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에서 배트를 가장 짧게 쥐는’ 김태진, 그가 사는 법 [홍윤표의 휘뚜루마뚜루]

홍윤표 2022. 11. 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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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른바 ‘큰 사람’이 아니다. 야구선수로는 작은 편에 속해 키가 170cm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어떤 투수도 그를 함부로 상대할 수 없다. 그의 초롱초롱 하다못해 형형하게 쏘아대는 눈빛을 바라보노라면 가슴이 절로 서늘해진다.

신체 조건의 불리함은 그를 오히려 질기게 만들었다. 그는 끈덕지다. 타석에 들어서면 상대 투수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팀 선배인 이용규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는 키움 히어로즈의 김태진(27)이다.

2022년 한국시리즈 진출의 분수령이 된 경기인 10월 25일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김태진이 타석에서 보여준 끈기는 마치 큰 제방을 개미가 무너뜨리는 효과를 낳았다.

2차전 2회 첫 타석에 나선 김태진은 LG 선발투수 아담 플럿코를 상대로 10구째까지 가는 실랑이 끝에 우전 안타를 날렸다. 플럿코가 2회에만 무려 5점을 내주고 무너지는 결정적인 물꼬를 그렇게 튼 것이다. 김태진은 3회 두 번째 타석에서도 바뀐 투수 김진성을 상대로 12개의 공을 던지게 만들며 진을 뺐다. 그 경기에서 김태진에게 던진 LG 투수들의 공은 4타석에서 모두 31개였다.

김태진은 플레이오프 4경기 모두 1루수로 선발 출장했고, 키움 타자 가운데 이정후, 푸이그, 김혜성 다음 높은 타율인 3할 5푼 7리(24타수 5안타. 15타석 이상)를 기록했다. 특히 3차전 2-2 동점에서 역전타, 4차전에서는 쐐기타를 기록하는 등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의 숨은 공신이 됐다. 

신일중, 고를 나온 김태진은 2014년 NC 다이노스에서 프로선수를 시작했으나 2020년 8월 12일에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됐다. 2년도 채 안 된 올해 4월 24일에는 키움이 포수 박동원을 내주고 현금 10억 원과 2023시즌 신인선수 지명권(2라운드)을 받는 조건으로 김태진을 데려왔다. 그랬던 그가 키움의 효자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시즌 도중 이적의 아픔을 두 차례나 겪은 김태진의 시련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키움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는가 했으나 부상이 발목을 잡아 5월 26일 팀을 이탈, 두 달 남짓 지난 7월 28일에야 복귀할 수 있었다.

김태진은 독특한 ‘배트 그립’으로도 이제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아마도 KBO 리그에서 방망이를 가장 짧게 잡고 타격하는 타자다. 손잡이로부터 한 뼘 가까이 위로 쥐고 치는 그의 타격은 그만의 특화된 것이다. 김태진보다 키가 5cm나 작은 KIA의 김선빈도 그렇게 짧게 쥐지는 않는다.

조금 지난 얘기지만 ‘그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키움 홍보팀을 통해 얘기를 들어봤다.

-타격 폼이 독특하다. 특히 방망이를 짧게 잡아 치는데 이유가 있나? 노브(knob)로부터 얼마나 위로 잡나.

“저는 홈런타자가 아니다. 공을 많이 보고 컨택트에 집중해 출루율을 높여야 한다. 그게 제가 할 일이다. 팀과 저를 위해서 방망이를 짧게 잡는 것. 팀에서 제게 준 임무는 많이 출루해 뒤 타자들에게 점수를 뽑을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방망이는 노브에서 한주먹 반 정도 위로 잡는다. 정확히 재보지는 않았다.”

-언제부터 짧게 잡았나.

“사실 처음부터 짧게 잡은 것은 아니다. 길게도 잡고 짧게도 잡아보면서 저한테 맞는 방식을 계속 찾아왔다. 키움으로 오면서 유독 더 짧게 잡는 느낌은 든다. 예전 영상과 비교해 보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아무래도 이 팀에서 제가 해야 하는 임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타격 폼을 유지하고 있다.”

-후반기에 9경기 무안타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할 때도 있었다.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나.

“많이 힘들었다. 왜 이렇게 안 맞나 자책하기도 했다. 저는 약간 고민이 많은 스타일이다. 예민한 부분도 있다. 근심이 많다 보니 좋지 않은 상황들이 나왔다. 타석에서 상대와 싸워야 하는데 저 스스로 고민과 싸웠던 것 같다. 마음가짐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걱정을 내려놓자’, ‘언제는 잘 맞을 거다’, ‘분명 변화의 계기가 생길 거다’고 되새기며 고민을 내려놨다. 그러다 보니 (야수들에게 잡혔지만) 점점 잘 맞는 타구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자신감도 붙기 시작했다.”

-키움에 온 뒤 수비 위치 변화까지 생겼다. 부담감은 없었는가.

“아마추어(고교) 때는 유격수를 주로 봤다. 키움에서는 1루수로 많이 출전했고 필요에 따라 외야수나 지명타자 등 다른 포지션으로도 나간 적도 있다. 시즌 도중 김혜성이 부상했을 때는 2루수로도 나갔다.”

-올 시즌 중반(5월 26일 잠실 LG전) 발목 부상으로 장기간 이탈했다. 잘하고 있던 때여서 상심이 컸겠다. 재활 과정은.

“부상하고 속이 많이 상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부상 때문에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 재활에 매진해 빨리 복귀하고 싶었다. 정말 최선을 다해 재활하고, 운동했다. 저만 잘 준비해서 간다면 분명 기회는 다시 생길 거라는 믿음과 희망을 갖고 그 기간들을 보냈다.”

김태진의 신일고 출신 선배이기도 한 강병식 키움 타격코치는 김태진의 타격 능력과 장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김태진은 공을 잘 볼뿐더러 컨택트 능력도 뛰어난 타자다. 어느 방향으로 공이 오더라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타석에서는 어떻게든 출루하려고 집중하고, 노력하는 의지가 돋보이는 선수다. 부상 복귀 후 힘든 시간도 있었을 텐데 부담감을 내려놓은 뒤부터 자신의 임무에 집중하니까 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김태진은 키움 이적 후 신일고 후배인 주전 유격수 김휘집(20)과 룸메이트로 정신적으로 서로 돕고 의지하고 있다. 그에 대해 김휘집은 신일고 동문회보(신일 제82호, 10월 14일) 인터뷰에서 “7년 차이가 나는 김태진 선배가 이번 시즌 중 트레이드로 키움에 합류했다. 한 팀이 되면서 룸메이트가 돼 학창시절 얘기도 많이 나누며 살갑게 지내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포스트시즌 들어 김태진은 1루수로, 김휘집은 유격수로 키움의 내야를 책임지고 있다. 그들의 화합이 팀의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켜 이제 그야말로 대망의 한국시리즈 무대에 서게 됐다.

SSG 랜더스가 경계해야 할 키움의 타자는 비단 이정후나 푸이그 뿐만 아니다. 김태진을 가볍게 여기다가는 치명적인 일격을 맞을 수도 있다. 김태진이야말로 ‘작은 영웅’이다.

글. 홍윤표 OSEN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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