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협 테마주의 반전…'아난티 스타일' 만든 축적의 힘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아난티가 국내 호텔&리조트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독특하다. 어떤 범주에도 포함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힐튼, 메리어트 등 미국의 대형 호텔 체인을 한국식으로 해석한 호텔신라나 롯데호텔과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대명리조트, 한화 콘도처럼 서양의 리조트를 흉내 낸 대형 위락시설이란 ‘카테고리’로 묶기에도 어색하다. ‘한국적이면서, 한국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 아난티다. 최근 호텔 건축업계에서 ‘아난티 스타일’이라는 말이 자리를 잡은 이유다.
'테마주' 멍에 벗은 아난티, 주가 향방은?
상장사인 아난티의 주가는 수년째 ‘낮은 포복’이다. 2019년에 한때 남북경협 테마주로 주목받으면서 2만8000원에 육박했지만 3년여 만에 5000원대로 주저앉았다. 10월31일 종가는 5290원에 마감됐다. 이랬던 아난티에 ‘볕 들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506억원 규모의 금강산 리조트 자산을 상각 처리함으로써 오래된 짐을 던 데다 지난 6월엔 아난티 스타일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강남앳아난티를 개장했다. 남해, 가평, 부산에 이어 네 번째다. 호텔의 무한경쟁지로 불리는 제주에도 도전장을 던졌다. 이만규 아난티 대표는 “싱가포르에도 진출할 계획”이라며 “아직 확정 단계는 아니지만, 현지 유력 사업가와 함께 호텔 부지를 물색 중”이라고 말했다.
아난티에 대한 평가는 2018년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그해에 이 대표는 사명을 에머슨퍼시픽에서 아난티로 바꿨다. 이 대표의 첫 ‘작품’인 남해 골프&리조트의 운영권을 힐튼에서 아난티로 바꾼 것도 2018년이다. 아난티코드PH(가평)과 아난티코브(부산)를 개장한 건 각각 2016년과 2017년이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사명 변경의 이유가 이렇게 나와 있다. ‘브랜드 가치 제고 및 기업 아이덴티티 강화를 위해’.
사명 변경은 이 대표를 포함해 아난티 임직원들의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다. 2006년 남해 아난티를 개장한 이래 약 12년을 쌓아 온 업력을 ‘아난티’라는 세 음절의 단어로 표현하겠다는 의지다. 이와 관련해 이 대표의 설명은 감사보고서의 문구보다 좀 더 직설적이다. “어디 좋은 곳에 가거나 좋은 것을 보게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가 있어요. 외국에 나온 것 같다고요. (호텔&리조트 업계의) 업자로서 자존심이 상하더군요”
강남 한복판에 '100년 호텔' 지은 이만규의 승부수
아난티가 학동 사거리 인근 강남 한복판에 객실 118개 규모의 최고급 호텔을 연 건 삼국지 속 제갈공명의 출사표에 비견할 만하다. 남해, 가평, 부산 등 지방에서 공력과 노하우를 축적한 아난티가 서울이라는 ‘중원’에 처음으로 깃발을 꽂았다는 점에서다. ‘아난티 앳 강남’에 대해 이 대표는 “아난티가 그동안 쌓아 온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모두 응축한 최신 버전”이라며 “최소 100년 이상 동네와 함께 살아 숨 쉬는 건축물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지었다”고 설명했다.
아난티 앳 강남의 지향점은 유럽의 고풍스러운 도시 어딘가에 있을 법한 호텔이다. 혹자는 부티크 호텔이란 범주에 넣기도 하는데, 이 대표는 “부티크 호텔이란 말은 유럽에선 쓰지 않는 말”이라며 “별 다섯개 짜리 특급호텔이 A380 항공기라면 아난티의 호텔은 투숙객의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최고급 전용기다”고 말했다.
아난티 앳 강남의 컨셉트는 국내 호텔에선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독창적이다. 객실은 복층 구조로 만들고, 모든 객실 창은 개방형이다. 창을 열고 발코니에 서면 논현동, 학동 등 낮은 담장의 강남 주택지와 학동공원, 도산공원 등의 녹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복층으로 객실을 꾸민 건 호텔은 여행자의 휴식 공간이란 의미를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서다. 소파가 놓인 아래층은 일반 가정집의 서재 같다.
호텔에 지역명을 넣은 것도 참신한 시도로 평가받는다. 에펠탑 근처의 풀만 호텔만 해도 ‘풀만 파리 타워 에펠’이다. 강남을 대표하는 글로벌 호텔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이름이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대가로 아난티 앳 강남의 1박 가격은 40만~100만원 가량이다. 하지만 객실료를 빼면 모든 것에서 군살을 뺐다. 호텔이면 으레 있는 값비싼 식당들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에 인근 강남 맛집을 즐길 수 있도록 전용 카트(전기차량)를 운행한다.
호텔업에 진심인 유일한 상장사
아난티는 동종업계 상장사 중 호텔&리조트 사업에 ‘올인’하는 유일한 회사다. 호텔신라만 해도 면세 유통이 전체 매출의 88.1%(올 6월 말 기준)에 달한다. 대명소노그룹의 상장사인 대명코퍼레이션은 리조트 용 물품을 공급하는 MRO 기업이다. 이에 비해 아난티는 리조트 분양과 호텔 운영이 전체 매출의 95%가량을 차지한다. 나머지 매출은 골프장 운영 등에서 나온다.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차별화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난티의 미래는 낙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3분기 누적)에 아난티 매출은 1512억원으로 전년(771억원)의 2배를 달성했다. 영업이익도 359억원에 달했다. 올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424억원, 405억원으로 작년 3분기 누적 실적을 초과했다.
아난티 앳 강남의 객실 점유율은 약 80%다. 나머지 20%는 안 나가는 것이 아니라 피치 못할 사정상 손님을 받지 못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이만규 대표는 “롤스로이스만 빼고 웬만한 차량은 모두 넣을 수 있도록 주차장을 설계했는데 뜻밖에 우리가 모르는 고급 차들이 너무 많이 방문했다”며 “주차장을 새로 설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내년엔 ‘평화로운 숲속 마을’이란 컨셉트로 제주 세인트포CC 부지에 아난티 호텔&리조트를 짓는다. 남해 아난티부터 이만규 대표와 머리를 맞댄 건축가 켄 민과 설계를 구상 중이다. 이 대표는 “일종의 개념 설계 작업 중인데 머릿속에 어떤 건축물을 만들지를 결정하는 데만 최소 1년 이상 걸린다”며 “완전히 외부와 독립된 건물들을 숲속 곳곳에 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주식 시장에서 아난티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독특함은 때로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위험도 있다. 남북경협 테마주에서 벗어난 지도 얼마 안 됐다. 강남과 제주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느냐는 아난티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 요소 중 하나다. 다만, 분명한 건 이만규 대표가 이끄는 아난티는 대기만성(大器晩成)형 기업이라는 점이다. 남해에서 시작해 강남까지 20년 가까운 세월을 외길만 걸으며 ‘아난티 스타일’을 구축했다.
여담 하나. 이만규 대표는 말을 잘 꾸미지 못하는 성격이다. 기자로선 인터뷰하기에 어려운 대상이다. 거의 모든 질문에 단답형으로 답한다. 경영자라기보다는 예술인에 더 가까워 보이는 인물이다. 실제 그는 “남들과 다른 걸 할 때가 가장 편하다”고 말할 정도다. 건축물로서 호텔이나 리조트를 개장할 때면 늘 부끄럽고 부족함을 느낀다고 한다. 가장 열정을 발휘할 때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착수할 무렵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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