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 이성민이 만든 차별점 [인터뷰]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극의 중심부에 선 배우 이성민은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걸 끌고 나간다. '80대 노인의 친일파 복수극'은 생소한 소재지만, 이성민을 통해 그 진정성이 더해진다.
'80대 노인의 청일파 숙청'을 앞세운 영화 '리멤버'가 개봉했다. '리멤버'(감독 이일형·제작 영화사 월광)는 가족을 모두 죽게 만든 친일파를 찾아 60년간 계획한 복수를 감행하는 알츠하이머 환자 한필주(이성민)와 의도치 않게 그의 복수에 휘말리게 된 20대 절친 황인규(남주혁)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파격적인 키워드들로 소개된 '리멤버'에 대해 이성민은 "그 시대를 겪은 할아버지와 그 시대랑 너무나 동 떨어져 있는 젊은 아이와 동행한다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며 "그 시대를 겪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아이가 공감해주고 동행하는 게 멋지다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일형 감독과 다시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작품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라고 강조했다.
특히 실제로 50대의 이성민은 '리멤버'를 통해 80대 노인으로 변신했다. 분장으로 만든 겉모습부터, 걸음걸이, 말투, 목소리톤 하나하나까지 80대 노인이 된 이성민이다.
그러나 이성민은 캐스팅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고. 이에 대해 그는 "개인적으로 필주라는 캐릭터가 저에겐 신선한 작업일 것 같았지만, 한편으론 감독님이 왜 그 나이대 배우를 쓰지 않으시는지 궁금했다"며 "근데 그 나이대 배우보다 더 젊은 사람이 그 역할을 하는 게 다른 에너지가 나올 것 같다는 얘기를 하셨었다"고 설명했다.
배우로서 색다른 도전인 만큼 부담감도 커졌다. 이성민은 "부담이 많았다. 일단 외모부터 그렇다. 제가 주름이 별로 없다. 특수분장팀이 주름이 잘 안 잡히는 것 때문에 힘들어했다"고 웃음을 보였다.
이어 "분장으로 노인 역할을 커버한다고 해도, 함께 출연하는 실제 그 연배의 선배들과 연기해야 하니까 그분들과 섰을 때 이질감이 들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그 지점을 극복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다"며 "저 역시 캐릭터의 외모뿐만 아니라 움직임 말투, 이런 것까지 그 나이에 맞게 연기해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노인의 외형을 만들고, 말투부터 자세까지 만든 뒤 마지막 지점은 '눈빛'이었다. 이성민은 "알바생으로서 필주는 굉장히 유쾌한 '인싸'다.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중점을 뒀고, 그 뒤에 사연들이 나올 땐 딱히 계산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다. 극 중 필주가 일제강점기부터 베트남전에서도 산전수전을 겪은 양반이다 보니 그런 모습이 베이스에 깔려있어서 그런 눈빛들이 부각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리멤버' 속 관전 포인트는 일제강점기에 희생당한 이들의 후손이 아닌, 그 당사자가 복수극을 벌인다는 점이다. 이에 복수를 하는 이도, 복수의 대상자도 모두 이미 80대 백발노인들이다.
이에 따라 80대 노인들이 벌이는 액션신 역시 작품의 차별화가 됐다. 액션신이 언급되자 이성민은 "처음에 무술팀 하고 합을 맞췄는데 굉장히 빨라서 이상했다. 그 연세에 그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속도를 줄였더니 그게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원래 액션이라고 하면 소위 '빠바박'하는 게 익숙해져 있는데 그 속도를 절반 이상 줄인다는 게 힘들었다"며 "실제로 저랑 액션신을 찍으셨던 박병호 선생님은 부상도 있으셨다. 근데 그걸 숨기고 촬영하셨다. 정말 고생이 많으셨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다만 작품 속에서 황인규는 한필주가 저지르는 복수에 대해 '사적인 복수는 정당한가'라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던져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이성민은 "한필주가 하는 행동들은 대단한 역사적 책임감은 아니다. 자기 가족에 대한 복수다. 그걸 선동했던 인물들이 60년 동안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삶이었을 것"이라며 "내가 만약 필주처럼 가족을 잃어버리고, 그걸 60년 동안 담고 있었다면 필주처럼 행동하지 않을까, 라는 지점에서 공감을 많이 했다. 그런 지점을 조금 더 이해하고 봐주신다면 필주를 이해하는데 수월하시지 않을까 기대가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관객들에게 필주의 복수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인규'라는 캐릭터는 원작인 캐나다·독일 합작 영화 '리멤버: 기억의 살인자'에서는 없는 인물이다. 각색 과정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인물은, 관객들의 시선에서 함께 필주를 따라간다.
이성민 역시 "인규는 감독님이 의도하신 캐릭터다. 필주는 여정을 가야 하는 명분이 확실하다. 하지만 인규는 그렇지 못하다"며 "인규를 통해서 관객이 이 여행에 동참할 수 있게 만드는 장치다. 인규가 이 여행이 발을 담그고, 끌려가고, 동참하는 과정들이 설득력을 갖기 때문에 관객이 비슷한 시점으로 필주를 따라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필주는 결국 결말에서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온 복수극도, 하물며 동행자인 인규조차 까맣게 잊어버린다.
결말이 언급되자 이성민은 "필주의 짐을 덜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 왔던 것이 어쩌면 알츠하이머로 인해 다 잊어버림으로써 그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에 임한 만큼 배우로서 경계해야 하는 지점도 존재했다. 이성민 역시 실제 일제강점기 희생자들의 유족들이 언급되자 "감히 상상 못 하겠다"며 "그분들의 감정이니까 제가 거창하게 생각하며 작품을 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아울러 이성민은 "'리멤버'가 식민사관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메시지를 던지기보단, 그 시대 가족을 모두 잃어버렸던 개인의 복수극으로 바라보는 게 더 편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스포츠투데이 서지현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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