28일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흑두루미가 2주나 빨리 찾아오자 시민모임 관계자들은 이를 크게 반겼다.
“너무너무 반가웠어요.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시민모임 관계자)
흑두루미 부부는 여기를 잠시 거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겨울을 완전히 나고 떠난다. 흑두루미의 국내 주요 월동처인 천수만과 순천만을 놔두고 이곳을 일부러 찾아와 매년 겨울을 나기 때문에 이곳 주민들에게 흑두루미 부부는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흑두루미 부부는 2018년에는 2마리의 새끼를, 2021년에는 1마리의 새끼를 각각 데려와 월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부부만 찾아왔다. 시민모임은 흑두루미 부부의 새끼가 독립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민모임 관계자들은 장남들을 찾는 흑두루미 부부를 ‘장남이’와 ‘세종이’로 부른다.
조성희 세종시 장남들 보전 시민모임 사무국장은 “애초 한 해에 그칠 줄 알았던 흑두루미 부부의 월동이 8년째 이어지고 있다”면서 “매년 개발이 진행되면서 도시 속의 텃밭처럼 남은 장남들을 믿고 날아와 준 흑두루미 부부가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흑두루미 부부가 빨리 찾아오자 시민모임 회원들은 신이 났다. 모니터링단을 구성해 서식환경을 살펴보는 것은 물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보내준 후원금으로 구입한 모이를 주는 등의 보전 활동에 들어갔다.
이 모이는 흑두루미 이외에 장남들을 찾는 큰고니·큰기러기·잿빛개구리매·참매·매·큰말똥가리 등의 먹이도 된다.
시민모임 관계자는 “좁은 장남들에서 겨울을 나는 흑두루미 등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월동지역에 대한 사람들의 접근을 제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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